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중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퇴계로 남산스퀘어빌딩에 있는 진실화해위 6층 상임위원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광고‘안녕’은 환영과 작별의 인사다.3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또는 진화위)가 7월3일 13인의 전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첫 전원위원회를 열었다. 2월26일 출범한 지 넉 달 만이다. 2기 활동 종료 뒤로는 7개월여 만이다. 조사관 채용도 마무리 단계다. ‘안녕 진화위’는 2기를 돌아보고 3기를 바라보며 과거사 규명에 참여한 이들의 의지와 기대를 담아내는 부정기 연재물이다. 굿바이 진화위! 헬로 진화위!!“이제 국가보안법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야 합니다.”1기 진실화해위가 과거청산을 화두로 삼아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 등 주요 사건의 진실을 거시적으로 규명했다면, 2기에서는 개별 사건 신청인들의 권리 구제에 미시적으로 집중해왔다. 3기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그는 “개별 사건을 관통하는 국가폭력의 작동 기제에 관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온 말이 ‘국가보안법’이었다. 진실화해위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조작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은 다수 이뤄졌지만, 국가보안법 자체가 국가폭력의 원인과 배경으로 지목된 일은 거의 없다.이호중(62)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차관급)을 10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6층 상임위원실에서 만났다. 더불어민주당 추천으로 지난 4월23일 국회 본회의 투표를 통과한 뒤 6월24일 대통령 임명을 받았다. 임명되던 날 진실화해위는 보도자료를 내어 “법학자로서 정보인권연구소 이사장과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이사를 역임하는 등 인권과 법치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고 그를 소개했다. 이 위원은 각종 인권침해 사건(집단수용시설과 해외입양 제외)을 담당하는 2소위원장을 맡는다. 2소위에는 정원옥(민주당 추천)·김웅기(국민의힘 추천)·박래군(비교섭단체 추천) 위원이 함께한다.광고이호중 상임위원(창가 오른쪽)이 송상교 위원장(가운데)과 함께 지난 7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6층에서 1996년 연세대 사건 관련 피해자 및 조력자 그룹과 면담하고 있다. 진실화해위 제공형사법과 형사정책 분야가 주전공인 그는 ‘실천하는 형법학자’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1990년대엔 ‘대한민국 최대의 사법살인’으로 불려온 인혁당재건위 사건의 재심 필요성을 앞장서 주장해왔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엔 경찰 공권력 행사가 문제 됐던 용산 참사(2008년), 쌍용자동차파업 강제진압(2009년), 물대포에 의한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2016년)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활동에 참여했다. 한편으로는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학술작업을 했는데, 1기 진실화해위의 납북귀환어부 사건 조사결과를 토대로 형사소송법의 취약한 구조를 분석한 논문은 그 결과물 중 하나다. 2015~2016년엔 유가족 추천으로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비상임위원을 지냈다.인터뷰 도중 가장 많이 등장한 말은 ‘서사’였다. 이는 국가보안법 문제와도 연결되는 이야기였다. 구금 기간 초과나 가혹행위 등 불법이 있었는지 여부 등에 관한 사실관계를 넘어 사건에 대해 “왜?”를 근본적으로 질문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는 2기에서 위원 표결 끝에 조사개시가 각하됐던 베트남전 하미학살 사건과 국방경비법에 따른 군법회의 사형 판결 사건 등에 대해 견해를 밝히며,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뒤 별도 법원의 판단이 필요하지 않도록 배·보상법 제정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12·3 비상계엄이 내란인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 장영수 상임위원의 발언과 관련해 자신의 의견을 표명했다.광고광고이호중 상임위원은 최근 6년 동안 건강이 악화해 모든 외부 활동에서 손을 놓았다고 한다. 이제 몸을 추스르고 역사적 사건의 진실규명에 혼신의 힘을 쏟고 싶다고 했다. 조사관들과도 자주 만나 사건의 구조와 역사에 관해 열띤 토론을 하고 싶다는 희망도 내비쳤다. 다음은 일문일답.이호중 상임위원이 지난 3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3기 진실화해위 첫 전원위원회에 참석해 자리에 앉아있다.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 어떤 마음으로 3기 진화위 상임위원에 지원하셨나요. 광고“형사법 학자로서 형벌권 등 국가권력의 남용에 의한 인권침해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뿐만 아니라 인권단체 활동도 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 등 우리 역사에서 자행된 국가폭력과 이행기 정의의 문제를 접하게 되었어요. 그동안 진화위가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 하나하나의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회복의 길을 열어왔는데,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거 역사에서 국가폭력이 거듭돼왔던 사회 구조적 배경과 실체, 일상적인 수준의 국가폭력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법체계 자체의 반인권성과 폭력성 등을 드러내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3기 진화위에서 그러한 일을 직접 해보려는 열정이 지원동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출근한 지 두 주가 조금 넘으셨어요.“들어와서 보니까 사건 유형이 너무 다양하네요. 정신이 없을 정도입니다. 새로 알게 된 사실도 적지 않아 흥미롭고요. 가령 진도 사건(진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이 어떻게 전개됐는지 잘 몰랐는데 보고서를 보고 자세히 알게 됐어요. 대전 골령골 학살사건이나 국민보도연맹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충격도 받았습니다.”납북귀환어부 전두조(왼쪽)씨와 김승호(가명)씨가 지난해 5월28일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당하다 숨진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 앞에서 자신들이 고문당하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 피해자가 3600여명으로 추산되는 납북어부 사건은 2기에서 1200여명이 진실규명을 받았다. 3기에서 나머지 2400명도 조사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1·2기 조사보고서를 보면서 또 어떤 사건에 주목하셨나요.광고“다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1기에서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사건, 2기에서는 건대 사건 정도가 기억에 남습니다. 다 많이 알려진 사건들이죠. 진화위에서 이 사건을 다루고 진실규명을 했다는 데 큰 상징성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대 사건의 경우 2기에서 일부 진실규명이 됐지만, 3기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을까 예상합니다.한국전쟁기 사건 중에는 2기에서 이슈가 됐던 (군법회의 사형판결문 발견 이후 진실규명이 취소된) 백락정 사건과 조선정판사 위조지폐사건 이관술 선생 건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관술 선생은 2기에서 진실규명을 못 했는데, 재심에서 검찰이 무죄를 구형하고 법원도 무죄를 선고했어요. 3기에서는 위조지폐사건의 실체를 규명해달라는 식으로 신청이 들어올 것 같아요. 사건 조작 여부를 조사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1996년 8월20일 연세대 종합관 건물에 진입한 경찰들에 의해 검거되는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소속 대학생들. 1996년 8월13일부터 20일에 걸쳐 한총련이 연세대학교 교정에서 주최한 범민족대회를 경찰이 강경 해산하려 하자 이에 맞서 시위를 벌이던 대학생 2만여 명이 연세대학교 학내 건물들을 점거하여 농성 시위를 벌이다 해산됐다. 3기 진실화해위에서 조사대상의 시간적 범위가 2001년까지 확대되면 이러한 1996년 연세대 사건 피해자들도 진실규명을 신청할 가능성이 크다. 한겨레 자료― 3기에서는 1996년 연세대 사건을 비롯해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사건도 신청이 접수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1990년대 사건 중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게 연세대 사건과 한총련에 대한 탄압이죠. 신청인들이 어떤 취지로 조사를 요청하는지를 확인해서 판단해야 하는 터라 조심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문제는 개별적인 가혹행위나 불법구금 등 인권 침해의 문제로만 접근할 것인가입니다. 이러면 한계가 명백해요. 저는 이제 국가보안법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특히 한총련 (대의원) 탈퇴 강요 등의 문제는 양심의 자유와 연결이 됩니다. 사상 전향의 문제도 중요한 인권 침해로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쉬운 일이 아니죠. 학술적으로 어떤 사건을 밝혀내는 게 아니잖아요. 진화위가 정말 사실과 실체에 기반해서 그 국가폭력이 작동한 메커니즘을 드러내야 한다는 게 제 욕심입니다. 그동안 확정판결 사건 같은 경우에는 재심 사유가 있어야만 진화위가 조사를 할 수 있었죠. 그런데 예를 들어 국가보안법 등에 대해서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이 이미 있었다면 위헌의 문제를 제기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거든요. 그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이미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개별 신청인들의 인권침해를 어떻게 이야기할 거냐. 불법구금, 가혹행위의 차원을 넘어 이 문제를 어떻게 규명해 낼지가 저의 가장 큰 고민입니다.”노태우 정권의 ‘범죄와의 전쟁’ 소식을 알리는 1990년 10월14일 기사. ‘범죄와의 전쟁’이 사실은 ‘노조와의 전쟁’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조선일보 지면 갈무리― 좀 다른 이야기지만 1990년 노태우 정권이 선포한 ‘범죄와의 전쟁’도 조사대상이 될 수 있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어요. 2기에서도 이미 조사대상의 시간적 범위에 포함되는 사건이었지만, 신청이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날이 1990년 10월13일인데, 또렷이 그 날짜를 기억합니다. 자세히 밝힐 수 없지만, 잊을 수 없는 중요한 날이었거든요. 저도 그 사건 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말이 ‘범죄와의 전쟁’이지 사실은 노조 잡으려고 한 거잖아요. 당시에 강력범죄가 증가한 면이 있긴 해요. 그런데 정부가 발표한 대책들을 보면 상당한 내용이 노동운동을 탄압하거나 탄압을 용이하게 하는 대책이에요. 1990년이라는 시점이 노동자 대투쟁이 한창 일어날 때잖아요. 하지만 의외로 그런 식의 신청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어요. 여기에 더해 폭력단체를 구성했다는 혐의를 억울하게 쓰고 피해를 보신 분도 있을 텐데, 거기까지는 살펴보지 못했어요.”― 2기에서 각하되고 3기로 넘어온 베트남전 하미 학살 조사개시 건은 이호중 상임위원이 위원장이신 2소위 관할입니다. 어떻게 판단하고 계신가요?“2기 진화위는 하미 마을 사건에 대해 조사대상이 아니라고 각하 결정을 했습니다. 피해자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1·2심에서 패소했고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입니다. ‘진실규명 조사 대상에 외국에서 벌어진 외국인에 대한 인권침해 사건까지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각하 결정의 사유였고 제1심과 항소심 법원도 유사한 판단을 내렸습니다.하지만 과거사정리법(진실화해위 기본법)에는 ‘외국인에 대한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명시적인 규정은 없습니다. 대법원의 판단이 어떻게 나오는지와 상관없이 3기에서 피해자분들이 다시 진실규명 신청을 하면 우리는 그에 대한 판단과 결정을 해야 하는데, 저는 2기의 각하 결정이 적절했는지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며 위원들의 의견과 지혜를 모아야 하는 입장에서 개인적인 의견을 자세하게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만.”2기 진실화해위에 신청이 접수됐다가 조사개시가 각하된 하미 사건과 함께 베트남전쟁기 한국군에 의한 대표적인 민간인학살 사건으로 꼽히는 1968년 2월12일의 퐁니·퐁녓 사건의 한 장면. 한국군 해병대가 마을에 들어갔다가 빠져나간 뒤 주검으로 발견된 민간인들의 모습니다. 1·2심 법원은 이 사건 피해자가 제기한 국가배상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또 다른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인 퐁니 사건 피해자가 법원을 통해 제기한 민사소송 1·2심에선 원고가 승소했고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입니다. 오히려 법원이 진실화해위보다 더 진일보한 판결을 내린 셈인데요. 위원님은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을 어떤 관점에서 보고 계시는지요.“베트남전 민간인학살은 큰 틀에서 보면 한국 전쟁기 민간인 학살과 유사한 맥락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군이 작전 과정에서 장애가 되는 민간인들을 희생시킨 거잖아요. 결국 국가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다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현행 과거사정리법에서 이 사건을 명시적으로 배제하는 규정이 없는 이상 적극적인 법 해석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현행 과거사정리법에서 외국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명시적으로 배제하는 규정이 없는데, 왜 2기에서는 진화위 조사대상이 아니라고 법을 해석했을까요?“정치적인 이유가 컸던 것으로 짐작합니다. 국민의힘 추천이냐 민주당 추천이냐에 따라서 의견이 확연하게 나뉘었잖아요. 각하 의견을 낸 쪽에서는 ‘조사의 현실적인 어려움과 외교적 문제의 발생 가능성’도 이유로 댔다고 알고 있습니다. 과연 그렇게 현지조사가 어려울까요. 외교적 문제가 생긴다는 말도 수긍하기 어렵고요. 다만 국내 사건들만으로도 시간에 쫓기고 조사관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 사건까지 과연 해야 하느냐 뭐 이런 현실적인 문제도 작동한 게 아닌가 싶어요.”1980년 삼청교육대에 끌려와 목봉체조를 하는 입소자들. ‘불량배 소탕’을 명분으로 사람들을 잡아와 군부대로 보낸 삼청교육 사건은 2기에서 어느 정도 실체가 드러났으나 3기에서 종합적인 진실규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결 자료― 3기 진화위에서는 직권조사가 강조되고 있는데요. 혹시 3기에 꼭 직권조사해야 할 사건이 있다면 무엇일까요?“직권조사 강화는 저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신청주의의 한계와 관련하여 직권조사의 강점 내지 유용성은 두 가지라고 봅니다. 하나는 신청 사건을 조사하다 보면 신청하지 않은 피해자들이 다수 확인되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유사하거나 동질적인 국가폭력이 반복적으로 자행될 수 있었던 사회 구조적, 정치적 맥락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한 경우입니다. 이는 개별 사건의 조사를 넘어서는 방식이어야 합니다.3기에서 직권조사가 필요한 대상은 두 가지 유형이라고 봅니다. 하나는 2기에서 어느 정도 실체가 드러난 사건들에 대한 종합적인 관점에서의 진실규명입니다. (1980년대) 삼청교육·순화교육 등이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반인권적 법령에 의한 조직적인 인권침해사건들입니다. 국방경비법, 특조령(비상사태하범죄처벌에관한특별조치령), 반공법, 국가보안법에 이르는 반인권적 법령의 작동체계를 드러내는 일입니다.”이호중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퇴계로 남산스퀘어빌딩에 있는 진실화해위 6층 상임위원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 국방경비법에 따른 군법회의 사형판결의 희생자 진실규명은 한국전쟁기 사건을 조사하는 조사1국 몫입니다. 헌데 말씀하신 ‘국방경비법을 포함해 특조령-반공법-국가보안법에 이르는 반인권적 법령의 작동 체계를 밝히는 일’은 조사2국의 몫이지 않나요? “맞습니다. 국방경비법에 따른 군법회의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다는 백락정 사건을 보면, 판결문에 내용이 없잖아요. 합리적으로 추론해보면 대전 골령골에 끌고 가서 학살을 했느냐 아니냐는 학살의 경로가 다르다는 차이만 있고 ‘사후 포장’을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충분히 해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민간인 학살이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국방경비법이 하나의 법적인 근거로써 활용되었던 측면은 조사1국에서 다룰 수 있다고 봅니다.그런데 국방경비법의 적용이 꼭 한국전쟁기에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미군정기와 1950년대 이후에도 있었습니다. 꼭 학살 사건으로만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국방경비법이 어떻게 적용됐고 실제 수사와 재판이 진행됐는지를 드러내 주는 작업이 별도로 필요합니다. 조사1국과 역할 분담에 대한 협의를 해나가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전수조사도 필요하다고 보고요.”― 진화위 결정은 법원 재판과 다르다고들 하잖아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법원은 개별 사건을 대상으로 해서 법적으로 필요한 범위, 즉 국가의 배상책임과 가해자 형사처벌에 한정하여 법률에 정해진 엄격한 증거법 원리에 따라 판단합니다. 반면 진화위 진실규명은 개별 사건의 진실규명을 넘어 국가폭력의 기제를 드러내는 일을 해야 하고 이는 ‘사건들의 서사’를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점과 문제의식이 매우 중요합니다. 다소 거창하게 말하자면,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고 선언하는 일이며, 국가폭력의 유산을 청산하는 사업입니다.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2기 진실화해위에서 국민보도연맹 사건 희생자로 진실규명을 받았으나 뒤늦게 사형판결문이 발견되며 진실규명 취소와 함께 신청 자체가 각하됐던 백락정(백낙정, 1919년생)의 젊은 시절 사진과 백락정의 1951년 육군본부 고등군법회의 사형판결문 뒷장. 판결 이유가 공란으로 비어 있다. 백락정 사건은 2기에서 최대 논란이 됐다. 백남식 제공― 2기 진화위는 법원처럼 판단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신청인의 주장들이 배척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별도 법원의 판결 없이 진화위 결정으로 배·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배·보상법의 제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현행 과거사정리법에는 ‘국가가 배·보상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만 규정돼 있다- 기자 주) 현재로써는 피해자분들이 진화위의 결정을 가지고 법원의 재판을 통해 피해회복을 받는 방법밖에 없고 바로 이러한 점이 진화위의 소임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법원에서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하려면 민사소송법에 따른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진화위가 법원에서 배상 책임을 인정하기 부족한 수준으로 결정을 내주면 법원에서 안 받아들여질 수 있거든요. 그렇게 되면 피해자분들도 문제지만 진화위 입장에서도 권위나 신뢰가 확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2기 때 위원들이 그런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법원에 가서 증거로 채택될 만한 수준은 돼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들이 많이 있었어요. 일부 위원들은 그런 걸 빌미로 진실규명 자체를 저지하려고 했고요. 이 문제가 3기에서도 똑같이 나올 거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경찰의 ‘암살대원’ 기록을 근거로 일부 희생자를 진실규명에서 배제한 진도 사건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너무 어려워요.(웃음) 기록은 있는데 신빙성이 없거나 기록 자체가 없거나 하면 그 기록을 얼마나 믿을 거냐 하는 문제가 생기잖아요. 과거 국민의힘 추천 위원들은 ‘어쨌든 경찰 기록은 정부 공문서니까 믿어야 한다’고 했지만, 사실 그 시기에 공문서라는 이유로 증거로서 믿을 만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거든요. 판단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배·보상법이 좀 만들어지면 상황이 좀 달라질 거라고 봅니다. 진실규명 뒤 곧바로 배보상이 이뤄지는 구조를 세우고 진화위가 진실규명의 내적 기준을 다시 세우면 됩니다. 이건 법원이 인정하는 기준보다 확실히 낮아질 수 있고요. 피해자 진술만 가지고도 이것이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해서 진화위가 고민하고 제대로 결정을 내리면 진화위의 사회적 신뢰로 이어질 수 있어요. 배·보상법은 진화위 활동과 연결해 보면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1969년 진도경찰서 기록을 근거로 진실규명 보류 판정을 받은 진도사건 학살 희생자 허훈옥(왼쪽, 당시 14살)과 그의 한 살 터울 동생 허경옥(오른쪽 사진 맨 왼쪽). 올해 89살인 허경옥씨는 2년 전 2기 진실화해위에서 형에 대한 진실규명이 보류되자 진정서를 내고 재심의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허경옥 제공― 어제(9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체포방해 혐의에 대해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왔는데요. 12·3 비상계엄은 내란인가요? “내란이죠.(웃음) 당연히 내란이죠. 국회를 어떻게 하려고 했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서 국헌 문란 목적이 있다는 거를 직접 증명하는 증거예요. 국회에 군인을 보낸다고 하는 거는 내란이죠.”― 얼마 전 장영수 상임위원은 한겨레 인터뷰에서 “내란인지 아닌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하셨어요. 윤석열이 국회에 군대를 보냈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시고요. “장영수 위원님 말씀은 ‘내란죄가 되냐 안 되느냐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게 있으니 재판에 의해서 증거를 가지고 인정될 때까지는 기다려 봐야 된다’는 취지인 것 같아요. 군대를 국회에 보낸 게 윤석열이 아니면 누구에요?(웃음) 그건 우리가 상식적으로 판단해야죠. 물론 내란죄 재판 과정에서는 당연히 피고인으로서 권리를 보장받고 증거 판단도 엄격하게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내란죄가 되냐 안 되냐에 대한 얘기 자체를 할 수 없는 건 아니잖아요. 예를 들어 (광주 고교생 피살 사건) 장윤기 이야기할 수 있잖아요. 장윤기도 무죄 추정 원칙 적용받습니다. 그렇지만 사회적으로 공론화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이 사회적인 담론 자체를 차단하는 의미로 작용하면 절대로 안 돼요.”이호중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퇴계로 남산스퀘어빌딩에 있는 진실화해위 6층 상임위원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씀.“제가 형사법을 전공했는데요. 형사법을 통해 수사하고 재판하는 거에 대해 많은 분들이 정의를 실현한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형사법에서 밝히는 내용은 어떤 사건의 일면에 불과해요. 범죄로 다루어지는 면만 보는 거죠. 근데 사실 그 밑에 있는 많은 요인은 재판에서 포착이 안 돼요. 저는 진화위의 진실 규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사건을 진실규명하며 배·보상과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 필요한 측면도 생각해야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그 사건이 가지는 의미와 서사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 서사의 주인공은 당연히 시민이고 민중이어야 하는 거고요. 그러니까 그런 생각으로 조사관들이 좀 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진화위는 법원이 아니라는 겁니다. 앞으로 조사관들과 그런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에 관해 토론하고 교육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이호중 상임위원 약력 임기 : 2026년 6월24일~2028년 6월23일(연임 가능)△1964년 서울 출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2007~) △정보인권연구소 이사장(2018~2021)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장(2017)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비상임위원(유가족추천)(2015~2016)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이사·운영위원장(2012~2018) △국가인권위원회 자유권분야 전문위원(2005~2010) △한국외대 법학과 교수(1998~2007)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1989~1995) △서울대 법학박사(1997) △서울대 사법학과 졸업(1987)고경태 기자 k21@hani.co.kr
“국가보안법 정면 마주할 때…베트남전 사건 각하는 재고 필요” [안녕 진화위㉜]
‘안녕’은 환영과 작별의 인사다. 3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또는 진화위)가 7월3일 13인의 전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첫 전원위원회를 열었다. 2월26일 출범한 지 넉 달 만이다. 2기 활동 종료 뒤로는 7개월여 만이다. 조사관 채용도 마무리 단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