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마을을 찾는 연대인들이 수박 한통씩 가져온다. 필자 제공광고이종건 | 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 여름의 음식이 갖춰야 할 덕목이 뭘까. 시원해야 함은 당연지사. 이열치열이란 말도 있지만 그건 별식에 한해서지 주로 찾게 되는 것은 모름지기 시원한 것들이다. 냉면, 냉모밀, 김치말이국수, 묵사발, 콩국수, 밀면. 쓰면서 생각해보니, 대부분이 면식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이유는 ‘단순함’에 있다. 밥이 주제인 음식은 다채롭게 맛을 쌓아 올려 가능한 복잡한 풍미를 느끼는 데 열중하지만 면이 주제인 음식은 면의 식감과 단순하고 직관적인 국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름에는 복잡한 음식이 싫다. 몸이 지쳤으니, 혀도 지친다. 단순한 감각으로 필요한 열량을 시원하게 섭취하고 싶은 마음. 그러니 밥이 주제가 되더라도 그 맛은 단순하다. 보리밥, 호박잎쌈, 열무비빔밥, 오이냉국 등등.여름 더위와 함께 용역도 들이닥쳤다. 성북구 마지막 달동네 정릉골. 임대주택 한 채 없는 재개발에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싸우는 주거 세입자들이 남아있다. 예고 없이 들이닥친 폭력에 오갈 데 없는 세입자들은 악에 받쳐 싸웠다. 소식 듣고 달려온 연대인들이 합류하며 마을은 아수라장이었다. 비명과 고성, 땀냄새가 뒤섞인다. 우거진 여름 숲의 새소리와 동네 강아지들 짖는 소리가 뒤섞인다. 이상한 풍경이었다. 대책위 위원장 댁에 집행이 들이닥쳤을 때에는 소형견 케이지를 들고왔다. 강아지 봄이를 챙길 케이지였다. 배려에 고맙다고 해야하나. 그렇게 강제집행을 당해 집을 잃는다면, 임시보호라도 해줄 요량이었을까. 잔인한 살뜰함을 연대로 막아냈다. 목이 쩍쩍 갈라지고, 몸은 끈적인다. 쨍한 햇빛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광고정릉골에 들이닥친 용역. 필자 제공“수박 좀 잘라드릴까요?”한바탕 소란 뒤, 주민들이 수박을 자른다. 내오면 내오는대로 바짝 마른 목구멍으로 수박을 밀어넣는다. 차갑고, 달다. 물로 채울 수 없는 갈증의 한구석을 우적우적 채워넣는다. 차갑고 단순한 여름의 맛. 마을은 아수라장이지만 수박이 돌고 나니 생기가 돋는다. 여름의 맛은 단순해야 한다. 한반도의 무더위는 다른 계절보다 하루의 농도를 더 짙게 한다. 그 짙은 농도를 옅게 희석시킬 음식이 필요하다. 다량의 물과 섬유질, 적당한 당분이 만난 한입거리 수박과 같이.광고광고단순한 대책이 필요하다. 가난한 동네를 부유한 이들의 고급주택단지로 바꾸는 일이 온당한가 되묻게 되지만, 결국 밀어붙이겠다면 그곳에 터 잡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단순하고 올바른 대책이 필요하다. 세입자를 쫓아내기에 앞서 대책을 마련하라. 세입자의 7할이 마을에 다시 재정착하고 싶다고 말했던 동네. 그러나 개발 이후 마을에 재정착할 수 있는 세입자는 0%. 인근 지역의 시세까지 올려버리니 결국 세입자들이 잃어버리는건 집이 아니라 지역에 뿌리 박힌 삶의 총체다.재개발은 공공사업이다. 괜히 행정이 나서서 구역을 지정하고 주민편의시설이나 도로 등을 협의하는게 아니다. 소유주 개인의 삶보다 큰 도시 전체의 운명을 가늠질하는 대규모 개발사업이 민간 주도로 이뤄지는 것은 공공의 역할을 일부 위임한 것일 뿐, 재개발의 본령이 자산증식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정릉골과 같은 재개발을 다시는 보지 않기를 바란다. 세 차례의 강제집행을 막아내고 나서야 구청과 조합이 동석한 협의 자리가 열렸다. 관이 개입하니 강제집행은 잠시 중단됐다. 이미 많은걸 놓쳐버린 정릉골 재개발, 지금이라도 남은 세입자들을 위한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길 바란다. 이 여름이 다 가기 전, 단순하고 시원한 대책이 마련되기를 지켜본다.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