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정원에 묻은 것을 파내야 한다 l 사이토 미에 지음,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2025) 광고홍승은의 소란한 문장들 -무슨 글 쓰세요? “논픽션(비문학)을 써요.” 광고 -거짓이 아니라 사실을 쓰는 건가요? 상대의 고개가 갸우뚱해지고, 나도 덩달아 알쏭달쏭해진다. 다르게 답하면 나았을까? 집필 노동 10년 차. 여전히 내가 어떤 글을 쓰는지 소개하는 일은 어렵다. 수업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듣는다. “우리가 쓰는 건 비문학이니까 사실을 써야 하잖아요. 어떻게 사실만을 쓸 수 있죠? 에세이는 뭘까요?” 광고광고 그럴 때마다 되묻는다. 문학과 비문학의 경계가 뭔지, 사실과 진실은 같은 뜻인지, 장르의 구분은 어떤 의미를 가지며, 그토록 뚜렷하게 구분하는 게 맞는지 질문한다. 등단, 형식, 교육 과정과 자격은 뚜렷이 구분돼 보이지만, 막상 글을 읽을 때 나는 문학/비문학, 사실/허구, 등단/비등단, 전문/비전문 등을 나누며 읽진 않는다. 글에 담긴 진실, 반짝이는 면을 밑줄 그으며 하나씩 발견해 나갈 뿐이다.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며, 다양한 얼굴만큼 여러 사연과 형식의 글을 만나 왔다. 거리 두기에 실패한 글도 자주 만났다. 단어 하나하나에 울음이 밴 글. 분노로 타자기를 부술 듯 써 내려간 글. 많은 작법서에서 흔히 말하는 ‘글쓴이가 사건과 거리 둬야 읽는 이가 편하다’는 법칙을 끝내 따르지 못한 글. 광고 하지만 거리 감각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뜨거운 에너지를 느낄 때면, 그런 기준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진다. 사실과 허구에 대해 누군가 물었을 때는 한 동료가 말했다. “우리는 구라 99%에 사실 1%를 섞어 결국 진실을 쓰려는 거 아닌가요?” 사이토 미에의 ‘정원에 묻은 것을 파내야 한다’는 한 사람이 자신의 고통을 써내는 여러 버전의 글을 담은 책이다. 1부는 거리를 두고 쓴 글, 2부는 자신에 접촉해 내면을 파고든 글이다. 이 책은 에세이인가, 심리서인가, 소설인가, 시인가.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장르는 소용없어진다. 전자와 후자 모두 한 사람에게서 뻗어 나온 이야기일 뿐이다. 책은 자살 시도 뒤 그녀가 정신병동에 입원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저자는 네살 무렵부터 타인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껴 왔다. 청소년기에 발병한 백혈병, 섭식장애, 자폐 스펙트럼, 주의력결핍장애(ADHD), 적응장애, 복잡성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으며 언제나 자신이 잘못된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자신을 축소해 타인에게 맞추는 일이 생존과 소통의 유일한 방식이었다고 한다. “내 언어는 이곳에서 전혀 통하지 않아. 상대방의 언어로, 상대방의 문법대로, 상대방의 어휘 범주 내에서 이야기해야 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책의 편집자가 결이 다른 두 이야기 모두를 쓰도록 적극적으로 독려했다는 부분에서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지금 이 글자를 키보드로 입력하면서 나는 울고 있다. 조용히 흐느껴 운다. 나는 울고 있다. 내가 지금 운다는 사실을 이 세계에 누구도 알지 못한다.” 광고 2부에 실린 문장을 읽고 나는 연필로 답장을 남겼다. ‘늦었지만 지금 제가 알게 되었어요.’ 마침내 작가는 오랜 시간 골몰했던, ‘죽고 싶다’는 마음에서 도망치기 위해 이런 문장을 써냈다. “나는 정원에 묻은 사체를 파내야 한다. 일찍이 스스로 죽인 내 마음을 파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 문장이 내가 오래 찾아왔던 질문에 대한 답인 것 같아 가만히 밑줄을 그었다. 홍승은 집필 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