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2022년 8월1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폭우 희생자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불평등이 재난이다’라고 적힌 손팻말 위에 흰 국화 한송이를 올려둔 채 바닥에 앉아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광고이종건 | 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 며칠 전 집에 물이 넘쳤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집에 물이 넘치면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수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특별한 기술이 생긴 건 아니다. 한때 반지하 살며 걸핏하면 물이 넘치니 그 파국을 수용할 마음가짐을 갖추게 됐을 뿐이지.수건으로 훔치고 짜내고, 그걸 밖에 내다 버리기를 반복, 에어컨과 선풍기를 최대로 틀어놓고 단순한 일을 반복하다 보면 이내 바닥은 마른다. 그렇게 바닥이 마르면 화장실과 주방에서 번갈아 물을 틀어본다. 윗집에 전화해 마찬가지로 틀어보라 한다. 그러다 보면 원인이 대강 좁혀지고, 비로소 전문가에게 출장을 부탁한다. 낡은 건물, 관리 안 된 배관이 문제였다. 그럼에도 평소 사용량으로는 문제가 없었는데, 갑자기 들이닥치는 폭우에 역류했단다. 이런저런 조치를 해서 당장에는 해결했다. 그러나 지금도 폭우가 쏟아지면 화장실에서부터 하수구 냄새가 올라온다.광고아, 나는 비가 오는 날을 정말 좋아했다. 빗방울 튀어 창틀과 침대보가 젖더라도 빗소리 듣고 싶어 창문을 열어둘 정도였다. 야외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는 미안하고 염치없는 말이지만, 온종일 집에 갇혀 나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장마철이 좋았다. 지저분한 습기를 낭만이라 여기며 견디고 빗소리에 어울리는 전이나 부쳐 먹는 일. 갑작스레 쏟아지는 장대비에 장을 보러 갈 수도 없으니 야채 칸 굴러다니는 애호박을 썰어 밀가루 묻혀 간단히 부쳐낸다. 그마저 여의치 않을 때는 양파만 썰어 부침 가루에 부쳐도 달큰하니 맛있다. 습기에, 기름 냄새에, 빗소리가 버무려진다. 처마 밑에 앉아 상쾌하게 부쳐 먹을 처지는 아니지만, 나름의 낭만이 있다. 서울 빌라촌의 여름을 장식하는 기름내와 습기. 제아무리 하늘에 구멍이 뚫려 봐라 이 벽돌집을 무너뜨릴쏘냐 호기롭게 엉망인 날씨를 사랑하는 일. 내가 장마를 나는 방식이었다.그랬던 것이 이제는 옛말이 되어간다. 더는 그런 장마는 없다. 장대비라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 폭력적인 폭우에는 창문을 닫게 된다. 오는 것도, 그치는 것도 대중이 없으니 전 부치겠다는 여유를 부릴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이번 한반도의 여름을 각오하라고 했으나 정작 더위는 찾아볼 수 없고 비와 바람, 습기로 가득 찬 거리를 걷는다. 40도 육박하는 살인적 더위가 없으니 다행일까. 그보다는 종잡을 수 없는 날씨에 불안이 크다.광고광고서울 관악구 반지하 수해 참사, 이제 곧 4주기를 맞는다. 기후위기는 가난한 이들의 삶부터 먼저 잡아먹는다. 반빈곤 운동 활동가들은 이맘때면 피켓을 든다.“불평등이 재난이다. 기후정의 요구한다!”전 지구적 기후위기에 남반구의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홍수가 나고 적도 부근 섬나라는 국토가 잠기기 시작했다. 지난 10여년간 북반구 선진국들의 기만적 태도에 수차례의 문제 제기와 진지한 시위들도 여러차례였으나 체감되지 않는 기후재난 속에 사람들의 관심은 에이아이(AI)니 데이터센터니 하는 것들로 옮겨 간 지 오래다. 수확량은 줄고 빵값이 폭등해 혁명이 일어나기도 한다. 에너지 비용은 올라가고 목숨값은 낮아지니 전쟁은 일상화된다. 빈부 격차는 도시 단위와 국가, 범세계로 확대된다. 가난한 사람은 먼저 죽고, 부유한 이들은 불안 속에 빗장을 잠근다. 대안을 말하는 사람은 적고, 위기는 심화한다. 이 모든 버거운 주제가 한데 모여 무거운 습기가 되더니 우리가 사는 도시에 쏟아진다.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