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게티이미지뱅크 광고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한국인은 하루 평균 139분 유튜브를 본다. 5년 전의 두 배가 넘는다. 그 시간의 상당분은 1분이 채 안 되는 숏폼이 차지한다. 긴 글은 읽히지 않고 긴 영상은 1.5배속으로 돌아간다. 빈틈만 생기면 생각에 잠기는 대신 화면을 연다. ‘도파민네이션’의 저자 애나 렘키는 이 멈추지 못하는 관성을 도파민으로 설명한다. 도파민은 쾌락 그 자체보다 보상을 예측할 때 분비된다. 다음 영상은 더 재미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그 불확실성이 손가락을 움직인다.광고 읽기는 이제 드문 능력이 됐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서 성인 종합독서율은 38.5%로 역대 최저였다. 열명 중 여섯명이 1년에 책 한권을 읽지 않는다. 연간 독서량은 2.4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에서도 한국은 최저 수준 문해력 비율이 30.8%로 평균(26%)을 웃돌았고, 최고 수준 비율은 5.6%로 평균(12%)의 절반에 그쳤다. 학생들 역시 연평균 독서량이 6년 새 41권에서 31.5권으로 줄었고, 교사 열명 중 아홉명이 아이들의 문해력 저하를 체감한다고 답한다. 교육부가 지난 2일 ‘학교 독서교육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독서교육 책무를 교육기본법에 명시하는 개정을 추진하고, 내년부터 초3~4, 중1, 고1을 독서교육 집중 학년으로 지정한다. ‘매일 아침 10분 함께 책 읽기’는 올해 1000개교를 시작으로 2030년까지 전체 초·중·고로 확대한다. 책 읽기를 법에 새기려는 나라. 반갑지만 씁쓸하다. 독서가 개인의 자율적 취향 영역에서 더는 버티지 못해 국가의 책무가 된 것이다.광고광고 이번 방안에는 학생의 독서 기록을 학교생활기록부에 자동 반영하고, 독서 흥미와 습관을 측정하는 진단도구로 맞춤형 지도를 하겠다는 계획도 담겼다. 장관은 “독서 본연의 즐거움”을 강조했지만, 측정되고 기록되는 순간 즐거움은 ‘실적’이 된다. 생활기록부에 적히는 모든 것의 운명을 우리는 안다. 컨설팅과 사교육이 붙는다. 독서가 또 하나의 스펙이 되는 순간, 아이들은 책마저 ‘시간 대비 효율’로 계산한다. 요약본을 훑고 결말부터 확인한다. 즐거움을 살리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즐거움을 죽이는 설계를 품고 있다. 읽기가 무너진 것은 아이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그들의 시간이 먼저 점령당했기 때문이다. 독서교육의 출발점은 읽기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빼앗긴 시간을 되돌려주는 일이다. ‘도둑맞은 집중력’을 쓴 요한 하리는 강물에 떠내려오는 시신을 건져 장례식만 치르지 말고 상류로 올라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라고 했다. 그 상류엔 아이들의 관심을 채굴해 이윤으로 바꾸는 산업이 있다. 학교가 아침 10분을 떼어내 준들, 교문을 나선 아이를 기다리는 것은 여전히 정교한 알고리즘이다.광고 오스트레일리아는 지난해 12월, 16살 미만 소셜미디어 이용을 세계 최초로 법으로 금지했다.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반발과 실효성을 묻는 회의론이 거셌지만, 아이들의 시간을 지키는 일이 먼저라고 판단한 것이다. 유럽 각국이 잇따라 법제화에 나섰고, 우리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도 16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14살 미만의 가입을 제한하는 방안을 꺼냈다. 상류를 그대로 둔 채 아이에게 읽으라고만 해서는 소용이 없다. 독서는 당장의 쓸모를 내놓지 않는다. 책 한권을 통과하는 느린 시간 속에서 아이는 타인의 삶에 귀 기울이고 제 목소리를 발견한다. 그러나 정부는 독서를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역량’을 기르는 수단이라 설명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역량은 비워진 시간에서 저절로 맺히는 열매이지, 진단하고 기록해서 걷어들이는 수확물이 아니다. 측정과 평가의 강박을 걷어내고, 쓸모없어 보이는 ‘빈 시간’의 힘을 믿어보면 어떨까. 독서는 시간표에 한 줄 더 얹는 과목이 아니다. 학교는 이미 지나치게 많은 것을 가르친다. 교육과정을 줄인다지만 입시와 사교육까지 더해진 현실에서 아이에겐 애초에 비어 있는 시간이 없다. 읽을 여유는 무언가를 더 얹어서가 아니라, 과밀한 무언가를 덜어내야 생겨난다. 독서교육이 참된 국가의 책무라면, 국가가 길러줘야 할 것은 역량 이전에 자기 시간의 주인이 되는 힘이다. 책장을 넘기는 손, 문장 앞에 머무는 눈길, 책을 덮은 뒤 찾아오는 고요한 침묵. 그 느린 시간은 결국 자기 삶의 주권을 키운다. 아침 10분의 책 읽기는 그 시작으로 나쁘지 않다. 그러니 이제 함께 믿어보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 고요한 시간이, 아이의 내면에서는 가장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gobog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