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이종식의 중국 과학굴기 너머 _01 ‘산자이 신화’ 만들기‘전자제품 메카’이자 ‘스타트업 실험실’로 불리는 중국 선전 화창베이의 전자상가에서, 지난 2015년 한 손님이 중국 군소 업체의 애플워치 ‘짝퉁’ 제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화창베이는 짝퉁과 혁신이 공존하는 곳으로 꼽힌다. 선전/로이터 연합뉴스 광고중국의 기술력과 산업 역량을 무시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인들에게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브랜드는 곧 남의 것을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베껴 값싸게 만들어 파는 ‘짝퉁’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다. 여기서 ‘짝퉁’이라는 말에 대응하는 중국어 속어가 바로 ‘산자이’(山寨)다. 아니, 산자이였다고 과거형으로 말해야 할 수도 있겠다. ‘전자제품 1번지’로 불리는 선전 화창베이를 중심으로 산자이 기술자들이 짜놓은 부품 공급망과 공유 설계의 생태계는 어느 시점부터는 모조품 전자기기를 양산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았다. 2010년 창업한 샤오미가 단숨에 글로벌 스마트폰 강자로 떠오르고, 또 다른 스마트폰 제조사 오포(OPPO)와 비보(VIVO), 드론 시장의 강자 다장(DJI)이 뒤를 이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산자이의 토양 위에서였다. 이와 같은 중국의 산업과 과학기술의 굴기에 발맞춰 오늘날 산자이의 주역들은 자신들의 역사와 존재 의의를 긍정적으로 다시 그려내고 있다. 산자이는 창의성 없는 손재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 토대요 저변으로 재해석된다. 모방이 곧 학습이자 창조다. 공산당과 엘리트 공학자들이 전개하는 위로부터의 과학기술·혁신 정책과 맞물려 산자이 정신을 가진 수많은 중하층 기술자들이 아래로부터 혁신을 떠받친다는 그림이 비로소 완성된다. 이제 산자이는 상하이, 항저우, 선전 등지의 젊은 기술 인력들, 아마추어 엔지니어들의 자부심의 원천이다.광고지난 14일에 방영된 한국방송 다큐인사이트 ‘인재전쟁 2: 1부 차이나 스피드’ 방송 장면. 한국방송 유튜브 갈무리 그런데 산자이는 왜 산자이인가? 산악 지역의 요새가 어쩌다 기술과 혁신과 연결되었을까? 1950년대 영국령 홍콩에서 공식 경제 질서 바깥에 있던 소규모 가내수공업 공장들이 현지 방언으로 산자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과학사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어휘가 개혁개방 이후 인근 선전 경제특구로 확산되어 전자제품 제조와 재조립의 맥락에서 쓰이게 되었고, 200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복제품과 관련된 부정적 어감이 결합되어 현재의 용례가 완성되었다. 젊은 산자이 기술자들은 이런 다소 심심한 어원에 만족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들은 ‘수호전’과 마오쩌둥을 들고나왔다. 양산박에 모여 천하의 불의를 바로잡기 위해 투쟁하는 108인의 의적이 산자이의 비주류 반골 정신의 기원으로 소환된다. 국민당 정권과 외세에 맞서 징강산 성채에서 가망 없는 혁명을 시작하여 끝내 성공시킨 마오쩌둥, 생전 여러차례 기득권 타파와 급진적 혁명의 당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수호전’을 인용했던 마오쩌둥이 이 맥락과 긴밀히 결합한다. 21세기 중국의 젊은 산자이 기술자들은 양산박과 마오의 후예로서 미국과 유럽의 과학기술 패권을 분쇄할 영웅으로 스스로를 천명한다.광고광고 한술 더 떠 산자이의 기원을 기원전 5세기로 소급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장인이자 기술자로서 묵자의 생애와 사상을 적극적으로 참고한다. 실제로 묵자가 군사 기술을 직접 개발하는 데 관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의 ‘묵경’(墨經)을 중국 고대 광학, 역학, 기하학의 텍스트로 독해하는 과학사 연구도 존재한다. 묵자와 그의 추종자들은 예악(禮樂)을 강조하는 유가(儒家)를 비판하며 근검절약을 설파하기도 했다. 선전에서 하드웨어 부품 회사를 창업한 판하오(潘昊)는 이런 묵자를 산자이의 기원으로 특정한다. “묵자는 세계에 대해 그가 관찰한 바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실험을 하고 물건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기계적인 물건과 장치를 만드는 데 매우 뛰어났습니다. 기지와 자력갱생을 실천했습니다. 산자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렇게 산자이는 ‘만들어진 전통’이 되어 3천년간 이어져 내려온 중화민족 고유의 기술적 기예이자 저항적 민족주의 정신으로 고양된다. 하지만 눈 밝은 이들은 저들이 새로이 구성한 산자이 정신의 기원을, 중국 과학기술 굴기 서사를 뒷받침하는 자화자찬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 몰역사성이나 허구성을 간파하는 것을 넘어, 이런 ‘역사 다시 쓰기’가 무엇을 감추는지 되물을 필요가 있다.광고 먼저 산자이에 대한 초역사적 신화화는 더 큰 구조적 맥락을 소거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와 과학기술 발전은 상당 부분 개혁개방 이후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참여함으로써 얻어진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원천 기술이나 범서구권 중산층의 취향과 수요가 없었다면 산자이 기술경제도 존재하기 어려웠다. 산자이가 ‘짝퉁’에서 ‘혁신’으로 격상되는 것도 서구의 ‘메이커 운동’(2000년대 미국발 디아이와이(DIY) 엔지니어링 문화)과 벤처 자본의 주목과 인정이 일정 부분 작용했다. 나아가 산자이 신화는 현장의 불안정성(precarity)을 은폐하는 동시에 증폭시킨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스타트업 리스크는 창업자의 시간과 돈을 걸고 성공 시 지분으로 보상받는 자본의 게임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산자이의 불안정성은 그 게임을 떠받치기 위해 동원된 온갖 사람들을 집어삼킨다. 기업가 정신을 요구받는 조립 라인 노동자, 저가·속도 경쟁에 시달리는 화창베이의 영세 상인이 산자이 기술자 옆에서 덩달아 정서적·신체적으로 소진된다. 국가는 ‘대중창업·만중혁신’(大衆創業·萬衆創新)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이런 부담을 애국적 미덕으로 포장할 뿐이다.2019년 12월 중국 선전 화창베이의 한 매장. 가정용 로봇 등이 진열돼 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기술경제의 실체이자 담론으로서 산자이는 실재한다. 그러나 저들의 말마따나 제도권 주류 패러다임에 대한 ‘저항’ 정신, 기술적·물질적 결핍을 창의적으로 우회하기 위해 발휘되는 ‘기지’가 산자이 정신의 요체라면, 국가와 자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길들여진’ 산자이는 어떤 길을 가게 될까? ‘산속 요새’라는 한자 뜻 그대로 계속 산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아니면 산을 내려와 권력이 하사한 의관을 받아 입게 될까? 산자이 혁신론은 주변부·비주류·추격자에게 더 어울리는 접근법이다. 중국이 미국과 유럽을 추월하여 과학기술의 선도자가 되고자 한다면, 새로운 중심이자 주류가 되고자 한다면, 산자이는 여전히 매력적인 전략일까? ‘굴기’ 이후의 중국이 마주한 진정한 시험대는 모방을 혁신으로 변모시키는 능력뿐만 아니라 바깥에 진 빚을 숨기지 않고 자기 안의 약자를 배제하지 않으면서 새로움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종식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학사·석사 학위를, 하버드대학교 과학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사학, 과학기술학(STS), 과학기술정책학을 교차시키며 현대 중국 과학과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