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주청사에 걸린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광주시지부의 광주·전남 인사이동 반대 펼침막.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광고김용희 | 호남제주데스크 광주 송정리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적엔 광주에서 나고 자랐다고 생각했다. 내가 태어날 땐 송정리가 광주가 아닌 광산군 소속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며 작은 충격을 받기도 했다.‘송정리’라는 행정구역은 1986년 송정읍이 광산군에서 분리돼 송정시로 승격하며 사라졌다. 1988년 송정시와 광산군이 광주직할시에 편입되며 송정동이라는 명칭을 얻긴 했지만 여전히 이 일대를 ‘송정리’로 부르는 시민들이 많다.광고역사적으로 행정구역은 통치나 세금 징수 편의를 위해서 떼었다 붙이기를 반복해왔다. 지금의 대한민국 광역행정구역 틀을 갖춘 건 130년 전인 조선 말기였다.전북사학회가 지난해 11월 주최한 ‘13도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연합학술대회에서 왕현종 연세대 교수와 이정선 조선대 교수의 발표문을 보면, 1896년 8월 기존 23부제를 1년 만에 폐지하고 8도제(경기·충청·경상·전라·황해·강원·함경·평안도)를 개편한 13도제를 시행했다. 평안도·함경도·충청도·전라도·경상도를 남북으로 분할한 것이다. 새 지방제도로 동학농민혁명(1894), 아관파천(1896) 등으로 약화한 중앙권력을 강화하려는 것이었다.광고광고관청 소재지(수부)도 크게 바뀌었다. 경기도는 개성·인천 대신 수원으로, 전라남도는 나주 대신 광주로, 경상남도는 동래 대신 진주로 결정됐다. 강원도는 원주에서 춘천으로 바뀌었다.새 관청 위치는 예나 지금이나 지역 소멸과 연결되며 논쟁거리였나 보다. 평안북도에서는 의주를 제치고 정주가 수부로 결정되자 곧바로 반대 의견이 나왔다. 1897년 2월 전 영변군수 오승태가 정주의 인구수 등을 이유로 관찰부를 영변군으로 옮겨야 한다고 상소했고, 한달 뒤 고종은 이를 받아들였다.광고이에 정주 관리들이 반발했다. 홍석범은 본래 정주군은 큰 고을이었으나 “갑오년의 병란(동학농민혁명)으로 백성이 흩어져 고을이 없어질 지경이었습니다. (중략) 흩어졌던 백성들이 점점 모여들어 다시 큰 도회지를 이루었으니 몇 년만 지나면 모양이 갖추어짐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라는 상소를 올렸다.광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897년 목포항이 개항하며 목포(당시 무안군 소속)가 빠르게 성장했다. 인구는 광주보다 적었으나 세금 징수액은 더 많았던 나주의 전통적 위상은 여전했다. 전남 관찰부를 목포나 나주로 이전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전국을 넘어 외국에 있는 동포들도 관심을 가졌다. 190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동포들이 만든 ‘공립신보’는 1908년 12월16일, 1909년 1월6일 두 차례에 걸쳐 전남 관찰부를 광주에서 나주나 목포로 이설하기 위해 논의 중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대한협회 광주지회는 1908년 11월22일 특별회의를 열어 관청에 건의해서 관찰부의 목포 이전을 막기로 결의한 터였다.경찰서·법원·세무서·우편국 등 관공서들이 광주에 들어서며 지역 소외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1920~30년대 전남도평의회 의원들은 광주에만 설치된 물산진열관 분관을 목포에 설치해야 한다고 촉구했고, 토목비가 도시에 집중돼 농촌과 섬지역의 몰락을 부른다고 지적했다.반면 광주와 전남 지역 의원들의 협력도 있었다. 1930년께 일제는 조선 5곳에 관립사범학교를 세운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호남 후보 지역으로 광주와 전주가 거론되자 의원들은 학교와 교원이 많고 통학이 편리하다는 점을 내세워 광주에 설치해야 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후에도 협력과 경쟁, 때로는 갈등을 지금까지 이어왔다.광고올해는 전남과 광주에 뜻깊은 시기다. 13도제 시행 130년이자 행정구역이 분리된 지 40년 만에 다시 한 식구가 된 것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출범 한달을 맞았지만 협력보다는 경쟁과 갈등이 먼저 보인다. 일제강점기, 여순사건, 한국전쟁, 5·18민중항쟁을 이겨내고 민주주의 대표 도시로 자리 잡았듯 50년, 100년 뒤 미래 세대에게도 자랑스러운 도시가 되길 바란다.kimyh@hani.co.kr
전남·광주는 원래 하나였다 [전국 프리즘]
김용희 | 호남제주데스크 광주 송정리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적엔 광주에서 나고 자랐다고 생각했다. 내가 태어날 땐 송정리가 광주가 아닌 광산군 소속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며 작은 충격을 받기도 했다. ‘송정리’라는 행정구역은 1986년 송정읍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