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12일 국회프락치 사건 재심 여부 판단을 위한 심리가 진행된 서울중앙지법 425호실 앞에서 포즈를 취한 유족들. 왼쪽부터 노일환 전 의원의 손자 노주상씨, 강욱중 전 의원 며느리 이선자, 아들 강호림, 딸 강금자씨, 김병회 전 의원의 딸 김영자씨, 노일환 전 의원 조카 노시수씨, 서용길 전 의원 아들 서영철씨. 고경태 기자광고“아버지가 서대문형무소에서 고깔모자 쓴 채 포승줄에 묶여 제 머리를 쓰다듬은 게 마지막이었습니다.”(김병회 전 의원 딸 김영자씨)“(후손들이)연좌제로 너무 고생을 많이 했어요.”(노일환 전 의원 손자 노주상씨)“1950년 9월23일, 아버지가 반바지 차림으로 누군가에 의해 총으로 위협당하며 끌려갔어요. 진실을 알고 싶어 제가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해왔습니다.” (강욱중 전 의원 아들 강호림씨)광고“나라의 기틀을 세운 제헌국회의원들을 프락치로 엮다니요. 진실을 정확하게 밝혀주시기 바랍니다.”(서용길 전 의원 아들 서영철씨)76년 만의 법정이었다. 제헌국회의원이었던 그들의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는 1950년 3월14일 서울지방법원(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남로당 지령을 받아 외군철수 등을 주장했다는 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징역 3년~10년을 선고받았다. 항소했지만, 더 재판받지 못했다. 2심이 열리기 전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서대문형무소에서 풀려나왔으나, 13명 중 12명이 9·28 수복 직전 북한 요원으로 추정되는 이들에게 납북되거나 월북했다. 피고 대부분이 사라진 상황에서 서울고법은 1951년 12월 전쟁 중 기록 멸실을 이유로 공소기각 결정을 내렸다. 유족들은 이제라도 유무죄를 확정해달라며 지난 4월 재심을 청구했다.광고광고12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오세용)는 국회프락치 사건 피고인 4명의 유족이 청구한 이 사건 재심 개시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첫 심문기일 절차를 진행했다. 강금자(88)·김영자(81)·노주상(58)·서영철(74)씨가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인 강욱중(1908~1969)·김병회(1916~1987)·노일환(1914~1958?)·서용길(1912~1992) 전 제헌국회의원을 대신해 법정에 나왔다. 재판장인 오세용 부장판사는 청구인 인적사항과 피고인 사망일 등을 확인하는 질문을 던진 뒤 유족들에게 발언 기회를 줬다. 이들 유족뿐 아니라 방청석에 앉은 다른 유족이나 관련 단체 대표가 손을 들어도 자유롭게 발언하도록 했다. 심리는 30여분간 진행됐다.이날 재판장은 피고인들의 사망일 관련자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결정문 등 추가 증거자료의 신속한 제출을 요청하면서 심문기일을 따로 잡지는 않았다. 추가 심리 진행 없이 자료 검토 뒤 바로 재심 개시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광고재심 청구인들을 대리하는 임예지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이날 청구 취지에 관해 “이 사건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 이승만 행정부에 의한 대표적인 입법부 탄압 사건으로 수사 과정에서 불법 체포·감금·고문 및 가혹 행위 등 중대한 인권 침해가 있었고 유족에 대한 국가 폭력, 사찰, 신분상의 불이익 등 인권 침해가 존재해 진실화해위에 의해 진실규명 결정된 사건”이라고 밝혔다. 반면 검사 쪽은 “이 사건은 공소취소로 간주돼 공소기각이 결정됐고 유죄확정된 게 아니라서 재심청구 대상이 아니”라고 재심 개시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임예지 변호사는 검사의 재심 개시 반대 논리와 관련 한겨레에 “대법원은 특별사면으로 형 선고 효력이 소멸한 경우에도 재심 청구가 가능하다고 판시한 선례가 있으며, 여순사건이나 4·3사건 등에서 기록 멸실과 부존재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국가에 귀속되므로 이를 이유로 피고인의 권리구제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판단한 바 있다”고 밝혔다. 이어 “검사는 유죄가 확정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실제 피고인들은 1심 실형 선고와 수감, 사회적 낙인, 납북 등으로 이미 유죄의 실질적 불이익을 모두 감수했고, 유족들 또한 수십 년간 연좌제에 묶여 불법 사찰, 고문, 기본권 제한이라는 참혹한 인권침해와 사회적 낙인을 겪어왔다”고 반박했다.국회프락치 사건은 1949년 5월~8월 이승만 정권이 북한 공작원 정재한에게 포섭된 의원 명단의 암호 문서를 발견했다는 등의 이유로 소장파 국회의원 15명을 체포해 이 중 13명을 기소한 일이다. 당시 수사기관은 체포된 소장파 의원들이 남로당 지령을 받아 외군 철수, 정부 불신임 등을 주장하고 국가 변란을 목적으로 활동했다며 구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했다. 하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고 결정적 증인으로 거론된 정재한은 법정에 한 번 나오지 않은 채 별건으로 사형 집행돼 조작사건이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국회프락치 사건은 친일파 청산을 위해 출범한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사무실 습격과 해체의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고경태 기자 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