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뉴욕 증권 거래소(1939). 위키미디어 코먼스광고김영준 | 전 열린책들 편집이사온라인 중고 장터에 올려놓은 물건이 팔리면 “띵동” 하는 알람이 울린다. 1년에 한두번도 안 울리던 것이, 요즘은 당장 안 쓰는 물건은 뭐든 올리면서 알람 횟수가 조금 늘어났다. 전에는 책은 내보내지 않는다는 주의였지만, 지금은 포기했다. 책꽂이에 들어갈 자리가 없어 복도까지 흘러내린 책들을 더 이상 관리할 수 없는 까닭이다. 딱히 아깝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저런 책까지 읽기에는 이미 내게 주어진 시간을 많이 사용해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아내는 알람이 울릴 때마다 “얼마에 팔렸냐”고 궁금해하는데, 바로 대답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기억 못 할 때가 대부분이다. 요즘은 그냥 “가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대꾸하곤 한다. 애초에 얼마에 팔겠다는 생각 같은 건 없고, 검색해서 최저가보다 싸게 기계적으로 올리니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게 나의 판매 전략이라면 전략이다.이런 거래를 하다 보면 깨닫는 것은 책이든, 카메라든, 부동산이든 똑같다는 것이다. 오직 동급 최저가만 의미가 있다. 그것만 거래된다. 그러니 내가 이걸 왜 이 가격에 팔지 하고 아쉬운 감정을 갖는 건 뭔가 오해한 것이다. 우리는 전에 시세대로 산 물건을 지금 시세대로 팔 뿐이다. 어쩌면 우리가 인생에 지불하는 비용도, 얻는 보상도 다 이런 식일지 모른다.광고오래전 일반 기업 다닐 때 교육받았던 경영 지침에는 ‘가능한 한 비싸게 많이 팔라’는 것이 있었다. 나중에 출판업계 있을 때는 ‘통하는 건 저가 정책뿐이다’는 얘기도 들었다. 다 부질없는 얘기가 아닐까 한다. 고가니 저가니 하는 건 이미 중간의 적정 가격을 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그런 게 있을까 싶다. 업자는 팔 수 있는 것만 팔며, 구매자는 살 수 있는 것만 산다. 확실한 건 그뿐이다.가격은 매 순간 오르내린다. 우리는 그걸 보고 ‘아 이 물건이 지금 9만원이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물건값이 정말 9만원이라는 뜻은 아니다. 정확하게는 지금 극히 일부의 사람들이 9만원에 거래를 했다는 뜻에 불과하다. 만일 모든 소유자가 9만원을 회수할 희망으로 동시에 물건을 내놓으면 시장은 순간 붕괴하고 만다. 가격이란 모두에게 지침을 주는 ‘체하지만’ 모두가 그걸 따르는 순간 무너진다. ‘극히 일부만’ 사고파는 게 가격의 조건이다. 그 제한이 어떻게 가능할까. 앞에서 가격에 대해 어떤 감정도 가질 이유가 없다고 썼는데, 이제 그 말을 취소해야 할 모양이다. 감정은 필요하다. 가격은 마음이 내키지 않아 방관하는 사람들 덕분에 유지된다. 그래서 모두가 동시에 물건을 내놓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광고광고그런데 ‘모든 사람이 동시에 팔 수 있는’ 시장이 없냐 하면, 알다시피 있다. 주식 시장이다. 어제 만원이었던 가격이 오늘 10만원, 또는 0원이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곳이다. 주식에 손을 못 대는 이유는 많은데 무엇보다 그 두려운 무한한 변동성을 어떻게 감당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나는 잠을 못 잘 것이다.주식에 열심인 이들이 간혹 기이한 ‘필승 그래프’나 역술인에 의지하는 건 그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가을까지 들고 계셔’ 같은 말은, 결과가 어떻든 당장은 정신적 탈출구를 제공하는 것 아닐까. 우리는 실시간 모니터 화면에서 잠시 벗어나 숨을 쉴 수 있다. 전쟁 앞에서 샤먼이나 신탁에 의지한 고대인들이 갈구했던 것도 비슷했을 것이다. 그건 적어도 가격이 줄 수 없는 확실성이었다.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