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 광고 “증시에 ‘이재명 풋’이라는 말이 회자한다.” 최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자산운용사 대표의 전언이다. ‘이재명 풋’은 미국의 ‘버냉키 풋’을 빗댄 말이다. 2008년 미 금융위기 당시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금리 인하와 유동성 공급을 통해 주가 하락으로부터 투자자들을 보호한 것에서 비롯됐다. 풋옵션은 주가가 떨어질 때 손실을 방어하는 파생상품이다. 중앙은행이 마치 풋옵션처럼 증시 하락 시 구원투수 역할을 한다는 비판을 담고 있다. ‘이재명 풋’도 “이 대통령이 주가하락을 절대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식 투자자들의 기대나 맹신을 뜻한다. ‘이재명 풋’이나 ‘버냉키 풋’의 가장 큰 문제는 투자자의 도덕적 해이를 심화시키는 것이다. 투자자들이 정부나 중앙은행만 믿고 과도한 위험을 감수한다면 증시 거품을 낳고, 국가경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광고 ■삼성전자 파업에 긴급조정권 경고 이재명 정부는 최근 삼성전자 노사의 성과급 협상에 적극 개입해서, 잠정 합의를 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파업 시 긴급조정권 발동이 불가피하다는 강경 입장을 거듭 밝혔다. “노동권만큼 기업경영권도 존중되어야 한다. 헌법상 모든 국민의 기본권은 보장되지만,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공공복리 등을 위해 제한될 수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경제적 피해가 최대 100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거들었다. 보수언론이 일제히 “파업 시 긴급조정권을 즉각 발동해야 한다”고 이재명 정부를 열렬히 응원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광고광고 반도체가 국가적으로 핵심 전략산업인 것을 부인할 사람은 적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서 규정한 “현저히 국민경제를 해하거나,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현존하는 때”라는 발동조건을 충족하는지는 의문이다. 김 총리가 말한 ‘100조 피해’도 다분히 과장이다. 학계와 시장에서는 대략 하루 1조원씩 20~30조원을 예상했다. 이런 피해가 현실화하더라도,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는 350조원 안팎에서 300조원 초반대로 줄어들 뿐이다. 세계 최고 실적 기업 중 하나인 것은 변함 없다. 일부에선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차질에 따른 피해도 거론하지만, 당장 한국을 대신해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디램 공급을 대신할 기업이 나타날 가능성은 작다. 반도체 전문가인 이봉렬씨는 소셜미디어에서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으로 인한 손실이 커서 절대 안 된다고들 하는데…그럼 손실이 어느 정도까지여야 파업을 할 수 있다는 건가”라며 “사내 하청업체 노동자와도 연대하지 않는 삼성전자 노조의 태도에 나 역시 비판적이지만,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총리를 비롯한 기득권 세력이 금기시하는 꼴은 역겹다”고 직격했다. 긴급조정권이 노사 합의를 끌어내는 데 압박 카드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결과가 좋다고 과정을 모두 정당화할 수는 없다. 반도체가 국가 핵심 전략산업이라는 이유로 긴급조정권을 발동하는 게 맞다면, 앞으로 자동차·에너지·조선 등 다른 핵심산업에서 파업이 일어날 때마다 나쁜 선례로 작용할 것이다. 긴급조정권이 지난 1963년 처음 도입된 이후 60여년 동안 실제 발동된 것은 단 네 차례 뿐이다. 권위주의 정부를 포함한 역대 정부들이 모두 긴급조정권 발동에 매우 신중했음을 알 수 있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기업의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로 인해 노조의 정당한 쟁의행위가 무력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야당 반대를 뚫고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또 노동존중 실현과 노동기본권이 국정과제이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 1년 만에 긴급조정권을 발동했다면, 두고두고 역사적 조롱거리가 됐을 것이다. 광고 정부와 여당이 이런 위험을 몰랐을까? 그럴 가능성은 작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정치적 득실을 면밀히 따졌을 것이다. 주가에 부담을 주고, 주주들이 싫어하는 파업을 용인하는 것은 지방선거에 불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국내 개인 주식 투자자는 코로나 이전인 2017년에 561만명에 그쳤다. 코로나를 거치며 급증세를 타더니 2025년 말에는 1442만명으로 늘었다. 주식 투자자가 전체 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갈수록 높아졌다. 2017년 19대 대선 때는 13.2%에 그쳤으나, 2025년 21대 대선 때는 2.5배인 32.5%로 뛰었다. 전체 유권자 세 명 중 한 명이 주식 투자자인 상황이다. ■김용범 발언 소동 최근 인공지능(AI)시대 기업의 초과이윤을 국민에게 구조적으로 환원해야 한다며 국민배당금 방안을 제시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소셜미디어 게시글로 큰 소동이 빚어졌다. 블룸버그가 김 실장의 글이 주가폭락을 불렀다고 보도하고,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이 기업의 초과이윤을 환수하는 공산주의적 발상이라고 덧칠을 하면서, 주식 투자자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 “AI 부문 초과이윤으로 발생하는 초과세수를 국민배당하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얘기인데, 일부 언론이 음해성 가짜뉴스를 유포했다”고 밝혔고, 청와대가 “(김 실장 주장은) 청와대 내부 논의나 검토와 무관한 개인 의견”이라고 자르면서 겨우 일단락됐다. 김용범 실장의 진의가 무엇인지, 그의 발언으로 정말 주가가 폭락했는지, 청와대 해명이 사실인지는 논외로 하자. 다만 이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삼성전자 노조의 성과급 요구를 계기로 반도체 초과이윤 배분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아쉬움을 남긴다. 국민에게 김 실장 발언의 취지를 차분히 설명하고, 초과이윤과 초과세수 배분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건설적인 방향으로 계속 이어나가도록 유도했다면 어땠을까? 대통령과 청와대가 주가하락 책임론 차단에 급급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초과이윤과 초과세수에 관한 사회적 논의의 확산을 막는 결과를 낳았다. 정부가 주가와 주주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눈치보기를 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광고삼성전자 노사 협상이 잠정 합의된 지난 20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지방고용노동청에서 여명구 디에스(DS) 사업담당 피플팀장(왼쪽부터),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최승호 삼성전자 노조 공동투쟁본부 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있다. 이날 삼성전자 노사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의 중재로 다시 임금협상에 나섰다. 공동취재사진 ■금투세 도입 논의 실종 금융투자소득세는 주식·채권·펀드 등 금융투자로 얻은 수익을 모두 함께 계산해 일정 수준을 넘으면 부과하는 세금이다. 문재인 정부 때 도입이 결정됐지만, 윤석열 정부가 유예했고, 2024년 말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아예 폐지했다. 금투세 반대는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원칙에 위배된다. 주요 선진국 중 주식에 과세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할 정도다. 부동산 소득에는 과세하면서 주식에 과세하지 않는 것은 조세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특히 금투세 도입이 당론이었던 민주당에 비판이 쏟아졌다.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는 “원칙과 가치에 따르면 금투세 도입이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증시가 너무 어렵다. 1500만 투자자들의 입장을 고려해 폐지에 동의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코스피는 2500선이었다. 그 후 1년 반 동안 7000~8000선까지 3~4배 급등했다. 하지만 금투세 도입 논의는 여전히 실종 상태다. 정부와 국회가 주식 투자자가 싫어하는 정책은 무조건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주가 급등으로 자산 불평등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전망이다. 금투세는 상위 투자자 1% 정도만 부담할 것으로 예상하는 전형적인 부자세다.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 역시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이다. ■주주 보호 vs 주주공화국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지난 1년간 소수 지배주주의 탐욕과 횡포로부터 다수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기업지배구조 개선 정책을 꾸준히 추진했다. 세 차례의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고, 집중투표제와 (취득 1년 내)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도입했다. 이는 지배주주의 거수기 역할만 해온 이사회의 정상화를 통해 주주·기업가치 제고와 경제 발전에 대한 기대감을 낳았다. 또 이런 노력은 반도체 슈퍼 호황과 맞물려 코스피 지수가 8000선까지 급상승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주주들도 기존의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당당히 배당과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확대를 요구한다. 회사가 응하지 않으면 주총에서 표대결을 마다치 않는다. 주주들의 정당한 권리와 요구는 보호하고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 삼성전자 주주들의 사례에서 보듯, 기업이윤을 모두 자신들의 몫이라고 주장하고, 협력·하청업체 노동자와의 상생, 정부가 세제·금융 등을 통해 반도체산업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해준 것에 따른 사회적 기여를 부정하는 것까지 용납하기는 어렵다.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는 주주, 노동자, 협력업체, 지역사회, 정부 등 다양하다. 주주의 이익 추구는 기업의 지속가능성, 노동자 권리, 사회적 책임 등과 균형을 이룰 때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단기적으로는 주주의 이익과 종업원의 이익이 상충하지만, 10년으로 확장하면 종업원 임금을 올려주는 것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져 주주에게도 이익”이라며 “단기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자본주의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는 ‘재벌공화국’, ‘삼성공화국’의 폐해로 오랫동안 홍역을 치렀다. 재벌(삼성)의 이익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왜곡된 정치·사회·경제 구조 속에서 사회 공동체의 본질적 이익이 훼손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운동이 오랫동안 시대적 화두였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재벌(삼성)의 자리를 ‘주주’가 대신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주식 투자자 1500만명 시대를 맞아 주주들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주주 이익을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시하고, 주주 이익을 해치거나 주가에 부정적인 것을 금기시하는 ‘주주공화국’은 결코 지속가능할 수 없다. 주가가 오르면 행복해하는 국민이 많다. 하지만 주가는 계속 오를 수 없다. 정부가 주가에 긍정적이고 주식 투자자에 유리한 정책만 채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물가불안이 극심한데 증시에 부정적이라고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주가급등으로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이 내부 규정상 보유한도를 훌쩍 넘었다고 한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자금이다. 증시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그냥 방치하다가, 훗날 주가 하락으로 국민연금이 큰 손실을 본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정부와 정치권이 과도한 ‘주주 눈치보기’, ‘주주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지는 것은 국민과 국가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