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길을 찾아서 - 장남수 노동의 문장] 25화 작가로서의 노동좋은 작품 판매도 초판 인쇄량을 못 넘는다는 건 흔한 일이다. 때론 창고 비용 때문에 책이 폐기되기도 한다. 사진은 버려진 책. 장남수 제공 광고광고 최근 종영한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모자무싸)에는 지원금을 받아 영화를 만들려는 제작자와 투자자의 날 선 대화가 나온다. “국가 돈은 그런 데 쓰는 게 아니야.” 투자자의 핀잔에 제작자는 단호하게 맞받아친다. “그런 데 쓰라고 있는 게 국가 돈이야.” 이 대사를 듣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 그중에서도 무명작가로 글을 쓴다는 것은 나랏돈이 왜 ‘그런 데’ 쓰여야 하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날마다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책장에서 많은 양의 책을 비우며 먹지도 입지도 못하는, 졸지에 한낱 폐기물이 된 책더미가 마치 작가들의 현실처럼 느껴졌다. 어느덧 제법 글쓰기에 전념하고 예술인 세계를 기웃기웃하며 본 풍경은 가히 충격이었다. 공장에서 완제품이 나오는 순간만이 노동이 아니듯,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며 고뇌하는 시간 역시 엄연한 노동이다. 그러나 구상과 준비의 노동은 평가절하되고 결과물의 가격 매김은 지나치게 저렴하다.광고광고 나는 생계의 압박을 받으며 글 쓰는 작가랄 건 아니지만, ‘젊은 작가들을 보면 도대체 어떻게 살지?’ ‘뭘 먹으며 글을 쓰고 연극을 하고 노래하고 책을 만들지?’ 수시로 놀랍다. 인간의 삶을 기록하고 시대를 증언하는 예술가가 정작 자신은 굶어야 하는 처지라면 사회의 상상력도 빈곤해지지 않을까? 예술 각 분야에 대한 견문은 협소하지만, 작가의 경우 일반적으로 책 한권을 완성하는 데 몇년씩 걸리기도 한다. 가령 출판 계약 뒤 권당 1만8000원 정도의 판매가로 1천권을 출판한다고 치면, 인세는 10% 세금 떼고 160여만원이 된다.(요즘은 초판을 800권, 500권도 찍는다.) 지인들에게 보낼 책을 구매하고 우편료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몇년을 무임금으로 자판을 두드려 얻은 건 한권의 책뿐이다. 광고 어떤 작가들은 언감생심 인세를 기대해서가 아니라 출판사의 손해가 걱정되어 팔아보겠다고 직접 뛰기도 하고 지인들의 피로감을 애써 모른 척 책을 홍보하거나 작가들끼리 상부상조 우정 구매도 한다. 좋은 작품 판매도 초판 인쇄량을 못 넘는다는 소식에 놀라는 건 흔한 일이다. 독자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창고 비용 때문에 폐기되는 현실 앞에 자신이 부정당하는 소외와 열패에 몰린다. 이런 판에 나까지 보태 책을 내면 뭐 하나, 나무나 베는 거 아닌가, 자괴감에 한글 자판이 흐려질 때가 많다. ‘글 쓸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월 급여 80만원이 못 되는 비영리단체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계약 기간 7개월짜리 도서관 상주 작가 지원사업에 스물다섯명 지원자를 다 불러 면접하는 과정에 굴욕감을 느끼기도 하며, 20년째 원고료며 인세는 동결, 중간착취 구조는 더 정교해졌으며, 10명 중 7명은 집필 노동으로 생계가 불가능하고 연평균 소득이 1천만원 이하가 60% 이상’이라는 기사도 있다. 부익부 빈익빈으로 극명하게 갈라지는 것 또한 우리 사회 예술인의 현실이다. 최근 대기업의 수억 단위 성과급 분배 과정을 보며 원 바깥의 노동자들뿐 아니라 자판 앞에서 성실히 글 쓰는 젊은 작가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 사회에서 문학을 선택하는 일은 얼마나 무모한 용기일까. 생활고에 시달리다 삶을 포기하는 작가도 있고 저작권을 갈취당하거나 불공정한 계약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작가들은 그야말로 반복적으로 열패감에 휘둘리며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운다. 예술 노동은 흔히 좋아하는 일을 하는 자유로운 직업으로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소득 공백이 반복되는 불안정 노동에 가깝다. 플랫폼, 제작사, 에이전시, 유통을 거치는 동안 수익 배분은 불투명하고 야근이나 장시간 노동은 일상이다. 이름을 알릴 기회라거나, 경력 쌓는 셈 치라는 말이 임금을 대신한다. ‘열정페이’라는 말이 가장 자주 등장하는 곳도 이 현장일 것이다. 어쩌면 예술가를 더 빈곤하게 하는 건 예술은 돈을 초월해야 한다는 낭만화일지도 모르겠다.광고 따라서 예술인들은 절박하게 정부 지원 사업에 매달린다. 출판지원금이나마 확보되면 출판하기 좀 더 수월하니까. 창작지원금을 받게 되면 인세보다 나으니까. 다음 작품에 매진할 최소한의 동력을 얻고 싶으니까. 하지만 예술인은 많고 지원은 한정적이다. 한 문화재단에서 창작지원금 수령 조건으로 혹여 발생할지도 모르는 지원금 환수에 대비한 지급보증보험증권 제출을 요구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창작지원은 복지, 공공지원 성격인데 금융 신용을 조건으로 달면 오히려 취약 예술인은 배제되는 것 아니냐, 사후 감사의 어려움을 이해하더라도 과도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 재단의 설명은 ‘사업 미이행, 결과물 미제출 등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할 경우, 지원금 환수가 필요할 수 있음에 대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예술인들의 현실을 외면한 행정 편의주의라고 볼 수밖에 없다. 생전에 그림 한점 팔기 어려웠던 고흐나 담배 은박지에 그려야 했던 이중섭, 2011년 생활고 끝에 세상을 떠난 최고은 작가 등 금융 신용이 바닥인 예술가는 그저 감수해야만 하는 숙명일까? 지난 5월 광주 5·18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했을 때였다. 이날 행사의 마지막은 3부작으로 구성한 공연 ‘오월 찬란’이었다. 햇살 내리쬐는 옛 전남도청의 옥상과 난간, 땅 위의 무대에서 흰옷을 입은 배우들이 북을 치고 춤을 추며 영령을 위무하고 그해 오월의 염원이 광장 위로 일제히 날아오르는 듯한 엄숙하고 장엄한 공연이었다. 대통령의 기념사, 5·18 희생자의 증언 등 여러 과정을 통째로 집약해 하나의 상징으로 완성하는 느낌, 더운 날씨의 광장에서 조금은 지쳤던 사람들의 눈시울이 젖었다. 누군가의 영혼을 울리는 예술이, 정작 그 예술가의 삶을 지켜내지는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2026년 5월18일 광주 5·18민주항쟁 46주년 기념행사에서 펼쳐진 공연 ‘오월 찬란’의 한 장면. 장남수 제공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생전에 사재로 만든 레지던스 ‘토지’는 심사를 통해 선정된 작가들에게 1~3개월 집필실을 무상 제공하면서도 조건을 달지 않는다. 작가들이 ‘빈둥빈둥’ 동네를 걸어 다니는 걸 본 누군가가 “저러면 글은 언제 쓰느냐”고 하자, 박경리 선생이 “뭘 하든 가만히 두라, 그게 다 작품 생산의 과정이다”라고 당부한 내용이 전설처럼 회자된다. 덕분에 나도 그곳을 거쳐 단편소설을 출간했고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의 예술인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통해 견문을 넓힌 뒤 또 한권의 산문집을 출간할 수 있었다. 비슷한 방식의 레지던스가 국내외 여럿 있어 작가들의 숨통을 틔울 뿐 아니라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안다.지난 2024년 필자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 예술인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기간, 시드니에서 뱅크시 전시회를 관람했다. 장남수 제공 문화예술에 관심이 컸던 김대중 대통령도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말라” 했다. 성과를 재촉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순간 누군가는 내 귀에 대고 차갑게 속삭이는 것 같다. “그런 말 할 시간에 글을 써. 잘 쓰면 될 거 아냐.” 냉혹한 시장 논리 앞에서 말문이 닫힌다. 하지만 세상의 잣대로 잘나고 유려한 작품만 존재해야 한다면 우리 삶의 거칠고 투박한 응달은 누가 기록할 것인가. 못난 작가도, 알려지지 않은 예술인도 살아남아야 한다. 예술인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노동권이다. 노동기본권의 정당한 보호를 받기 위해 100여명의 작가들이 지난 3월12일 노조 설립 신고서를 제출했으나 원칙적인 처리 기간이 사흘인데도 아직 심사 계류 중이라고 한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자신의 소신과 가치 증명을 위해 외롭게 싸우고 있을 예술인들에게 박경리 선생의 말을 빌려 나직이 연대의 인사를 건네고 싶다. “이 시간은 언젠가 반드시 세상에 필요한 작품으로 생산될 거야.” 장남수 | 경남 밀양 출생. 1958년생으로 열여섯살부터 공장에서 일하며 신정야학에서 공부했다. 원풍모방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 해고된 뒤 노동운동을 하며 글을 써왔다. 늦깎이로 검정고시를 거쳐 성공회대에서 공부했다. 지금은 제주도에 살면서 걷고 배우며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1984년 ‘빼앗긴 일터’를 시작으로 ‘빼앗긴 일터, 그 후’ ‘파문’ ‘노동의 시간이 문장이 되었기에’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