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왼쪽)·하형주 진실화해위 조사관이 9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광고‘안녕’은 환영과 작별의 인사다.3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또는 진화위)가 7월3일 13인의 전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첫 전원위원회를 열었다. 2월26일 출범한 지 넉 달 만이다. 2기 활동 종료 뒤 7개월여 만이다. 조사관 채용도 마무리 단계다. ‘안녕 진화위’는 2기를 돌아보고 3기를 바라보며 과거사 규명에 참여한 이들의 의지와 기대를 담아내는 부정기 연재물이다. 굿바이 진화위! 헬로 진화위!!“저보고 과거를 잘 턴대요.(웃음) 딱 맞는 곳에 갔다고들 격려해주시네요.”(김현정)“(역사) 퍼즐 맞추기를 좋아합니다. 친정에 복귀해 기뻐요.”(하형주)두 사람은 7월10일 아침 새 직장에 첫 출근했다. 이제 어엿한 3기 진실화해위 조사관(5급 상당)이다. 지난 4월 진실화해위 누리집에 공지된 별정직 공무원 공개채용에 응시해 서류와 면접절차를 거쳐 6월12일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다. 신원조사에 한 달이 또 걸렸다.광고김현정(46)·하형주(52) 조사관은 미제 과거사 사건 진실규명의 최일선에 서게 돼 가슴이 뛴다고 했다. 하지만 2기에서 조사 중지돼 넘어온 2111건과 3기 출범 이후 6월까지 신청된 5360건의 규모를 떠올리면 ‘어마무시한’ 긴장감을 느낀다고 했다. 앞으로 김 조사관은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 사건 등을 조사하는 조사1국 2과에서, 하 조사관은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하는 조사2국 8과에서 일하게 된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9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인근의 한 카페에서 두 조사관을 만나 새로운 출발을 앞둔 소감과 각오를 들었다.두 사람은 모두 만만치 않은 학업과 경력을 쌓아왔다. 김현정 조사관은 법학 박사, 하형주 조사관은 정치학 박사다. 박사 논문은 각각 ‘정당해산제도의 정당보호기능에 관한 연구’, ‘한국정치발전과정에서 발생한 정치폭력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썼다. 김 조사관은 18년간 국세신문·가톨릭평화방송·딴지일보를 거치며 ‘김 기자’로 생활했다. 하 조사관은 2006~2010년 1기 진실화해위 인권침해조사국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서울시교육청에서 인권조사관과 청렴시민감사관으로 15년간 일했다. 직전 맡았던 ‘감사’가 기존에 해온 ‘조사’와 결이 달라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했다고 한다.광고광고하형주 진실화해위 조사관이 9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김현정 조사관은 “과거를 잘 턴다는 소리를 듣는다”며 웃었다. 자료 발굴 능력이다. 대학원에서 헌정사를 공부할 때는 유신체제 수립에 주요한 역할을 한 김기춘(1939~, 전 검찰총장,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1970년대 ‘검찰’이라는 잡지에 기고했던 유신 관련 글을 찾아내 유신헌법의 진짜 의도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또 제헌헌법을 기초한 인물로 알려진 유진오(1906~1987, 신민당 전 총재)가 1960년대 고려대 교수 시절 강의를 위해 필사한 강의안을 확보해 당시 시대 상황을 생생하게 읽어낼 수 있었다. 그는 “공동체가 함께 써 내려 가는 대하소설의 제1저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일하겠다”고 말했다.하형주 조사관은 “퍼즐 맞추기에 흥미를 느낀다”고 했다. 역사의 변곡점이 된 대형사건에서 비어있는 부분을 채워 완성해내는 일이다. 1기 조사관으로 일하던 때에는 1979년 발생한 부마민주항쟁을 조사하며 마산(현 창원) 지역에서 위수령이 발동되기도 전 이미 군부대가 투입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했는데, 당시 1563명 이상의 피해 사례를 확정하며 느꼈던 책임감은 인권 조사의 길로 매진하게 된 가장 큰 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또 1980년 언론통폐합 및 언론인 강제해직 사건을 조사하며 신군부의 언론 장악 음모가 담긴 비공개 핵심 자료인 ‘케이(K)-공작계획’ 문건을 직접 발굴한 일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광고새 직장에 대한 기대를 전한 두 사람은 우려의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하 조사관은 “진화위가 외풍 없는 독립 기관으로 활동 종료 때까지 쭉 지속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려면 1기와 2기 막바지였던 2010년과 2025년처럼 ‘위원장이 설립취지를 훼손한다’는 논란이 재연돼선 안 된다. 김현정 조사관은 “다시 예전 같은 ‘난리’가 벌어지지 말아야 한다”고 뼈 있는 말을 남겼다. 다음은 일문일답.김현정 진실화해위 조사관이 9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3기 진화위의 문을 두드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김현정 : “어려서부터 역사와 대하소설을 좋아했어요. 전공도 헌법이다 보니 대한민국 헌정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죠. 학위 논문 쓰면서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와 보고서도 많이 참조했습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지난 12·3 비상계엄 사건입니다. 2기 진화위 후반에 위원장이 바뀌면서 시끄러웠잖아요. 기자로서, 국가법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비판적으로만 봤습니다. 그 사이 2기가 종료되고 3기가 출범했지만 모르고 있었어요. 그러다 올해 4월에 같은 학회에서 활동하면서 알게 된 한 박사님이 ‘진화위에서 5급 조사관을 모집한다’며 지원해보라고 권유했습니다. 헌법 전공이고 기자 생활도 했으니 잘 맞을 거라고요.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학회 활동을 같이 열심히 하면서 제 성향, 관심사를 알게 된 그 박사님이 볼 때 적합해 보였나 봅니다. 그렇게 공채에 지원했고 합격해 이 자리까지 오게 됐습니다.”하형주 : “1기 진화위 인권침해조사국에서 막내 조사관으로 생활했어요. 사수가 검찰 출신이라 조서 작성에 대해 꼼꼼히 알려줘 많이 배웠습니다. 저에게는 진화위가 친정 같은 곳이죠. 마침 서울시교육청에서 감사관 임기도 끝나고 해서 지원하게 됐어요.광고제가 활동했던 제1기 위원회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이나 권위주의 통치기 시국 사건 등 거시적인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는 데 집중했다면, 2기는 1기에서 다루지 못했던 형제복지원 등 집단수용시설 사건과 해외입양 사건을 본격 조사하며 국가권력이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어떻게 구조적으로 파괴했는지를 조명했어요. 이러한 변화는 과거사 정리가 ‘인간 존엄의 보편적 가치'를 세우는 작업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지난 14년간 서울시교육청 인권조사관으로 근무하며 학교 내 체벌과 같은 ‘일상화된 폭력'이 어떻게 또 다른 국가폭력의 토양이 되는지 목격해 왔습니다. 우리 사회가 규명해야 할 국가폭력과 인권침해의 정의가 더욱 넓고 깊게 확장되는 때에 미력하나마 진화위에서 역할을 해보고 싶었습니다.”1950년 트럭에 실려 희생 장소로 이송되는 부산형무소 재소자들. 이 사진은 영국 런던에서 발행한 사진 잡지 ‘픽쳐 포스트’에 실렸다. 진실화해위 종합보고서― 2기 조사보고서를 살펴보셨을 텐데, 주목되는 사건이 있었나요? 김현정 : “전남 신안 임자면 같은 섬 지역에서 벌어진 국군에 의한 희생 사건, 보도연맹 사건 등에 눈길이 많이 갔어요. 우리처럼 내전이 있었고, 이후에도 군부에 의한 독재정권이 장기간 이어진 국가에서는 이 모든 피해 사실이 밝혀지고 회복이 어느 정도 이뤄지는 데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겁니다. 지리적으로 고립된 지역의 인권 현실에 대해 불편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시기가 곧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하형주 : “2기 보고서에서 가장 주목한 사건은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위원회 내부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조사개시 의견과 ‘외국에서 발생한 외국인 대상 사건으로 국제인권법 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각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던 사안입니다. 결과적으로는 현행법의 범위 문제로 각하 결정되었으나, 이는 국가폭력의 정의를 ‘국경을 넘어 보편적 인권의 관점’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큽니다. 특히 과거사 정리가 국내법적 잣대를 넘어 제네바 협약 등 국제인도법과 국제인권법의 보편적 가치에 부합해야 함을 시사한다고 봅니다.”2023년 6월 진실화해위가 베트남 하미 학살 조사 각하 결정을 하자 이 사건을 신청했던 피해자 응우옌꼬이(왼쪽)와 응우옌티탄이 한국 변호사들이 대리해 진행한 행정소송 위임장에 서명하고 있다. 한베평화재단 제공― 한 분은 법학박사에 기자 생활을 오래 하셨고, 또 한 분은 서울시교육청에서 일하셨어요. 김현정 : “세부 전공은 헌법입니다. 석·박사 학위 논문 모두 ‘정당’을 주제로 썼습니다. 우리 헌법 제8조에 정당의 자유, 국고보조금 지원 근거, 정당 해산을 규정해 놓고 있죠. 민주헌정의 핵심은 다양성의 보장이자 궁극적으로 야당의 자유 보장이라는 걸 깨우치게 됐습니다. 기자로서는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비판적인 기사를 썼습니다. 제가 체험해 보고 느낀 기사들을 좋아했고, 그런 아이템을 많이 냈습니다. 방송기자로 일할 때는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다루기 위해, 추운 겨울날 휠체어를 탄 장애인 친구와 함께 목적지를 정해두고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다녔던 리포트가 기억에 남아요.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는 마약 문제를 다룬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많은 연구 보고서를 보고, 수많은 직군의 전문가들과 다양한 경로로 마약중독자가 되었다가 회복 중인 취재원들을 만났습니다.취재와 조사는 다르지만, 다양한 사람들 만나 인터뷰하고, 증거 자료 찾고, 전문 서적을 찾아봤던 기자의 경험이 조사에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헌법을 연구하면서 문헌 연구했던 것, 엄격한 논증을 위해 사료를 찾았던 학업의 경험이 조사관으로 일하면서 보고서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학문하는 사람들은 새처럼 하늘을 높이 날면서 세상을 조망하고, 공동체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것 같습니다. 기자는 현실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알게 된 세상 일부분의 모습과 문제점을 사회에 알리면서 공동체를 바꿔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두 역할과 기능을 잘 조화시키면서 진화위 조사관으로 일하게 된다면 의미 있는 성과를 낼 거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1996년 8월 연세대 건물을 점거해 농성을 벌이다 경찰에 의해 검거된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소속 대학생들의 모습. 한총련 사건은 3기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 신청이 접수될 가능성이 크다. 한겨레 자료하형주 : “정치폭력에 대한 연구자로서 ‘국가폭력의 발생 구조'가 학교라는 미시적 현장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왔기에 교육청 인권조사관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서울시교육청 인권조사관으로 일하기 시작한 2011년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인권 조례가 제정되고 인권 행정의 영역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던 시기였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안은 2018년 서울 지역 19개 학교에서 발생한 ‘스쿨 미투' 공동 조사와 감사를 지원했던 일입니다. 단순히 가해자를 적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교육청 내 성평등 전담팀 신설과 성폭력 신고·구제 체계 정비하는데 정책적인 도움을 주었던 부분이 있습니다. 학교 현장에서 오랜 관행으로 여겨졌던 체벌이 명백한 인권침해이자 폭력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킨 지점이 가장 보람된 성과입니다. 체벌을 아동학대로 인식되게 된 계기를 만들었던 것이 보람된 일이었습니다.”김현정(왼쪽)·하형주 진실화해위 조사관이 9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김현정 : “제가 진화위에서 조사관으로 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제 박사과정 지도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열심히 일해서 우리 역사에 맺힌 많은 한을 풀어내어 정의와 사랑에 기반한 국민통합에 기여하길 바란다’는 덕담과 주문을 해주셨어요. 이 주문을 잊지 않는 조사관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연된 정의라도 세우고 싶습니다.”하형주 : “그동안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국정원과 경찰청, 국방부에 설치했던 과거사위원회, 그리고 진실화해위에서는 대학생 의문사 사건과 민청학련, 강제징집 프락치 강요 등 수많은 사건을 규명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사건은 손을 못 댔죠. 3기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이전인 2001년까지로 조사대상의 시간적 범위가 확장됐어요. 저는 1980~1990년대 학생운동 사건에 관심이 있습니다.”고경태 기자 k21@hani.co.kr
“과거 잘 털고 퍼즐 맞춰내야…예전 같은 ‘난리’ 안 겪기를” [안녕 진화위㉛]
‘안녕’은 환영과 작별의 인사다. 3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또는 진화위)가 7월3일 13인의 전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첫 전원위원회를 열었다. 2월26일 출범한 지 넉 달 만이다. 2기 활동 종료 뒤 7개월여 만이다. 조사관 채용도 마무리 단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