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일러스트레이션 노병옥광고조형근 | 동네 사회학자“민나 도로보데스!” 모두가 도둑놈이라는 뜻의 일본말이다. 1982년에 방영된 텔레비전 드라마 ‘공주갑부 김갑순’ 속 대사로 한 시대의 유행어가 됐다. 남이야 죽든 말든 자기 이익만 챙기는 세상이라는 냉소적 믿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요즘에는 이 믿음이 ‘경제적 인간’이라는 점잖은 표현에 담겨 더 널리 퍼져 있다. 인간은 본성상 이기적이고 합리적이어서, 계산에 따라 이득만 추구할 뿐 이득 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이 그렇게 단순한 존재였다면 세상은 진작에 파멸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보다는 복잡한 존재다. 이기심과 더불어 약간의 양심과 측은지심도 갖춘 인간은 도처에 많다. 어지러운 세상도 쉽게 망하지 않는 이유다.군부독재에 맞서온 미얀마 난민을 돕자는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할까 고민하다가 본성론을 꺼냈다. 연민도 우리의 본성 중 하나지만 무조건적인 건 아니다. 이곳에도 고통받는 이들이 많은데 왜 먼 나라의 낯선 이들을 도와야 할까? 미얀마 난민도 절박하겠지만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 시리아, 예멘, 콩고 사람은 절박하지 않을까? 당연한 의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누가 가장 절박한지 따져보자며 올림픽을 열 수도 없다. 누군가는 내 옆의 이웃을 돕고 누군가는 팔레스타인 난민과 함께하기 위해 먼 길을 나선다. 멀고 가까움을, 절박함의 정도를 비교할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연민의 마음이, 그 너머 연대의 의지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누구를 어떻게 도울지는 ‘우연’과 ‘인연’이 정한다.광고나에게도 그렇게 우연히 인연이 찾아왔다. 2021년 2월, 미얀마 군부 쿠데타 직후였다. 광주항쟁을 기억하는 많은 한국인이 미얀마 시민의 저항을 지지했다. 내가 사는 파주에서도 촛불이라도 들자며 모였다. 모임마다 돌아가며 작은 촛불을 이어갔다. 자족적인 보여주기가 아닐까, 고민도 됐지만 가늘게 이어간 촛불 덕분에 국내의 미얀마인들과 연락이 닿았다. 미얀마의 역사를 조금 알게 되자 뭐라도 더 하고 싶어졌다. 그해 6월부터 미얀마 북부의 보육시설 한곳을 돕는 모임(미얀마연대파주시민모임)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인연은 깊어졌다. 미얀마와 접한 타이의 국경도시 매솟에 있는 미얀마 임시정부(민족통합정부)까지 연락이 닿았다. 직접 와주면 더욱 힘이 나겠다는 바람을 들었다. 파주이주노동자센터와 시민모임, 파주미얀마공동체 성원들이 500만원의 후원금 전달을 목표로 나섰다. 한겨레 독자들이 큰 힘을 줬다. 도움을 청하는 칼럼을 이 지면에 쓴 다음 통장에 800만원이 넘게 모였고, 후원금 총액은 1350만원을 넘었다.광고광고2024년 2월에 여섯명이 매솟의 난민촌을 방문했다. 민족통합정부 관계자들을 만나고 난민학교 두곳에 약속한 후원금을 전했다. 아이들은 환하게 웃었고, 어른들은 손을 흔들어주었다. 엄숙했던 우리 마음이 풀렸다. 꾸밈없는 환대를 받았다. 같이 밥 먹고 노래 부르며 우정이 싹텄다. 왜 직접 와달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남은 후원금으로 한글학당을 세웠다. 미얀마에서 1988년 8월8일에 일어난 ‘8888민주항쟁’ 기념일인 2024년 8월8일, 매솟에서 한글학당 ‘손에손잡고’(미얀마명 트왈렛)가 개교했다. 20여명의 미얀마 청년이 찾아왔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며 대학에서 한국어를 익힌 시민불복종운동 활동가가 교사를 맡았고, 여러 활동가들이 지원 역할을 자처했다. 온라인 개교식의 감격을 잊기 어렵다.광고2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 학당에서는 17살에서 32살 사이 미얀마 청년 50명 이상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고 있다. 서울대 언어교육원의 한국어 교재를 기초로 기초과정(기초+1단계), 2단계, 3단계로 나눠 수업 중이다. 한국 취업을 위한 이피에스-토픽(EPS-TOPIK) 준비반도 두개 운영 중이다. 학생과 가족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미얀마 출신 의사도 합류했다.학생 대다수는 군부 정권이 2024년 초부터 실시한 강제징집을 피해 매솟으로 온 시민불복종운동 활동가들이다. 대부분 합법적인 비자가 없다. 타이 중앙정부와 지역당국은 묵인과 단속을 병행하며 이들의 값싼 노동력을 관리한다. 비자 취득, 단속과 석방, 추방 등의 과정에 브로커의 농간이 종종 개입한다. 난민 청년은 최하층에서 착취당한다.이들의 처지는 절박하지만 좀 더 인간다운 삶,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건 우리와 다르지 않다. 한국어 공부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길의 하나다. 하지만 적절한 비자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꿈이기도 하다. 한국어 교사는 “처음에는 한마디도 못 하던 학생들이 시간이 지나며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걸 보면 뿌듯하고 보람이 생긴다”면서도, 이들이 매솟을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해 안타깝다고 전한다. 민족통합정부 노동부의 관계자이자 시민불복종운동 지도자 가운데 한명인 스웜 이씨는 말한다. “미얀마가 민주주의를 회복할 때만 그들에게 기회가 생길 것입니다. 대부분의 수강생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이 과정을 수강하고 있습니다.” 이 청년들에게 조국의 민주화와 개인의 더 나은 삶은 별개의 꿈이 아니다.마찬가지로 학당은 단지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에 그치지 않고, 투쟁하는 미얀마 시민과 지지하는 한국 시민을 이어주는 연대의 공간이 됐다. 지난해 2월에 다시 매솟을 찾았을 때는 파주의 미얀마 노동자들과 한국인 청년들도 함께 학당을 방문했다. 연대는 먼 곳에 있지 않다. 공간은 작아도 여기 깃든 뜻은 작지 않다.학당 운영에는 임대료, 인건비, 학용품·약품 구매비 등 적잖은 비용이 든다. 후원금은 진작에 동이 났고, 외부 재단의 지원도 여름이면 끝난다. ‘손에손잡고’의 운영진과 의논한 뒤 한국의 시민사회에 연대의 손길을 요청하자고 뜻을 모았다. 큰돈의 고마움이야 말할 나위도 없지만, 길게 이어지는 십시일반의 마음이 간절하다. 일주일에 커피 한잔 값 3천원을 아껴서 한달에 1만2천원 정도를 꾸준히 도울 수 있다면, 우리의 연대도 오래 이어지지 않을까? 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에게 이 글이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지는 우연이 되면 좋겠다. 환대와 연대의 공간, 미얀마 난민 청년들을 위한 한글학당 ‘손에손잡고’에 당신의 관심을 부탁합니다.(우리은행 1005-801-795685, 파주이주노동자센터샬롬의집)
‘손에 손 잡고’ 국경 넘은 우정 [조형근의 낮은 목소리]
조형근 | 동네 사회학자 “민나 도로보데스!” 모두가 도둑놈이라는 뜻의 일본말이다. 1982년에 방영된 텔레비전 드라마 ‘공주갑부 김갑순’ 속 대사로 한 시대의 유행어가 됐다. 남이야 죽든 말든 자기 이익만 챙기는 세상이라는 냉소적 믿음을 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