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3일 오후 서울시 광진구의 한 반지하 쪽방에서 건강 악화로 중증 질환 발생 뒤 일자리를 잃고 수술로 인한 부채에 시달리는 강순남(가명·66)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광고낮 최고기온이 29도까지 오른 데다 장마까지 겹쳐 고온다습했던 지난 3일 오후. 강순남(가명·66)씨가 사는 서울 광진구의 반지하 쪽방에는 보일러와 선풍기가 동시에 돌아가고 있었다. 방 전체를 뒤덮은 곰팡이 때문이었다. 보일러 열기로 가득 찬 방안에서 땀이 줄줄 흘렀지만, 숨을 쉬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더위보다 무서운 건 지독한 냄새였다. 언제부턴가 천장과 바닥 곳곳에 스며든 물기는 마를 날이 없었다. 곰팡이가 뒤덮은 쪽방은 순남씨의 ‘숨 쉴 권리’조차 빼앗아 가고 있었다. 순남씨는 이 집에서 24년을 살았지만, 단 한 번도 이곳을 ‘보금자리’나 ‘안식처’로 여긴 적이 없다. 그저 하루 12시간의 고단한 식당일을 끝낸 뒤 잠만 청하는 곳일 뿐이었다. 그사이 순남씨의 몸은 조용히 망가지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그는 버스 안에서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구급차에 실려 간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병명은 ‘감염성 심내막염’. 세균이나 곰팡이 같은 미생물이 심장 내막에 붙어 염증을 일으키는 질환으로,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치사율이 100%에 달하는 병이다. “발병 원인을 정확히 알 순 없지만, ‘곰팡이 집’에서 들이마신 한숨 한숨이 결국 병이 된 게 아닐까 싶어요.” ■ ‘혼 자’인 순남씨, “죽기 살기로 재활치료”광고 순남씨는 병원에 이송된 직후 곧바로 ‘인공 판막 치환술’을 받아야 했다. 보통은 4~6주간 항생제 치료를 하며 경과를 지켜보지만, 순남씨는 이미 심장판막이 심각하게 망가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당장 수술 계약금이 문제였다. 20여년 전 배우자와 헤어진 뒤 홀로 지내온 순남씨에게는 도움을 요청할 가족이 없었다. 지갑을 탈탈 털어봐도 전 재산은 100만원 남짓이 전부였다. 살기 위해서는 정신을 붙잡아야 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려 사정했다. 육체의 고통보다 서러움이 앞섰다. “내가 잘못 살았구나, 혼자인 사람은 아픈 것도 죄구나 느꼈죠.” 가까스로 친구에게 100만원을 더 빌려 수술대에 오를 수 있었다. 중환자실을 벗어나고부턴 또 다른 두려움이 엄습했다. 체력과 심폐 기능이 바닥난 데다 수술 부위의 통증과 어지러움 탓에 걷기는커녕 바로 서는 것조차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순남씨에게 ‘두 다리’는 생존권 그 자체다. 그는 “나한테는 두 다리밖에 없다. 죽는 날까지 혼자 살아야 할 텐데 걷지도 못하면 어쩌나 싶어 죽기 살기로 재활치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현재는 건강을 꽤 회복한 상태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어지럽고 숨이 가빠온다. 최근에는 왼쪽 귀에 돌발성 난청이 찾아왔고, 뇌경색 증상까지 나타나 신경외과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광고광고강순남(가명)씨는 낙상위험이 높은 외부 화장실, 오래된 도배·장판, 주방 호스를 연결한 간이 샤워 시설 등 주거환경의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 다시 ‘곰팡이 집’으로 돌아왔지만 두 달간의 병원 생활을 마친 순남씨는 지난 1월 말, 한겨울의 추위 속에 다시 2평 남짓한 반지하 쪽방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마주한 현실은 가혹했다. 보일러는 동파돼 터져 있었고 전기장판마저 고장 나 있었다. 집주인에게 연락했지만 “그동안 방세가 밀렸으니 보일러를 새로 놔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순남씨는 생활고로 30만원인 월세를 여러 차례 내지 못한 상태였다.광고 순남씨는 급한 대로 보일러를 고치기 위해 30만원을 빌려 수리 기사를 불렀다. 하지만 꽁꽁 언 보일러를 녹이고 교체하는 비용은 총 75만원이었다. “30만원밖에 없는데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추위에 떨며 간곡히 부탁하는 순남씨에게 수리 기사는 뜻밖의 손을 내밀었다. “다음에 건강 회복하시면 천천히 갚으세요.” 순남씨는 요즘도 어떻게든 생활비를 쪼개 매달 5만원씩 이 ‘은인’에게 보내고 있다. 겨우 추위를 면하자 또 다른 문제가 터졌다. 노후화된 천장에서 시멘트 가루가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식당에서 일할 때는 끼니를 대부분 일터에서 해결했지만, 이제는 집에서 밥을 지어 먹어야 한다. 하지만 전기밥솥이 없어 냄비로 겨우 밥을 짓던 어느 날, 하얀 쌀밥 위로 시멘트 가루가 후두두 떨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주방이 좁아 제대로 음식을 해 먹기도 힘든데, 겨우 지은 밥 위로 시멘트 가루가 새까맣게 앉은 걸 보며 ‘이제 집에서 밥해 먹기는 글렀구나’ 싶었어요.” 순남씨는 주민센터에서 지원하는 간편식이나 이웃들이 나눠주는 음식으로 겨우 끼니를 때우고 있다.3일 오후 서울시 광진구의 한 반지하 쪽방에서 강순남(가명)씨가 자신의 침대에 앉아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 “건강 회복해 일하게 되면, 동료들에게 밥 한끼 대접하고파” 건강 악화로 일자리를 잃은 후 매월 나오는 정부보조금 약 90만원이 순남씨의 생계 수단이다. 이 지원금 대부분은 월세와 공과금, 기초 식비로 고스란히 지출된다. 다행히 후원단체의 도움으로 수술비와 입원비는 고비를 넘겼지만, 불안정한 일자리와 수술 계약금, 월세 체납 등으로 쌓인 빚 1300여만원과 앞으로 계속될 통원 치료비가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광고 무엇보다 다가올 폭염이 걱정이다. 그의 방에 있는 가전제품이라곤 주민센터에서 준 낡은 선풍기와 지인에게 1만원을 주고 산 작은 손선풍기, 그리고 빗물이 스며들어 고장 난 텔레비전이 전부다. 냉장고마저 오래돼 고장 나는 바람에 지금은 이웃집 냉장고를 빌려 쓰고 있다. 눈치가 보여 꼭 필요한 음식만 넣어둔다. 평소에는 시원한 물 한 잔 마실 수 없어, 목이 탈 때면 주변 편의점까지 걸어가 생수를 사 온다. 샤워는 주방 싱크대 옆에 연결된 호스 하나로 해결해야 한다. 음식을 만드는 공간과 몸을 씻는 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구조다. 순남씨는 “좁은 주방에 쪼그리고 앉아 대야에 물을 받아 몸에 끼얹는 식으로 씻는다”고 말했다. 순남씨는 어떻게든 건강을 회복해 스스로 빚을 갚고 자신의 삶을 꼿꼿이 꾸려나가고 싶어 한다. “갑작스러운 병으로 일을 못 하게 돼 정부 도움을 받고 있지만, 하루빨리 건강해져서 다시 일하고 싶어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 제가 도움을 받은 것처럼, 사각지대에 놓인 다른 분들도 도움을 받았으면 해서…. 잊지 않고 베풀고 살고 싶어요.” 이처럼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건 곁에서 응원하는 사람들 덕분이다. “쓰러지기 전 다니던 식당 동료들이 지금도 돌아가며 안부 전화를 해줘요. 제가 강씨여서 별명이 ‘미스 깡’이었거든요. ‘미스 깡. 이겨낼 수 있을 거야!’ 하고 응원해주는데 눈물이 날 만큼 고맙더라고요.” 외톨이인 줄만 알았던 자신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어 준 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는 것. 순남씨는 그 소박한 꿈이 이루어질 날을 기다리며 매일 기도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