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언니들, 집을 나가다 l 언니네트워크 지음, 에쎄(2009) 광고홍승은의 소란한 문장들 지영이가 집을 나갔대. 열세살 나에게 친척 언니 지영의 가출은 어마어마한 소식이었다. 만날 때마다 미소로 나와 동생을 대해주던 지영 언니는 네 자매 중 둘째로, 자주색 티가 잘 어울렸다. 어른들은 고등학생인 지영이 집을 나가 엇나가진 않을지 걱정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차 잊는 듯 보였다. 20년이 더 지나서야 지영이 가족과 다시 연락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사이 원 가족을 비롯한 친척 모두 곡절을 거치며 ‘족’으로 이어진 관계망이 느슨하게 해체되었으니, 언니의 등장은 특별히 놀랍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이제 ‘여자애 인생 끝났다’고 어른들의 혓바닥에서 미래가 점쳐지던 지영은 특별할 것 없는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고. ‘지영이가 똑똑했지, 일찍이 집 나와서 자기 삶을 살았으니 말이야.’ 광고 그 집에 대해 내가 주워들은 정보는 여느 집과 비슷하다. 아빠가 거실 한가운데서 담배 피우던 시절, 언니네 아버지는 어머니를 말 그대로 ‘보쌈’해 임신시켰다. 화목한 가족 사진이 담지 못하는 집안의 위계, 통제, 폭력. 딸들에게도 대물림되는 그것은 집안의 흔한 풍경이었고, 참지 못한 둘째가 집을 나간 거다. 경제적, 문화적 토대와 자원이 없었을 청소년과 청년기에 언니가 가족 바깥에서 어떻게 지냈을지 상상하면 ‘나가서 고생했다’거나 ‘나가서 다행’이라는 말 둘 다 쉽게 나오지 않는다. 가족과 사회가 공모한 이 세계에서 운 좋게 그녀가 살아남았고, 오늘도 운 좋게 누군가 살아남고 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5월이 돌아오면 각종 인터뷰 요청이 들어온다.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의 정의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시도들. 어딘지 여전해 보이는 ‘가족’ 이슈이기에 나는 반복되는 질문에 매번 답하려 노력한다. 올해도 한 매체에서 여러 동반자 관계를 인터뷰했다. 인터뷰어와 정상적인 사랑과 관계가 무엇인지, 그 기준으로 인해 소외되는 존재가 누구인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지막으로 꼭 남기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 나는 문득 집 안의, 집 밖의 지영을 떠올린 것 같다. 내가 떠올린 지영은 단지 내 친척 언니만이 아니었다. 기존 관계의 틀이 몸에 맞지 않아 끊임없이 들썩이는 모든 존재의 다른 이름이었다.광고광고 “5월은 알록달록하죠. 어버이날, 어린이날, 스승의 날. 대부분 통념적 관계를 전제로 한 날들이죠. 모부, 아이가 있고, 학교에 다니는. 저는 전제를 작게 축소해서 별거 아니게 만들고 싶어요. 우리 집은 왜 남들처럼 화목하지 않은지 고민하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있겠죠. 혹시라도 각종 기념일 앞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면, 그런 사람이 꽤 많다고, 그건 이 세계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뜻이라고 전하고 싶어요.” 가정의 달을 이름의 달로 바꾸고 싶다. 대명사를 지우고 구체적으로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일에 더 익숙해지고 싶다. 가족만이 유일한 울타리가 아니라면 집 안과 바깥의 구분이 산뜻해질 거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집'이라는 울타리보다, 그 울타리를 넘어 자신의 이름을 발명해 낸 이들의 기록일지 모른다. 봄 햇살 속으로, ‘언니들, 집을 나가다’.광고 홍승은 집필 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