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거창 민간인 학살 사건’ 현장에서 유가족들만으로 치러진 위령제. 한겨레 자료사진광고송진현 | 80대·부산 연제구 올해로 경남 거창·산청·함양의 무고한 양민들이 공비토벌대에 의해 집단 학살당하고, 시신마저 불태워진 지 75주기를 맞았습니다. 저는 빛바랜 기억 속에 살아 숨 쉬는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통한의 눈물을 흘립니다.1951년 정월 초이튿날, 아버지(송봉문)는 “피난 가자”며 아홉살이던 제 손을 꼭 잡고 차가운 곰내보를 건너 서주(함양군 유림면)로 향하셨습니다. 전해에 어머니를 폐병으로 여의고, 돌도 안 된 동생들마저 홍역과 마마로 모두 잃었습니다. 제게 남은 세상은 아버지뿐이었습니다. 그날 큰집에 저를 맡기며 갈라진 뒤로, 아버지는 참혹한 불꽃이 되어 사라지셨습니다.광고할머니의 마른 품에서 홀로 살아남은 아홉살 소년은, 가슴에 대못을 박은 채 평생을 울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여든다섯, 미수를 바라보는 백발의 노인이 되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여전히 곰내보를 건너던 아버지의 거칠고 따뜻했던 손길이 선명한데, 갈라진 조국은 75년이 지나도록 그 억울한 죽음에 이름 석자 온전히 찾아주지 않고 있습니다.제주 4·3사건과 5·18민주화운동은 뒤늦게나마 국가 배·보상이 실시되어 유족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창·산청·함양 사건의 배·보상 특별법은 20년이 넘도록 국회 문턱에서 차갑게 외면당하고 번번이 무산되었습니다.광고광고국가가 자신의 잔인한 폭력을 인정하기 부끄러워 유족들의 시간을 강제로 멈춰 세운 것이 아니라면, 이 지연의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유족들은 국가를 향해 칼을 겨누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국가 권력에 의해 자행된 거대한 폭력 앞에 무참히 짓밟힌 내 부모, 내 형제의 명예를 돌려달라는 절규일 뿐입니다.유족들에게는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 다달이 동료 유족들의 부고가 들려옵니다. 이제 살아남은 이가 몇 안 됩니다. 우리가 눈을 감기 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최소한의 염치와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국회는 배·보상 특별법을 즉각 통과시켜야 합니다. 평생을 눈물로 산 노인의 마지막 소원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국가의 진정성 있는 책임을 간절히 보고 싶습니다.광고
미수 앞둔 아홉살 소년,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왜냐면]
송진현 | 80대·부산 연제구 올해로 경남 거창·산청·함양의 무고한 양민들이 공비토벌대에 의해 집단 학살당하고, 시신마저 불태워진 지 75주기를 맞았습니다. 저는 빛바랜 기억 속에 살아 숨 쉬는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통한의 눈물을 흘립니다.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