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일본 ‘가루비 포테이토칩스’의 컬러 포장 제품 아래 흑백 포장 제품이 놓여 있다. AP 연합뉴스 광고홍석재 | 도쿄 특파원 ‘석유 원료 절약 포장.’광고 지난 3일 동네 마트에 이런 내용과 함께 진열된 ‘가루비 포테이토칩스’는 어딘가 기묘한 느낌이었다. 포장지만 봐도 입맛 돌던 노란빛 감자칩 그림은 온데간데없었다. 짭조름한 포테이토칩스 맛에 푹 빠진 소비자들이 ‘포테토보야’(감자소년)라고 이름 붙여준 울퉁불퉁 못난이 감자 캐릭터도 함께 사라졌다. 알루미늄 포일처럼 흑백으로만 반짝이는 포장지에선 서늘함마저 느껴졌다. 제과업체 가루비는 일본 스낵시장 점유율 51%, 감자칩 시장 72%를 장악한 절대 강자다. 일본 전체 감자 생산량의 18% 정도를 가루비가 쓴다는 통계도 있다. 특히 이 회사는 한해 매출 100억엔(약 957억원) 이상을 일으키는 단일 제품을 7종이나 보유했는데 ‘포테이토칩스’가 그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1975년 ‘우스시오’(약간 짠맛)가 첫선을 보인 뒤, 1976년 짭짤한 ‘노리시오’(김 맛), 1978년 ‘콘소메 펀치’(옥수수 맛)가 나왔다. 세 종이 모두 대히트를 치면서 ‘가루비 3대 클래식’으로 불린다.광고광고 이들 삼총사가 최근 새삼 주목받은 건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 때문이다. 일본에선 호르무즈해협 봉쇄 뒤 석유와 나프타 원료 공급 부족으로 쓰레기봉투, 농업 하우스용 비닐, 도시락 용기, 의료용 고무장갑 수급 등에 크게 애를 먹고 있다. 가루비는 석유가 원재료인 잉크 부족을 이유로 이번 달부터 포테이토칩스 등을 흑백 포장으로 내놔 충격을 줬다. 일본 스낵계 전설이자 국민 과자로 통하는 이 과자를 고를 때, 큰 고민 없이 짠맛은 노랑, 김 맛은 초록, 옥수수 맛은 크림색 등 포장 색깔로 결정하면 된다. 하지만 이게 갑자기 불가능해진 것이다. 음식 포장은 일반적으로도 소비자의 제품 결정에 중요한 구실을 한다. 유럽연합(EU) 산하 혁신기술연구소(EIT)가 운영하는 누리집 ‘푸드언폴디드’는 “시각적 색상 신호가 음식의 실제 맛을 압도할 수 있다”며 “팝콘 대상 연구에서 붉은 그릇에 담긴 짭짤한 팝콘을 더 달게, 흰 그릇에선 더 짭짤하게 느낀다”는 연구 내용을 발표한 바 있다. “따뜻한 노란 계열 색상이 식욕을 자극하고, 차가운 색상은 식욕 억제 혹은 불쾌감을 부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광고 흑백 옷으로 갈아입은 가루비 포테이토칩스 삼총사는 이란 전쟁의 유탄을 맞은 피해자로 비치고 있다. 반면 일본 정부는 가루비 쪽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일본 정부는 여러 지표를 봤을 때 석유 관련 제품이나 나프타 공급이 부족하지 않다고 누차 강조해왔다. 하지만 가루비가 국민 과자에 흑백 포장을 도입하면서 정부 주장을 거짓말처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 언론이 가루비 흑백 포장을 계기로 일본 정부의 중동 사태 대처를 한국과 견주며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특별 프로그램을 방송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부 안에선 “가루비 쪽이 전략적으로 노이즈 마케팅을 하는 것”, “국민 불안을 야기한다”는 불만까지 터져 나온다고 한다. 가루비는 한국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가루비와 해태제과의 한일 합작법인인 해태가루비가 2014년 만든 제품이 한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친 ‘허니버터칩’이다. 일본에서도 이 과자를 살 수 있는데 다행히 아직 컬러 포장을 유지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면 가루비 포테이토칩스 삼총사가 본래 옷을 갈아입고 감자소년도 제자리를 찾게 될까? forchi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