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조영일씨, 미키 플리펜, 시몬 호크베르다, 오재경씨(왼쪽부터)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자신들이 해외 입양을 가던 무렵의 사진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광고“예순이 된 지금 나는 인생이 결국 다 좋아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안다. 사진 속 아이에게 ‘힘들어도 견디면 나아질 거다’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설령 내가 엄마와 남동생을 찾아도, 잃어버린 56년은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사진 속 어린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시몬 호크베르다(60)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남동생과 4살 때 생이별을 하고 네덜란드로 입양된 그는 전 연인의 임신을 알고 이를 감당할 수 없어 도망쳤다. 그는 “내가 상처 있는 사람이라서 남들에게도 상처 주며 살았다. 아이는 나를 원망할 거다”라고 말했다. 해외 입양이라는 칼에 베인 고통스러운 상처를 고스란히 대물림하고 있었다.시몬 호크베르다와 그가 4살 무렵 한국사회봉사회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유엔 클럽에서 일하던 엄마가 시몬과 남동생을 홀로 길렀다. 어머니가 당시 집주인 겸 보모에게 월세와 보육비를 제때 내지 못하자, 집주인이 시몬을 1970년 네덜란드로 입양 보냈다는 증언을 시몬이 고향 경기 파주시를 찾았을 때 들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미키 플리펜과 그가 14살 무렵 ‘성원선시오의 집’에서 찍은 사진. 입양기관 직원이 해외 입양을 가면 부자로 살 수 있다며 미키의 언니를 꾀었다. 그러나 미국 입양 가정에서 언니가 학대받는다는 소식에 친모가 화병으로 돌아가셨고 미키는 고아가 됐다. 1981년 미키가 미국으로 입양되기 전 거주한 ‘성원선시오의 집’ 신부는 시설 내 아동들을 성폭행했고, 미키 역시 피해자였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14살에 엄마가 죽으면서 미국에 입양된 미키 플리펜(60) 캄라(KAMRA) 한국지부 대표 역시 사람과 깊은 신뢰를 쌓기 어려웠다. 그는 “결혼도 했었지만 믿음을 쌓기 쉽지 않아 결국 헤어졌다”며 “누군가를 너무 믿었다가 떠나거나,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람과 가까워질까 봐 친구를 만드는 게 어렵다”고 말했다.광고어버이날인 지난 5월8일, 시몬·미키·조영일·오재경과 만났다. 모두 ‘혼혈’ 해외 입양인인 이들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를 통해 입양 과정의 진실과 정의를 찾고 있다. 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국가에 의해 강제로 가족과 헤어졌다.조영일씨와 그가 7~8살 무렵 위탁가정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조씨는 1964년 홀트를 통해 스웨덴으로 입양 가기로 했지만, 공항에서 돌연 입양이 취소돼 다시 위탁가정으로 돌아갔다. 혼혈이라는 이유로 조씨는 물론 배우자와 자녀까지 많은 상처를 입고 살아야 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오재경씨와 그가 13살 무렵 ‘성원선시오의 집’에서 찍은 사진. 오씨가 혼혈 아동이라는 이유로 사회복지사가 가족들에게 해외 입양을 종용했고, 1980년 미국으로 입양됐다. 그 과정에서 ‘오죠디’라는 새 이름으로 여권을 받은 다음날 갑자기 입양됐고, 추후 오재경은 사망 처리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어렸던 그들이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었지만, 모두 부모와 떨어지게 된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조영일(69)은 “그때 더 똑똑했으면 엄마 붙잡고 헤어지지 않았을 텐데”라며 선명히 기억나지 않는 엄마를 그리워했다. 그는 7살에 스웨덴으로 향하려다 공항에서 입양이 취소돼 위탁 가정으로 돌아갔고, 학대가 이어지자 고등학교 1학년 때 집을 나왔다. 오재경(61)은 “후회된다. 내가 지켜줬으면 엄마가 더 오래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한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친척 집에 머물다 ‘성원선시오의 집’을 거쳐 1980년 미국으로 입양됐다. 엄마도 모르는 입양이었음을 2년 뒤 한국에 돌아와 알게 됐지만, 엄마는 폐병으로 1986년에 세상을 떠났다.광고광고미키 플리펜 캄라 한국지부 대표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열린 ‘트레이스(TRACE) 해외입양·아동권리 진상규명 연대’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아동탈취 해외강제입양과 혼혈인 해외강제입양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서를 제출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무엇보다 간절한 것은 ‘진실’이다. 이들은 진실규명을 통해 왜 그리고 어떻게 입양이 됐는지는 물론, 국가의 혼혈 아동 송출정책, 성원선시오의 집에서의 아동 성폭력 등이 밝혀져 국가의 사과를 받길 원한다. “얼마가 돼도 내 인생을 보상해줄 수는 없다. 정말 진실을 밝히고 싶다”고 미키는 말했다.5월8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앞에서 해외입양으로 아이를 빼앗긴 엄마들과 ‘트레이스 해외입양·아동권리 진상규명 연대’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몬은 펼침막을, 미키·영일·재경은 손팻말을 들었다. 서로의 사연에 코를 훌쩍이고 어깨를 토닥였다. 얼굴색은 조금씩 달라도 가슴속은 모두 퍼렇게 멍든 같은 ‘한국인’들이었다.광고시몬 호크베르다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열린 ‘트레이스 해외입양·아동권리 진상규명 연대’ 기자회견에서 펼침막을 손으로 잡아 고정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미키 플리펜 캄라 한국지부 대표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열린 ‘트레이스 해외입양·아동권리 진상규명 연대’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를 위로하며 눈물 흘리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조영일씨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열린 ‘트레이스 해외입양·아동권리 진상규명 연대’ 기자회견에서 참가자 발언을 들으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트레이스 해외입양·아동권리 진상규명 연대’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해외입양 피해 친모·입양인 진실규명 신청 제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미키 플리펜 캄라 한국지부 대표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열린 ‘트레이스 해외입양·아동권리 진상규명 연대’ 기자회견에서 흐느끼는 참가자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위로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2026년 6월1일치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