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지난 7월19일 경북 안동시 일직면 귀미1리에서 한 주민이 폭우에 떠밀려온 산불 이재민 임시주택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광고정봉비 | 이슈팀 기자 주말 오후, 탄천 풍경을 바라보며 러닝을 하다가 문득 멈춰 서는 순간이 있다. 다리 밑으로 진입하는데, 호우로 하천변이 물로 가득 찼던 당시의 수심과 날짜가 그 높이에 맞게 다리 기둥에 기록된 것을 볼 때다. 그 벽에 가까이 가 내 키와 수심을 손으로 재본다. 수심 기록은 대개 성인 남성 평균 키를 살짝 웃도는 내 머리 위에 있다. 지금 서 있는 곳이 엄청난 밀도의 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는 생각이 들면 어쩐지 기분이 오묘해진다. 괜히 숨을 한번 참아본다. 거친 물살에 나뭇가지와 온갖 잔해물들이 떠밀려 내려가는 장면을 상상해보기도 한다.내 별난 습관은, 어쩌면 지금도 가끔 꾸는 악몽과 연관이 있을 것 같다. 키 150㎝가 채 안 되던 초등학생 시절 우리 가족은 경기도에 있는 워터파크를 즐겨 갔다. 뱃고동 소리의 경고와 함께 2m가 넘는 파도가 온 사람을 휩쓸고, 물놀이객들은 옆 사람에게 치이고 물을 먹어 가면서도 재밌다고 까르륵대는 장소인 ‘파도풀’은 내가 항상 제일 먼저 달려가던 곳이었다. 파도풀에서 놀던 어느 날, 나는 구명조끼를 입지 않고 수영을 하는 ‘객기’를 부리다가 물살의 흐름 때문이었는지 점점 수심이 깊은 곳으로 떠밀려 갔다. 바닥에 발이 닿지 않게 되자 패닉이 몰려왔다.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는 육성은 목구멍으로 밀려오는 물로 둔탁한 ‘캑캑’ 소리로 변해 힘을 잃었다. 머리는 쨍 아파오고 버둥대는 팔의 힘도 점점 빠져나갔다. 머리의 대부분이 물에 잠겨갈 무렵 겨우 구조대원이 내 어깨를 잡고 물 위로 끌어올려줬다. 코에서 느껴지는 따가움과 식도로 거칠게 들어오던 물의 감각이 간혹 꿈에서 다시 찾아올 때 나는 어김없이 발버둥질과 함께 깨어난다.광고최근 내 취재가 수해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 지난해 산불에 이어 올해도 수해를 입은 경북 안동 주민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것도 이런 경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일가족 3명이 목숨을 잃었던 2022년 서울 신림동 반지하 폭우 때 사망 가족 바로 맞은편 반지하에 살던 한 할머님은 “가슴까지 차올라 짓누르던 물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아직도 비가 오면 심장이 벌렁벌렁해서 약이 있어야 겨우 잠이 들 수 있다는 말과 함께. 기사에 담지는 못했지만 산불 당시 제공받은 임시주택이 수해로 물에 떠내려가는 경험을 한 안동의 한 주민이 비슷한 증언을 하기도 했다. 아내와 함께 가슴까지 차오른 물을 헤치며 마을 제일 높은 지대로 피하던 그날의 트라우마로 인해 술에 의지해야 겨우 잠이 든다는 것. 실존적 죽음의 공포를 체험하게 한 물의 육중한 감각은 술이든 약이든 취한 상태가 되어야 겨우 잊힐 수 있는 것이었다.자연 앞에서, 혹은 거대한 불운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다만 많지 않은 것 중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묵묵히 해내는 것도 인간이다. 수해 피해자의 트라우마 치료를 지원해주는 것. 부실 공사, 건물 건축 기준 미비 등 ‘인재’로 이어질 수 있는 요인들을 없애는 것. 기후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말로는 쉬울 이러한 것들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면, 물은 나 혹은 가족과 친구 등 우리 주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거나 극심한 공포를 체험하게 해준다.광고광고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