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인공지능(AI)이 생성한 언어가 표준이 되면 인간이 주도적 읽기 능력과 사고력을 상실하는 텍스트포칼립스를 맞을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광고매일 읽고 종종 쓴다. 직업이니 어쩔 수 없지만, 읽는 시간은 시나브로 줄고 있다. 이유야 여러 가지다. 흔한 변명으로 스마트폰이 주범이고, 온갖 세상 즐거움이 공범이며, 노안도 한몫한다. 출판평론가도 이 지경인데, 세상 사람들이라고 별수 있으랴. 읽는 사람들이 계속 줄면서 책은 이제 덕후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읽는 일은 그 자체로 세상을 움직이는 중요한 힘인데, 읽는 사람을 찾기란 기적과도 같다. 점입난경, 책에 모든 것을 물어보던 시대는 기억조차 없고, 작금의 시대는 인공지능(AI)과 무엇이든 의논한다. 이런 세태를 잘 알아서일까, ‘AI만 읽는 시대, 퇴화하는 인간 지능에 관한 경고’라는 부제를 단 미국 언어학자 나오미 배런의 ‘읽지 않는 사람들’은 반갑기 그지없다. 지은이는 단지 인공지능에 의존하지 말고 책을 읽자는 고리타분한 설교를 늘어놓지 않는다. 오히려 읽기의 정의부터 다지면서 ‘읽는 종(種)’, 즉 독자의 탄생과, 유구한 역사 속에서 독자들은 무엇을 읽어왔는지 정리한다. 이어 인간이 읽는 이유를 개인과 사회적 차원 속에서 풀어내면서, 궁극에는 인공지능을 읽기에 활용하는 방안까지 제시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읽는다는 일의 당위를 재확인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기술을 그 범주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지은이는 읽는 사람의 정체성부터 명확히 한다. 읽기 능력을 갖춘 사람은 “광선검”을 가지고 있다. 이 광선검은 “무지부터 지루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퇴치하는 데” 도움이 된다. 쇼츠와 릴스가 세상을 점령하는 마당에, 책만이 인간의 무지와 지루함을 퇴치한다는 선언은 그 자체로 귀하다.광고읽지 않는 사람들 l 나오미 배런 지음, 전병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만2000원 사실 모든 세대가 온라인으로 향하고 있지만, 책이 가진 고유한 실재감, 즉 물성에서 진정성을 느낀다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이는 ‘누가 썼는가?’라는 주제로 확장된다. 현대인은 인공지능이 만든 작품들을 수도 없이 만나지만, 결국 저자 혹은 작가의 이름이 분명한 작품을 더 선호한다. 2012년 이스라엘에서 ‘장미는 다른 어떤 이름으로도 장미’(A Rose by Any Other Name)라는 제목의 조사·연구가 있었다. 독자들은 “실제 시인의 이름을 밝힌 진짜 시, 가짜 이름을 붙인 진짜 시, 모방 대상이었던 실제 시인의 이름을 붙인 가짜 시, 가짜 이름을 붙인 가짜 시” 중 작품의 질이 높은 시를 선택해야 했다. 실험 결과 “유명 시인의 이름이 붙은 시(진짜 시와 가짜 시 모두)”가 가짜 이름을 붙인 시보다 작품 질이 높다고 응답했다. 가짜 이름을 단 시들 중에는 유명 시인들의 시가 있었음에도 결과는 그러했다. 이야기를 확장해 보면, 인공지능이 만들어낸(그리고 만들어낼) 시를 포함한 숱한 작품들은 진정성 면에서 인간의 그것과 경쟁 불가이다.광고광고 물론 역사 이래 모든 사람이 독자는 아니었다. 여성이 책을 손에 든 건 18세기 무렵이고, 미국에서는 노예들의 읽기를 원천봉쇄 했다. 비단 농장주나 노예 소유주들만 반대한 건 아니다. 18세기 네덜란드의 철학자 버나드 맨더빌은 “고통스러운 삶의 처지에 순응하는 일을 방해한다”는 이유를 들어 빈곤층의 읽기와 쓰기, 산수가 백해무익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경제적·사회적·실용적 요인과 유행” 등이 결합하면서 읽기는 시대 흐름을 주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지혜와 지식의 담지자이자 시대 흐름을 주도하는 역할에서 책과 읽기는 그 중요성이 퇴색하지 않았음에도, 요즘엔 변방의 목소리처럼 인식되곤 한다. 인공지능의 한 형태인 대규모 언어모델(엘엘엠, Large Language Model) 때문이다. 지은이는 엘엘엠의 정보 수집 방식을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먹는다”고 다소 순하게 표현했지만, 기실 약탈적이다. 여기서 대두되는 문제가 바로 ‘공정 이용’이다. 정당한 저작권 계약도 없이 많은 책들이 엘엘엠의 데이터가 되고 있다. 실제로,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2024년 미국의 인공지능 기업 앤트로픽은 ‘프로젝트 파나마’(Project Panama)를 통해 최대 200만권의 종이책을 구매해 인공지능 학습 데이터에 집어넣었다. 저작권 계약은 없었지만, 15억 달러의 합의금으로 모든 사안은 종결되었다.광고미국의 인공지능 기업 앤트로픽은 ‘프로젝트 파나마’(Project Panama)를 통해 최대 200만권의 종이책을 인공지능 학습 데이터에 집어넣었다. SNS 갈무리 지은이는 종이책, 전자책, 웹사이트 게시물, 엘엘엠 생성 결과물이든 상관없이 “인간이 읽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사고와 지식, 신념, 그리고 서로 관계 맺는 방식을 형성한다”면서 무엇이 ‘진실을 말하는가’에 더 천착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한국의 대학 입시지원서나 기업의 입사지원서를 보면 알 수 있다. 비등비등한 자기소개서 천지다. 미국의 대학 지원자는 인공지능으로 자기소개서를 쓰고, 그것을 다시 인공지능이 읽고 평가, 선발한다. 인공지능 세상에서 개인적 특성, 자질 등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인공지능의 파고를 넘을 수 있다는 사실은, 알면서도 쉽게 간과된다.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서 있을지라도 독자는 계속 읽고 타인을 이해하고, 결국 연결되어야 한다. 인간의 읽기는 인간 사회를 맺고 유지하는 방식과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시종 ‘텍스트포칼립스’(Textpocalypse= Text(문자)+apocalypse(파멸)의 합성어)를 걱정한다. 인공지능이 생성한 언어가 표준이 되면 인간의 주도적인 ‘읽기’와 ‘생각’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생각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어떤 독자가 되고 싶은지’ 스스로 정해야” 한다. 사회적 관심 환기도 중요하다. 교육의 기초는 ‘읽기’인데, 이 원칙이 약해지면 민주주의의 기반도 무너진다. 정치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인지적 자원이 줄어드는 탓이다. 더 본질적인 측면에서, 우리는 ‘인간이 만든’ 것에 끌리는 진정성을 지닌 존재들이다. 인공지능을 무턱대고 배척할 필요는 없지만, 인간이 “기술의 쓰레기 더미 위에” 버려질 존재들은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읽지 않는 사람들’은 제목과 달리, 읽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져도 책은 영원할 것이며, 독자도 영원할 것이라는 기대를 충만케 하는 책이다. 장동석 출판평론가광고
AI 시대에도 변치 않는 ‘읽기의 힘’…“무지·지루함 퇴치하는 ‘광선검’” [.txt]
매일 읽고 종종 쓴다. 직업이니 어쩔 수 없지만, 읽는 시간은 시나브로 줄고 있다. 이유야 여러 가지다. 흔한 변명으로 스마트폰이 주범이고, 온갖 세상 즐거움이 공범이며, 노안도 한몫한다. 출판평론가도 이 지경인데, 세상 사람들이라고 별수 있으랴. 읽는 사람들이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