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광고흔히 ‘벨루가’라고 불리는 흰고래는 상업적 오락을 위해 조직적으로 포획·전시된 최초의 고래 종으로 알려져 있다. 1861년 당시 미국 유명 정치인이자 서커스단 주인이었던 피니어서 테일러 바넘은 캐나다 세인트로렌스강·래브라도 인근에서 흰고래를 잇달아 포획해 뉴욕 ‘아메리칸 뮤지엄’에 전시했다. 흰고래는 출렁이는 바닷물이 담긴 상자에 갇혀 기차로 수백킬로미터를 이동해 뉴욕 시내로 옮겨졌지만, 맨 처음 잡힌 2마리는 결국 이틀 만에 숨졌다.비록 고래들이 죽었지만 바넘은 자신의 고래잡이를 대성공이라고 선언하고, 곧바로 또 따른 ‘흰고래 사냥’에 나섰다. 이번엔 뉴욕 항구에서 바닷물을 끌어와 박물관 2층에 유리 수조를 만들었다. 세계 최초 해양 수족관이라 할 수 있다. 신문 광고에는 “곧 죽을지 모를 희귀 동물”이란 점을 강조했다. 죽기 전에 서둘러 보러 오란 소리였다. 1861년부터 1865년까지 그는 야생 흰고래 9마리를 포획했다. 일부는 운송 중에 죽었고, 나머지는 수조에서 죽었지만, 그보다 더 참혹한 죽음도 있었다. 그가 운영하던 아메리칸 뮤지엄에 불이 나 “고래들은 산 채로 불태워졌다.”(뉴욕 트리뷴)흰고래가 초기 포획·전시 종이 된 데에는 이들이 바다에서 생활하다 여름엔 강 하구나 만까지 접근한다는 점, 성체 몸길이가 3~5m 정도로 대형 고래류보다 체구가 작고 지방층이 두꺼워 운송 등 단기 스트레스를 잘 견딘다는 점 등이 두루 작용했다. 게다가 이들의 흰 피부, 볼록한 머리, 미소 짓는 듯한 입술은 인간의 미적 감각을 자극했다. 사람이 바다에 떨군 휴대폰을 물어다 주거나 인간 언어를 흉내 낼 정도로 호기심이 많고 호의적인 동물인 탓도 있었을 것이다.광고이들은 하루 160㎞를 헤엄치고 최대 1㎞를 잠수한다. ‘북극의 카나리아’라고 이를 정도로 다양한 소리로 소통하고, 복잡미묘한 사회생활을 한다. 우리처럼 놀고, 어울리고, 새끼를 낳아 기른다. 바넘이 흰고래를 처음 ‘납치’했던 19세기와 달리 이제 우린 이들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됐다. 그런데도 좁은 수조에 가둬 이들을 볼거리로 착취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달라지지 않고 있다. 6월 초 경남 고래체험시설 ‘거제씨월드’에서는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새끼 흰고래가 폐사했다. 야생에서라면 긴 임신·수유 기간과 출산을 함께할 가족과 동료가 있었을 테지만, 콘크리트 수조에 갇힌 어미에겐 아무도 없었다. 갇힌 지 165년이 지났지만, 죽음은 끝이 없다. 국내 3곳 수족관에는 현재 흰고래 5마리가 갇혀 있다.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