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아파트는 어떻게 마을이 되었나 l 위스테이별내 마을작가단 지음, 빨간소금, 1만9800원 광고국내 최초의 협동조합 아파트를 다룬 이 책의 저자는 47명이다. 이 중 44명이 이 아파트 주민이다. 저자들은 모두 서로 다른 세대원이다. 491세대이니, 전체 세대의 거의 10분의 1이 집필에 참여했다. 책은 ‘아파트가 어떻게 마을이 되었는지’에 대한 주민들의 증언 모음이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가을 어느 날, 입주를 끝낸 지 두어 달 된 이 아파트 잔디광장에선 결혼식이 열렸다. 아파트 이웃들이 하객이자 증인이 됐다. 결혼식 중간중간 주민들은 각자의 집 발코니에서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아파트 주민들이 모인 막걸리 동아리는 직접 빚은 막걸리 ‘가람주’를 하객들과 나누었고, 축가는 아파트 아이들이 불렀다. 주차장에서 주차 봉사를 해주고 예식 뒷정리를 도와준 이들도 아파트 이웃이었다.2020년 가을에 열린 아파트 결혼식. 축가를 아파트 아이들이 불렀다. 위스테이별내 협동조합 제공 2023년 9월엔 교권 문제가 사회적 이슈였다. 갑작스러운 ‘공교육 멈춤의 날’에 이 아파트에선 ‘일일 대안학교’가 열렸다. 참여한 초등학생은 28명. 이날 하루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나온 주민들이 아파트 내 여러 공간을 활용해 독서, 보드게임, 드로잉 수업을 열었다. 놀이터에선 각종 놀이를, 체육관에서 댄스 수업을 했다. 아이들 점심은 아파트 내 공유주방에서 차렸다. 이웃들에게 아이를 맡긴 맞벌이 부모는 안심하고 출근할 수 있었다.광고 이 아파트엔 나이별, 관심사별 모임이 활발하다. 같은 해 태어난 아이들을 공동육아하고, 주민들끼리 서로 외국어나 악기 등을 가르치고 배운다. 동네부엌에선 매일 아이들 저녁을 함께 준비하고 먹인다. 아이를 처음 키우는 주민은 “이곳이 천국이구나” 한다. 이 아파트에서 유명한 아빠 육아 모임 ‘위꿀아’(위스테이별내 꿀꿀이 아빠 육아모임)도 빠질 수 없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마다 여는 ‘아빠 육아의 날’, 시에서 받은 두번의 우수상, 이곳저곳 언론 인터뷰, 400명에 가까운 ‘아빠 육아의 날’ 외부 참여자. 이 아파트 주민이자 평범한 직장인인 ‘위꿀아 대표님’은 이제 참여연대나 시육아지원센터에서 육아 강연을 한다. 광고광고 이 아파트 어떤 주민은 자기소개를 이렇게 한다. “위스테이별내에서 13가지 마을활동을 하는 주민 누구누구입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세상과 단절된 채 홀로 아이를 보던 자신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의아해하면서. 코로나가 시작될 무렵과 끝날 무렵 각각 아이를 낳아 “남들 다 있다는 조리원 동기 하나 없던” 또 다른 주민은 이렇게 말한다. 이 아파트에 온 건 “평생의 운만이 아닌, 다음 생의 운까지 보태야 가능했을 만큼의 큰 행운이었다”고. 지난해에야 이 아파트로 이사 온 한 주민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들에게서 반가운 인사와 함께 “처음 보는 분인데?”, “지인 집에 놀러 오셨나 보다” 같은 말을 들었다. 같은 라인의 모든 이가 서로를 알고 있는 뭔가 이상한 곳. 하지만 겨우 1년 만에 ‘산후우울증을 앓던 100일 아기 엄마’는 이곳에서 살아갈 에너지를 얻었다. “온 마을이 엄마인 나를 키웠다”고 한다.광고한달에 한번씩 열리는 마을 잔칫날인 ‘꽁날’ 전경. 위스테이별내 협동조합 제공 물론 공동체엔 마냥 좋을 일만 있지는 않다. 예상치 못한 난관과 갈등이 있고, 실패와 상처도 남는다. 벽과 천장과 바닥을 공유하는 공동체에선 필연적인 문제다. 중요한 건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이다. 참여하고 논의하고 방법을 모색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아파트에서 흔히 발생하는 갈등 중 하나인 주차 문제를 이 아파트에선 독특하게 접근했다. ‘주차 규정을 위반하셨습니다. 이동 주차 부탁드립니다. -함께 사는 당신의 이웃이’라는 문구가 쓰인 종이를 주차장 곳곳에 비치해 둔다. 위반 차량이 있으면 그 종이를 가져다 차 앞 유리에 꽂아둔다. ‘경고’나 ‘제재’가 아닌 이웃의 정중한 요청이다. 주차 문제가 그래서 다른 아파트보다 적은지는, 물론 알 수 없다. 겨울에 단지 내에 눈이 쌓이면 이 아파트에선 주민들이 함께 나와 치운다. 입주 초기 관리사무소에 직원이 없는 주말, 함박눈이 오자 동네지기(관리사무소장을 부르는 말로, 동네지기 역시 주민이다)는 고민하다 이런 방송을 했다. “위스테이에 내린 눈을 이웃들과 함께 치우고 아이들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볼까요?” 40여명이 모여 채 한 시간이 안 돼 제설 작업을 끝냈다. 와중에 아이들은 잔디광장에서 눈사람을 만들며 놀았다. 월요일 출근한 관리소 직원들이 깜짝 놀라며 ‘누가 이렇게 치운 거냐’고 물었다. 이후로 다 함께 눈 치우기는 겨울이 되면 늘 하는 행사처럼 자리 잡았다.아파트 물놀이. 위스테이별내 협동조합 제공 유독 착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니다. 이웃이 되기 위한 여러 노력의 결과일 뿐이다. 입주자가 늘 아파트 건설의 마지막 단계에서 마케팅과 홍보의 대상이 되는 흔한 아파트가 아니라, 주민들이 참여한 협동조합을 만들어 개발 단계에서부터 직접 주체로 나서도록 했기 때문이다. 또 아파트 협동조합의 사무국과 마을활동가들, 주민들이 각종 위원회와 동아리 활동을 하며 만나 의논하고 갈등하다 규칙을 정하고 함께 지키고 참여한 결과다.광고 이 아파트는 국무조정실 생활 에스오씨(SOC) 최우수상, 협동조합 베스트어워드, 탄소중립 경연대회 환경부 장관상을 받았다. 20개 동아리에서 300여명의 주민이 활동한다. “광고에서나 보던 아파트네?”라며 놀라워하는 이도 있지만, 대한민국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에 실재하는 아파트다. 수천억원 규모의 개발 사업이 아닌, 무너진 공동체를 회복하고 새롭게 건설하기 위한 주거 실험, 공동체 실험이기에 조금 다르게 보일 뿐이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