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안 비도 있지, 있구 말구 l 영담 스님 지음, 학이사, 2만원 광고유방암 치료를 받을 때 잠시 요양병원에 머문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암 환자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중 제가 가장 좋아했던 시간은 ‘미술치료’ 시간이었습니다. 학창 시절 제게 미술 시간은 제가 손재주가 얼마나 없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국·영·수는 제법 잘했지만, 미술·체육은 아무리 애써도 실력이 늘지 않더군요. 그렇게 미술과는 담을 쌓고 살다가, 그때 그림 그리기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알게 됐지요. 색이 주는 위안은 컸고, 무엇이든 표현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그림이 아니라 그저 나를 위한 그림을 그리고 나면, 못 그렸든 잘 그렸든 작품을 완성한 뒤엔 작은 성취감이 남았습니다. 글만큼이나 그림으로도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최근 출간된 ‘안 비도 있지, 있구말구’(학이사)라는 그림 에세이를 보며 그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청도에서 한지미술관을 운영하는 영담 스님은 지난 4년 동안 청도 마을 어르신 400여명을 만나 인터뷰를 한 뒤, 한지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게 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과 어르신들의 사연을 한데 묶어 책으로 냈습니다. 책에는 70대부터 90대까지, 인생의 말년을 살아가는 어르신 50명의 그림과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씨 없는 감이 특산품인 청도에 사는 어르신들답게 감을 소재로 한 그림과 이야기가 풍성하네요. 여름방학 때 아이들과 미역 감으러 강으로 가서 헤엄치고 놀던 시절을 그리워한 74살 조영옥 할머니, 동그라미만 계속 그려서 ‘왜 동그라미만 그리냐’는 질문에 “응. 둥글어야제. 서로서로 같이 살아야 되니께. 다 한 식구니께”라고 말한 94살 이계분 할머니…. 어른들의 그림과 사연을 읽으면서, 갑자기 붓을 들고 싶어집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을 그림으로 그려본다면?’ ‘마음속 잊지 못한 추억을 그림으로 남겨본다면?’ 영담 스님이 어르신들에게 던진 질문을 나 자신에게도 던져보면서, 제 마음속에 있는 말을 꺼내 보고 싶어집니다. 양선아 텍스트팀장 anmad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