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광고 이대한 | 성균관대 생명과학과 교수광고 한 고등학교에서 특강 요청을 받았다. 아무래도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을 시기일 것 같아 과학 지식보다는 과학자의 삶에 대해 얘기해 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과학자가 되었을까’를 강연 주제로 정하고 찬찬히 과거를 돌아봤다. 외국에 대한 동경으로 잠깐 외교관을 꿈꿨던 시절을 제외하곤 나의 꿈은 줄곧 과학자였다. 왜 그랬을까. 돌이켜보니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나는 공부가 재밌었다.광고광고 어릴 적엔 온갖 벌레들과 밤하늘의 별자리들을 관찰하는 것을 즐겼고, 청소년기에는 과학책과 과학 잡지를 탐독하며 우주와 생명의 신비를 깨우쳐 가는 희열에 빠져 있었다. 대학생이 되어 논문이라는 것을 처음 읽고 온갖 외계어들과 씨름하다 마침내 이해에 이르렀을 때 전율했으며, 대학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면서는 그 좋아하던 게임도 끊었다. 방식은 달랐지만 모두 자연에 대한 공부, 즉 과학의 일환이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덕업일치를 이루었다. 내가 좋아하는 공부가 직업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등학생들 앞에서 “공부가 재미있으면 과학자가 되세요”라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공부가 지긋지긋할 학생들에겐 오히려 과학자의 길이 더 멀게 느껴질 테니 말이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왜 이렇게 재밌는 공부를 재미없다고 느낄까?광고 내가 참여한 과학 콘텐츠 영상엔 ‘학창 시절에는 정말 재미없었던 과학이 지금은 왜 이렇게 재밌을까요?’라는 댓글이 종종 달린다. 그 이유를 추정해 보자면 과학 콘텐츠들이 주로 사람들이 ‘궁금해할’ 주제를 다루기 때문인 것 같았다. 뒤집어 생각하면 학창 시절에 공부가 재미없었던 것은 끊임없이 ‘궁금하지 않은 것’을 배워야 했기 때문이 아닐까. 공부의 재미가 ‘궁금해하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결론에 이르자 새로운 궁금증이 생겨났다. 호기심이라고도 부르는 그 마음의 차이로 인해 같은 공부라도 누군가에겐 재미있는 덕질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고역이 된다.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은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될까. 누구나 한때는 궁금해하는 마음이 넘쳐흐르던 유년기를 보냈을 텐데, 그 마음은 어쩌다 사그라들었을까. 말하자면 나는 궁금해하지 않는 마음들이 궁금해졌다. 궁금해하는 마음은 모름을 앎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다. “이건 뭐야?” “저건 왜 그래?” 아이들은 자신의 모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세상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즐겁게 배운다. 하지만 자라면서 우리는 점점 모름이 좌절이 되거나 수치심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받아쓰기부터 시작해 끝없이 이어지는 평가 속에서 모름은 배움의 원동력이 아니라 틀림의 원인처럼 느껴진다. 모름이 무능의 증거가 되면, 모름을 드러내기는 어려워진다. 그렇게 자신의 모름을 모른 척하기 시작하면, 궁금해하는 마음도 함께 희미해진다. 그래서일까. 한때는 질문을 쏟아냈을 다 큰 학생들이 교실과 강연장에서 좀처럼 질문하지 않는 현장을 자주 마주한다. 궁금한 것이 없어서 일 수도 있지만, 궁금한 것이 부끄럽기 때문은 아닐까. 실제로 질문을 던지는 학생들조차 종종 “멍청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바보 같은 질문이지만”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자신의 모름을 부끄러워하고 비하하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광고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았다. 돌이켜보니 어머니는 내 모름을 부족함이라 탓하시기보다는 지켜 주어야 할 무엇으로 귀하게 여기셨던 것 같다. 공부하라는 말을 하시기보다는, 말없이 내 호기심을 펼칠 수 있는 곳들로 나를 데려가거나 보내주셨다. 게다가 나는 학창 시절 내 안에서 터져 나오는 질문들을 기특하게 여기시고 격려해 주신 은사님들도 만났다. 덕분에 나는 모름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었고, 아이처럼 궁금해하는 마음을 계속 키워갈 수 있었다. 사실 모름은 설렘의 근원이기도 하다. 우리가 연애를 시작할 때 설레는 마음의 상당 부분은 바로 모름에서 나온다. 누군가에게 마음이 간다는 것은, 그 사람을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일이기도 하다. 반대로 상대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을 때, 우리는 설렘을 잃고 권태에 빠진다. 우주와 생명의 신비로움은 심오하고 광활하다. 그 앞에서 나의 모름은 한이 없고, 그렇기에 공부는 끝이 없다. 끝이 없기에 공부는 권태기가 오지 않는 연애와 같다. 아무리 오래 만나도 매일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는 연인처럼, 자연은 여전히 나를 늘 설레게 한다.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나는 아직도 궁금하고,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