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2025년 무대에 올린 범숙학교의 뮤지컬 ‘기적: 기운 내 적어도 우린 네 편이야’ 공연 모습. 범숙학교 제공광고이병곤 | 건신대학원대 대안교육학과 교수 경남 창원시 북면에 자리한 기숙형 위탁 대안교육기관 ‘범숙학교’. 요즘 작명 감각으로 볼 때 사뭇 낯선 뉘앙스다. 평생 가톨릭 신앙을 지키며 봉사하는 삶을 살아온 고 박범숙(1914~1991) 여사를 기리는 교명이다.박 여사는 일제 강점기에 간호학을 전공했고, 해방 후에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인재였다. 그럼에도 세탁업과 축산농장을 운영하며 전쟁고아 200여명을 돌본다. 지병으로 선종을 앞에 두고 사재 200억원을 기증, 사회복지법인 범숙재단이 설립된다. 범숙학교는 이 재단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 활동 가운데 하나인 교육사업인 셈이다.광고경남도교육청은 2001년에 설립된 범숙학교를 2004년부터 위탁교육기관으로 지정했다. 중고교생 연령대인 범숙학교 여학생들(범수기들)은 30명 안팎을 넘나든다. 그간 범수기들이 ‘길 위에서 겪어낸 인생 이야기’는 눈물 없이 듣기 어렵다. 아이마다 세부 사항은 다를지라도 삶의 궤적은 비슷하다. 가정 해체→가난→부모의 폭력→가출→신체와 정서에 가해지던 폭력 경험→극도의 불안, 자존감 상처.학교를 둘러보다 범수기들이 운영하는 교내 카페 벽에서 한 학생의 시화 작품을 보았다. 제목이 ‘인생’이었다.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 시는 자유롭게 쓸 수 있는데/ 왜 내 인생은 자유롭지 않은 걸까/ 왜 사는 데 쉬운 건 하나도 없는 걸까/ 조금 잘 풀리나 싶으면/ 어김없이 일이 꼬여버린다(후략)”광고광고머리카락은 온갖 색깔로 물들이고, 대화 절반은 욕설로 가득 차고, 어른들과는 불신을 기반으로 관계를 맺는 거친 신입생들. 사랑받고 싶으나 어떻게 사랑하는 마음을 전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아이들.그 틈새에서 25년 동안 범수기들을 지켜온 이승석 교장이 다채로운 교육활동을 소개했다. 두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범수기들이 직접 맡는 뮤지컬 공연이다. 개교 이래 해마다 무대를 마련해 지금까지 26회나 공연을 이어왔다. 범수기들은 공연 준비를 하면서 은연중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분노, 상실감, 다른 이들에 대한 이해와 마주하며 자아를 찾아가는 기회는 갖는다. 2015년에 창원대학교 강당에서 열린 ‘캣츠’ 공연에는 관객 1500여명이 참여했다. 범수기들은 스스로를 작품 속 버림받은 고양이로 표현하여 관람객들의 심금을 울렸다.광고두번째는 ‘아름다운 도전’이다. 10박11일 동안 지리산 길, 또는 섬진강 길을 걷는다거나 낙동강 줄기를 따라 220㎞ 거리를 자전거로 종주하는 국토 순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어떤 유형의 도전이든 혼자 극복하기 어렵다. 서로 지치기 쉬운 여정에서 누군가는 어깨를 내어주고, 퉁퉁 부은 발을 어루만져준다. 도전하지 않으면 사랑을 실천할 계기와 마주할 수 없다.학교 안내 끝자락에 이승석 교장은 낭떠러지 앞에서 행글라이더 점프를 시작하기 전 아이들이 몇마디씩 외치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엄마아…. 엄마를 용서하고 싶습니다아!’ ‘용기를 가진 내가 되고 싶습니닷.’ ‘저를 더 사랑하고 말 거예요오오.’ 맞바람을 이기려 애쓰며 절벽 아래로 뛰어가는 아이들의 비명 같은 외침이 우리들 마음을 내리친다. 범수기들이 겪었을 고단한 삶의 무게, 범숙학교에서 싹틔운 새 의지가 뒤섞인 그네들 속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강의실 불을 켰을 때 마흔명 가까운 참여자들 절반이 눈물을 훌쩍이고 있었다.몇년 전 인가학교로 전환하려는 제안과 논의가 이뤄졌다. 고심 끝에 범숙학교 교사들은 ‘현재와 같은 위탁기관으로 계속 남아 있자’는 결론을 내린다. 위탁학교로 존속할 경우, 범수기들이 모든 교육 과정을 마쳤을 때 원래 학적이 있는 학교 이름으로 졸업장을 받게 된다. 즉, 어려운 청소년 시기를 겪었다는 ‘낙인 효과’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 재정 운영은 어려워도 끝까지 학생 입장을 배려하는 선생님들 마음에 한번 더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교장과 교사 4명으로 돌봄과 교육 모두를 감당하며 버텨온 범숙학교. 부끄럽지만 최근까지 이 학교의 존재를 몰랐다. 매년 8월 초에 우리 학과에서 주관하는 ‘대안학교 현장 탐방’을 기획하다가 동료인 여태전 교수의 제안으로 알게 됐다. 대안학교는 늘 위기 상황에서 운영되는 게 기본값이다. 하지만 선생의 손길이 절실한 아이들을 올바로 돌보지 못하는 그 순간이 곧 대안학교가 맞이하게 될 진정한 위기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