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꽃이 핀 매화오리나무. 천리포수목원 제공광고황금비 | 천리포수목원 나무의사 6월 말 어느 오후, 볼일이 생겨 서울에 갔다가 기절하는 줄 알았다. 맨살을 찌르는 듯한 직사광선과 보도블록을 뚫고 나오는 복사열 덕분에 지하철에서 나와 목적지로 향하는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말 그대로 타 죽을 뻔했다. 몇년 전에는 대체 이 도시에서 어떻게 날마다 출퇴근을 했을까? 기억은 늘 좋은 방향으로 미화되기 마련이라는데, 해가 지날수록 더욱 뜨겁게 느껴지는 도심의 여름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매화오리나무의 꽃. 천리포수목원 제공사람은 익숙해지기 어려운 여름의 햇빛을 무럭무럭 먹고 자라나는 식물들이 수목원에는 가득하다. 여름에 피는 꽃들은 무성한 숲에서 눈에 띄기 위해, 또는 높은 일조량으로 만들어진 색소 덕분에 화려하고 강렬한 색감을 선보인다고 한다. 수국, 플록스, 능소화, 참나리… 선명하고 알록달록한 꽃 덕분에 수목원의 채도도 한껏 올라가는 이 시기, 유난히 독특한 형태로 마음을 끄는 식물이 있다. 바로 매화오리나무다.광고매화오리나무의 꽃. 천리포수목원 제공이름 때문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리나무의 한 종류인 줄 알았는데, 매화오리나무는 매화오리나무과 매화오리나무속에 속하는 나무다. 자작나무과 오리나무속에 속하는 오리나무와는 전혀 다르다. 장미과 벚나무속에 속하는 매실나무(매화)와도 접점이 없는데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재미있게도 다섯장의 꽃잎을 가진 나무의 꽃이 매화를 닮았고,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가 울퉁불퉁한 나뭇잎이 오리나무의 잎을 닮아 매화오리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매화오리나무의 꽃. 천리포수목원 제공7월 중순, 할 수만 있다면 이 나무의 이름을 다시 붙여주고 싶을 정도로 매화오리나무에는 아름다운 흰 꽃이 핀다. ‘지상 최고의 뜨개질 장인이 한땀 한땀 정성스럽게 뜬 레이스 꽃나무’ 정도면 어떨까 싶다. 매화오리나무의 가지 끝에서 15㎝ 남짓한 꽃대가 돋고, 양옆으로 길이가 비슷한 여러개의 꽃자루가 난다. 가지에서 가까운 쪽부터 지름 5㎜ 남짓한 흰 꽃이 피기 시작하고, 꽃이 핀 순서대로 시든다. 매화오리나무와 같은 꽃차례를 ‘총상꽃차례’라고 하는데, 아까시나무, 등나무처럼 끝으로 갈수록 뾰족해지는 모양을 생각하면 된다. 꽃차례 끝이 살짝 굽어 있어 머리에 꽂은 화려한 깃털 장식 같기도 하고, 땅을 향해 차르르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한여름에 내린 눈꽃 같기도 하다.광고광고미국꽃단풍(왼쪽), 풍나무 ‘롤리팝'(오른쪽) 사이 틈에서 자라고 있는 매화오리나무. 가을이 되면 잎이 붉게 물든다. 천리포수목원 제공수목원에서 자라고 있는 매화오리나무는 1990년 일본 치바대학교에서 열매로 들여와 싹을 틔운 개체다. 왼쪽에 미국꽃단풍, 오른쪽에는 미국풍나무가 크게 자라고 있어 그 사이의 좁은 틈새에서 3m 남짓한 높이로 작게 자라고 있다. 노루오줌원 옆에는 아메리카 대륙 원산의 향매화오리나무 ‘로세아’가 자라고 있는데, 동아시아에서 자생하는 매화오리나무와는 달리 꽃차례가 하늘을 향해 달리는 점이 특징이다. ‘로세아’라는 품종명에서 알 수 있듯 연분홍색의 꽃이 매력적이고 향기도 강하다.가을철 단풍이 드는 매화오리나무의 잎과 익은 열매. 천리포수목원 제공매화오리나무는 키가 2m 남짓한 작은키나무지만, 한곳에서 오래 뿌리를 내려 자랄 경우 2m 넘는 작은큰키나무(소교목)로도 큰다. 실제로 외국 정원의 유튜브 영상에서는 두꺼운 줄기 끝에 꽃차례가 주렁주렁 매달린 매화오리나무의 화려한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향매화오리나무의 경우 정원의 경계선을 따라 생울타리를 만들기에 적합하다. 햇빛이 잘 들고 토양의 습도가 고르게 유지되는 환경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지나치게 건조한 장소는 피해서 심는다.광고2주 남짓한 짧은 개화 기간을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늦은 가을, 천천히 짙은 주황색으로 물드는 단풍 역시 볼 만하기 때문이다. 여름에 피는 향기로운 꽃과 선명한 가을 단풍 덕분에 매화오리나무는 영국왕립원예협회(RHS)가 인증한 우수 정원 식물로 꼽힌다. 길쭉한 줄기를 따라 지름 5㎜ 남짓한 둥근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이 마치 후추 열매와 닮아 ‘스위트 페퍼 부시’라고 불리기도 하고, 많은 봄꽃이 개화를 끝낸 한여름에 향기로운 꽃을 가득 피워 ‘서머 스위트’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매화오리나무의 열매. 후추 열매와 비슷하게 생겼다. 천리포수목원 제공여름이라는 계절에 ‘달콤하다’는 수식어를 붙이는 일? 매화오리나무 꽃이 가득 핀 수목원에서라면 가능할 것도 같다.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인간이었다는, 서울에서 살 땐 평생 모르던 사실을 깨닫게 된 것도 수목원에 오고 나서였다. 장마철 눅눅한 땅에서 풍기는 유기물 썩는 냄새를 좋아한다는 이상한 취향까지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 눈이 시릴 정도로 화사한 여름꽃을 구경하며 일하다 보면, 마치 개운하게 습식 사우나에 다녀온 것처럼 온몸이 땀에 젖는다. 나무가 무료로 제공하는 상쾌한 피톤치드는 덤이다.만개한 매화오리나무. 천리포수목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