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왼쪽부터 원수일 작가의 2016년 작 ‘이카이노 타령’ 일본어판과 1987년 일본어로 낸 단편집 ‘이카이노 이야기’ 한국어판. 광고 로버트 파우저 | 언어학자 한여름은 소설 읽는 계절이다. 더 많이 읽고 싶지만 집필 중인 원고를 위해 읽어야 하는 책과 논문이 쌓여 있어 시간이 없다고 늘 핑계를 만든다. 한여름에는 일의 속도가 줄어서 다소 여유가 생긴다.광고 최근에 읽은 작품은 원수일 작가의 2016년 작 ‘이카이노 타령’(猪飼野打令)이다. 원 작가의 단편집 ‘이카이노 이야기’(猪飼野物語)를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있어서 기대가 컸다. 이카이노는 오사카의 한 지역으로, 재일 한인들이 오랫동안 밀집해 살아온 곳이다. 특히 일제강점기부터 제주 출신 이주민이 많았지만, 1948년 4·3사건 직후 살아남기 위해 이곳으로 건너온 이들이 훨씬 늘었다. ‘이카이노’ 출신인 원 작가는 여러 작품에서 이 지역을 묘사했다. ‘이카이노 타령’은 첫 장부터 남다르다. 소설 속 대화뿐만 아니라 문장의 서술도 진한 오사카 방언이다. 특이한 건 오사카 방언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문장 속에 한국어 단어가 아주 많다는 점이다. ‘아이고’처럼 이미 일본어에서 외래어처럼 사용하는 단어부터 ‘정말’이나 ‘미친놈’ 같은 한국어 단어까지 다양하다. 한국어 단어에는 작은 글자로 일본어 뜻풀이가 달려 있다. 일본어에서는 외래어나 외국어를 가타카나로 표기하기 때문에 원 작가의 소설에서는 가타카나가 많고, 한자가 적어 시각적 측면에서도 일반 소설과 느낌이 다르다. 한국어 명사가 많지만 ‘아니’, ‘아니라’, ‘다시 한 번’ 같은 명사가 아닌 것도 꽤 나온다. ‘맞수다게’(맞아요)나 ‘고맙수다’(고맙습니다) 같은 제주 방언도 등장한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혼성적 방언의 성격이 강한 ‘이카이노 말’을 활용하고 있다.광고광고 이카이노 말은 가타카나가 워낙 많아 일반 소설보다 읽기 어려운 측면이 있긴 하지만 읽는 동안 여러 가지로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과연 이 소설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게 가능할까, 생각해봤다. 원래 문학 번역이 쉽지 않은 데다가 텍스트 상당 부분이 독특한 방언으로 이루어졌다면 어떻게 번역해야 원작의 느낌을 살릴 수 있을까? 꽤 어렵다. 한국어로 번역한다면, 이카이노 말 속에 한국어가 많으니까 그대로 살리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오사카 방언의 번역 문제가 남는다. 얼핏 생각하기에 오사카 방언은 부산 방언과 비슷하게 ‘화끈한’ 느낌이 있으니 진한 부산 방언으로 옮기면 그 느낌을 어느 정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의 무대는 이카이노, 이곳 공동체 구성원들은 제주도 출신이 많다. 부산 방언은 맞지 않을 듯하다. 영어로 번역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이카이노 말에 해당하는 방언이 없을뿐더러 한국어 단어를 그대로 번역할 수도 없다. 무난하게 표준 문장으로 번역하면 언어의 느낌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서민들이 사용하는 속어를 살려 번역하면 어느 정도 그 느낌을 살릴 수 있을까?광고 가타카나로 가득한 원작이 자아내는 시각적 이질감은 흥미로운 과제다. 영어에서는 외래어를 따로 표시하지 않지만, 문장 속에서 외국어 단어는 이탤릭체로 표시하기도 하니 그 방법을 적용할 수 있다. 한국어에서는 외래어와 외국어 단어를 따로 표시하지 않지만, 때로 이탤릭 또는 굵은 글씨를 사용하기도 하니까 고려해볼 만하다. 단순히 일본어로 쓴 작품에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다. 문학에서 이른바 ‘이질적’ 문자와 표기를 번역할 때 생기는 고민거리다. 그런데 번역이 꼭 그렇게만 이루어져야 하는 걸까? ‘이카이노 타령’은 번역하기 어려운 작품인 건 맞다. 하지만 발상을 바꿔서, 원작의 느낌을 어떻게 해도 있는 그대로 옮길 수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받아들인다면 어떨까. 그런 다음 창의적인 번역가의 손을 거친다면 원작의 느낌을 얼마든지 옮길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모든 문학 작품에 해당하는 이야기일 수 있다. 한여름에 모처럼 소설을 읽고 있다. 이카이노 말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문장 덕분에, 그 문장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한국어와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을 떠올리게 되었다. 번역이란 원작을 있는 그대로 옮기는 일이 아니라 다시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변하지 않는 사실을 오랜만에 다시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