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지난 11일(현지시각) 이란 테헤란에서 미국 전함이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파괴되는 모습을 담은 반미 선전물 벽화가 그려져 있다. WANA/로이터 연합뉴스 광고 김종대 | 전 정의당 의원광고 호르무즈해협은 이제 사실상 이란 혁명수비대의 통제하에 들어갔다. 미국은 두개의 항모전단과 16척의 전함을 파견하는 압도적인 무력을 투입했으나 정작 이란이 선포한 통제선 안으로 진입하지 못한 채 오만만 일대 먼바다에 머무르고 있다. 5월 초에 해협을 강제로 개방하려는 ‘해방 프로젝트’(프로젝트 프리덤)는 이틀을 버티지 못하고 중단됐다. 중국 상선과 유조선을 차단하기 위해 투입되었던 미 제31해병원정대 소속 트리폴리 상륙단은 아라비아해 파키스탄 인근 해역으로 힘없이 물러났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군이 야심 차게 준비해온 현대전 패러다임의 파산이다. 이란과의 전쟁 주체인 미 중부군사령부의 브래드 쿠퍼 대장은 바레인의 미 5함대사령관 시절, 인공지능(AI)과 무인 센서를 결합한 이른바 티에프(TF)-59를 발족시키며 주목받은 인물이다. 디지털 센서망과 유·무인 복합 체계를 통해 적은 비용으로 압도적인 ‘해양상황인식능력’(MDA)을 확보하겠다는 과학적 신개념이었다. 그러나 막상 이란과의 실전이 벌어지자 이 화려한 디지털 안보론은 이란의 촘촘한 해안포와 순항미사일, 그리고 저비용 드론 공세에 해역의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겼다. 거대한 미 항모와 구축함들은 연안에 접근조차 하지 못한 채 먼바다로 밀려났고, 해상 차단 임무는 지친 항모전단 대신 F-35 전투기와 공격 헬기가 아슬아슬하게 감당하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됐다.광고광고 본말이 전도된 첨단 기술의 역설이다. 전쟁 초기에 이란에 대량 폭격을 쏟아부었던 미 항모와 걸프 지역 미군 기지들은 이제 거꾸로 이란 혁명수비대 정밀 타격의 거대한 표적으로 전락했다. 미군이 그토록 자랑하던 디지털 해양 체계와 인식능력은 어디로 실종되었는가? 대형 항모와 구축함이 먼바다에서 위용을 과시한들, 정작 연안 전투에 필수적인 기뢰 제거 능력이 없다. 이란의 작고 빠른 모기 함대를 제압할 수 있는 연안전투함이나 수중 드론은 구경하기조차 힘들다. 수십억달러짜리 미군 대형 함정이 값싼 이란 드론으로부터 스스로를 완벽히 방어할 수 있는지조차 의심받는다. 이 전쟁 이후 과연 미국의 항모 전단이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전략(A2AD)을 돌파할 수 있는 전력인지, 뜨거운 논쟁이 발화할 것이다. 바야흐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화가 된 ‘항모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단순히 이란과의 전쟁이 문제가 아니다. 미군의 해양 패권 능력 자체가 의심받게 될 것이다. 미 해군대학원 석좌교수인 존 아퀼라가 발표한 최신 저작 ‘고장 난 미국의 전쟁수행 방식’(The Troubled American Way of War)은 전쟁을 대하는 미군의 전략문화 자체가 실패의 근원이라고 지목한다. 이 책에서 그는 미국이 2차대전 이후 ‘전략폭격 맹신’으로 공중전력에 과잉 투자하고, ‘핵 억제력 신봉’으로 이기는 핵전쟁에 집착했으며, 하드웨어적 전력 단순 비교에 기초한 전쟁 기획을 한 점을 문제로 꼽았다. 특히 기술이 정교하고 비싼 무기 체계에만 집착한 나머지, 현대전의 핵심인 유연성과 혁신 능력을 상실했다고 통렬히 비판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그나마 성과를 낸 현지화된 전력, 특수부대는 미 국방비의 5%에도 미치지 못하는 주변으로 밀려났다. 그 대신 전쟁을 종결 짓지 못하는 공중전력에 의한 대량폭격에 집착하게 됐는데, 이는 최근에 더 악화한 불치병이다. 호르무즈해협에서 미군이 겪는 딜레마는 바로 그런 구조 위에 있다. 이 전쟁으로 우리에게 남겨진 안보 과제는 엄중하다. 우리는 미군과의 연합작전에 무조건적인 우월성이 있다는 환상에 더 이상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미군은 이제 인천상륙작전이나 낙동강 전투와 같은 지상전, 또는 특수전을 할 수 없다. 단지 대형 무기 플랫폼에 안주하며 대량폭격을 신봉하는 군산복합체의 관점으로만 움직인다. 아퀼라 교수가 밝힌 최근 우크라이나의 고전 이유도 충격적이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초기에 드론과 재블린 대전차미사일로 수행하던 유격전의 탁월한 장점을 이어가지 못하고, 어느 순간 미군의 대형 무기에 의존하는 정규전으로 치달으면서 고전하게 되었다. 맹목적인 ‘동맹의존증’에다가 대형 무기의 유혹에 빠진 결과다. 이런 지적 태만에 대한민국이 또 하나의 안보 실패 국가의 목록에 올라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