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아리셀 참사로 세상을 떠난 고 엄정정씨 어머니 이순희씨(오른쪽)와 고 이혜옥씨의 사촌 언니 여국화씨가 희생자에 대한 추모 발언을 하고 있다. 정봉비 기자광고“3살 때 애를 두고 한국에 왔어요. 부모가 없으니 중국에서 고모, 외할머니집 전전하며 떠돌이처럼 살았어요. 부모랑 동생이랑 같이 살고 싶어서 한국에 왔는데. 스물 네살 먹고 부모님 돈 쓸 수 없다며 일하러 나갔는데. 그 참사를 당한 거예요.”중국 동포 이순희씨가 2년 전 여름,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에서 목숨 잃은 딸 엄정정(사망 당시 24)씨 이야기를 시작했다. 의젓한 딸이었다. 패딩 점퍼 하나를 10년 넘게 입어도 불평 한 번 없었고, 손수 아르바이트를 찾아 돈을 벌었다. 전국 공사 현장을 떠돌며 일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가족이 같이 지낼 새 보금자리를 찾고 계약한 것도 정정씨였다. 새집으로 함께 이사하기로 결정된 지 한 달 만인 6월24일, 딸은 영영 떠났다. 정정씨가 새집을 꾸미려 중국에서 주문한 물품을 담은 소포들만 물색없이 집으로 배송됐다.경계인의몫소리연구와 이주민센터 ‘친구’ 등은 31일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2주기 애도의 밤-내 무덤은 아리셀’을 열었다. 아리셀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참사의 사회적 의미를 되짚고, 희생자를 함께 기억하는 자리였다. 유족들은 희생된 가족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떠올리고 이야기하며 울었다. 뒤늦게나마 아픔을 나누려 모인 시민들도 애도를 전했다.광고여국화씨도 이날 외사촌 동생 고 이혜옥씨(사망 당시 39)가 떠난 자리를 되짚었다. 국화씨에게 혜옥씨는 어린 시절부터 가장 친한 친구이자 친동생 같은 사이였다고 했다. “사고 나서 잃게 되니까 내가 뭐가 그렇게 바쁘다고 시간을 못 내고, 한 번이라도 시간을 내서 밥이라도 먹었으면. 그게 너무 아팠어요.” 회한을 전하며 여씨가 눈물을 흘렸다.아리셀 참사 희생자 23명 가운데 19명은 이주노동자였다. 언어의 장벽과 불안정한 체류 조건, 편견 속에 희생자에 대한 사회적 애도가 특히 부족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신정아 백석예술대 교수는 행사 제목인 ‘내 무덤은 아리셀'의 의미에 대해 “유가족들은 단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만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함께 지워지는 경험까지 견뎌야 했다. 애도 받지 못한 죽음은 끝내 남겨진 사람들까지 사회적으로 죽게 만든다”며 “‘내 무덤은 아리셀'이라는 말은 그 침묵과 방치,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고통에 대한 증언”이라고 설명했다.광고광고아리셀 참사 당시 여러 희생자의 주검은 온전하지 않은 상태였다. 희생자 유해를 다 찾지 못한 채 수습이 완료된 사실은 2년 가까이 흐른 지난 4월 유족들이 기자회견에 나서고서야 주목 받았다. 가족들은 정부에 재수습을 요구하지만, 정부 움직임은 현재까지 보이지 않는다. “염치없는 거 압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저희 힘으로는 너무 모자라서. 여태껏 지지하고 연대 해준 것처럼 끝까지 부탁드립니다.” 이순희씨가 자리에 앉아 있는 시민들을 바라보며 말했다.정봉비 기자 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