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알츠하이머 치매에다 청력을 거의 잃은 아버지가 예전에 즐겨 불렀던 판소리 단가 ‘사철가’를 귀에 들려주면 가끔은 손을 흔들며 장단을 맞추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광고김희경의 에이징북 7년 전 아버지가 뇌수막염으로 인한 뇌병변 장애와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동시에 받았을 때, 깜깜한 터널 속을 더듬거리며 걷는 심정으로 도서관에서 치매에 관한 책들을 쌓아놓고 읽다가 그만 눈물을 쏟은 적이 있다. 일본 다큐멘터리 감독 노부토모 나오코가 썼고 지금은 절판된 책 ‘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에서 읽은 한 문장 때문이었다. “간병은 부모가 목숨 걸고 해주는 마지막 육아다.”광고 치매에 걸린 엄마의 일상을 다룬 감독의 영화를 보고 한 관객이 건넨 말이었는데, 감독은 이 말을 부모가 살아 있는 동안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썼다. “엄마는 지금, 자식인 내가 인간으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삶이 무엇인지 똑바로 보고 느끼라고, 자신의 전부를 걸고서 마지막 육아를 해주고 있구나” 하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성장 따위 필요 없으니 이런 방식으로 가시지 말라고 엎드려 울었지만, 아마 그날부터였을 것이다. 부모의 몸이 부서지고 정신이 사그라드는 과정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는 목격자가 되겠다고 수시로 다짐하게 된 것은.광고광고 여러해가 지난 지금, 내가 성장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무엇을 배웠는지는 아마 ‘마지막 육아’가 다 끝난 뒤에나 어렴풋이 알게 되지 않을까. 나는 그저 지금 당장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정도만 간신히 알아차릴 수 있을 뿐이다. 예컨대 요즘에는 체념하면서도 정성을 들이는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고 작은 순간의 기쁨을 간직하려 노력한다. 나와 가족은 시력과 청력을 거의 잃고 자극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아버지에게 말을 걸고 쓰다듬으면서 예전에 즐겨 불렀던 판소리 단가 ‘사철가’를 귀에 들려주곤 하는데, 가끔 아버지가 맞잡은 손을 흔들며 장단을 맞출 때가 있다. 마치 아버지의 손상된 뇌 안에서 자신의 음악을 알아보는 회로가 반짝 켜지기라도 한 것처럼.광고 찰나에 그칠지라도 그 반응은 소중하다. 잠깐이나마 우리에게 익숙한 아버지가 살아나고, 아버지 내면의 짧은 즐거움, 아버지다움이 한계 안에서나마 회복되는 듯해서다. 돌봄 관계의 상호작용을 통해 사람의 역량이 피어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몸으로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다. 몸으로 겨우 이해하게 되는 것을 이따금 다른 사람이 써둔 문장을 통해 다시 만날 때가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엄유진이 그리고 쓴 책 ‘순간을 달리는 할머니’ 1, 2편은 치매 진단을 받은 어머니와 서로를 지탱하는 가족의 일상이 소재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부모가 목숨 걸고 하는 ‘마지막 육아’의 내용을 성실하게 받아 적는 딸을 보는 듯했다.순간을 달리는 할머니 1, 2 l 엄유진 지음, 문학동네(2025) 위트 넘치는 명언이 빼곡한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작가의 어머니가 기억을 잃어가는 자신의 상태에 반응하는 태도였다. 소설가이자 강단에 섰던 어머니는 마지막 강의에서 “제 기억이 크리스마스 전구처럼 깜빡깜빡할지도 모른다”고 전제한 뒤 이렇게 말한다. “혹시 제가 깜빡하는 게 있다면, 아, 크리스마스가 오고 있구나, 라고 생각한 다음 꼭 알려주세요.”광고 치매의 어두운 무게를 크리스마스의 반짝거림에 연결하는 이 대목에서부터 작가의 어머니는 예사롭지 않다. “나도 맨날 엄청난 속도로 까먹느라 얼마나 바쁜지 아니?” 하는 유머를 수시로 날리면서 딸의 불안을 누그러뜨리고 삶의 고통을 웃음으로 전환한다. 내 아버지는 뇌수막염 후유증으로 인지 장애가 급작스럽게 진행됐기 때문에 기억을 잃는 게 당사자에게 어떤 느낌인지 스스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그게 못내 궁금했는데, 이 책을 통해 약간의 힌트를 얻게 됐다. 작가의 어머니는 기억이 사라지는 감각에 대해 “어디에도 닿지 않는 느낌. 과거에도, 미래에도. 머릿속으로 어딜 가야겠다 계획해도, 그 결과에 도달할 수 없는 느낌”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기억을 잃으면서 사회 활동이 어려워졌어도 심리적으로는 안정감이 들었다고 한다. 어떤 순간을 붙잡으려고 몸부림치지만 않는다면, 어쩌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 기분이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다 똑같지 않겠지만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그제야 숨이 조금 트였다. 아버지가 지금보다 대화가 가능했던 시절에 했던 기묘한 이야기들, 아버지 머릿속에서 펼쳐졌던 세상이 내 우려와 달리 불안과 공포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새로운 세상에서 아버지도 나름의 시간을 보냈을 거라고 생각하니 안심이 되었다. 노쇠해가는 부모, 배우자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은 일부러라도 가끔 뒤로 몇 걸음 물러서 볼 필요가 있다. 코앞에서 견디기 힘든 일도 조금 떨어져 보면 웃음이 새어 나오는 구석이 있으니까. 기억을 잃고 돌봄에 지치는 상황을 유머로 통과해 가는 작가 가족의 이야기도 마냥 사정이 좋아서가 아니라 웃음이 없으면 그 과정의 비애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유머 감각이 어머니 못지않은 작가의 아버지가 딸에게 건강을 챙기라고 건넨 당부는 누군가를 돌보는 모든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넌 너 자신만의 것이 아니야. 누군가의 소중한 너이기도 하지. 그러니 그들을 위해서라도 너 자신을 우선 챙겨야 해.” 작가는 인스타그램에서 책 출간 이후의 이야기들을 연재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작가 어머니의 상태는 점점 악화하는 중이다. 하지만 내가 아버지의 손이 장단을 맞추는 찰나를 만나듯 작가도 어머니의 반짝이는 순간을 종종 마주하며 기뻐할 것이라고 믿는다. 나빠지는 와중에도 크리스마스는 올 테니까. 김희경 작가, 전 여성가족부 차관김희경 작가, 전 여성가족부 차관
간병 상황 놓인 부모, 목숨 건 마지막 육아 [.txt]
김희경의 에이징북 7년 전 아버지가 뇌수막염으로 인한 뇌병변 장애와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동시에 받았을 때, 깜깜한 터널 속을 더듬거리며 걷는 심정으로 도서관에서 치매에 관한 책들을 쌓아놓고 읽다가 그만 눈물을 쏟은 적이 있다. 일본 다큐멘터리 감독 노부토모 나오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