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재수생들이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평가원 모의고사 시행일인 지난해 6월4일 서울 양천구 종로학원 고사실에서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광고 이병곤 | 건신대학원대 대안교육학과 교수광고 1984년 2월. 서울역 근처 중림동. 가로 두뼘 크기의 책상과 접이식 간이 의자 비슷한 나무 걸상. 나의 대학입시 재수 생활은 ㅈ종합학원 ‘문과3반’ 그 자리에서 시작됐다. 그 학원은 옛 극장 건물을 개축한 것이라 들었다. 미음(ㅁ)자 교실에 유일하게 외부로 트여 있던 대형 창문에는 긴 칠판이 걸려 있었다. 그 창 너머 바로 앞은 버스 정류장이었다. 연이은 엔진 소리, 온종일 스며드는 매캐한 배기가스 냄새는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광고광고 120명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교실엔 자연광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형광등을 켜줬다. 열아홉살 청춘은 그 빛 아래 기력 빠진 수탉처럼 갇혀 하루하루 암기력 기계로 변모해갔다. ㅈ학원에 등록했던 재수생 수천명은 꽃샘바람 불던 그 시기, 대입 실패의 분루를 삼키면서 거의 예외 없이 1년 뒤 ‘서울대 합격’을 꿈꿨을 거다. 수업은 그해 11월23일에 치러질 ‘대입학력고사’ 일정에 맞춰 일사천리로 이어졌다. 음악, 미술, 체육, 학급회의, 소풍, 교련, 체육대회, 가을 축제, 학교 운동부 중요 경기 응원, 대통령 각하 외교 행사를 위한 태극기 흔들기 거리 동원 따위의 ‘하찮은’ 과목 수강, 또는 ‘귀찮은’ 행사 참여 의무가 쏙 빠지니까 입시 대비에 훨씬 효율적인 듯했다.광고 지리 교과를 명석하게 가르치던 담임교사 강의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다만 그분은 매달 학원에서 치르는 모의고사 성적표를 ‘등수대로’ 학생을 불러 나눠 주는 ‘월례 의식’을 거행했다. 이름 120개를 부르는 소리가 버스 엔진 소리와 뒤섞여 울려 퍼지던 침묵 속 교실 공기는 징그럽게 비현실적이었다. 무리 가운데 (나를 포함하여) 왜 단 한명도 “선생님, 그렇게 성적대로 호명하시는 건 인격 모독인 것 같습니다”라고 항명하지 않았을까? 철쭉꽃이 지고, 동네 담벼락 여기저기에 능소화가 한창 피어날 무렵, 나는 직감했다. ‘아, 올해 학력고사도 크게 성공하기는 어렵겠구나.’ 수학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합반 학원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더 틀리지 않도록 효율적으로 관리하거나 연습시켜 주는 곳이었다. 학생 개개인이 몰라서 헤매는 부분까지 잘 이해하도록 돕는 교육기관이 아니었다. 수업 마치고 반 친구들이 ㅇ당구장에서 한판에 천원 내기 게임을 할 때 곁에서 구경하며 지냈다. 저녁 먹을 때는 중림시장 근처 중국음식점에서 예닐곱명이 어울렸다. 잠깐의 휴식 시간, 자조 섞인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렸다. 그해엔 어떤 일이 있어도 교통사고 당하지 말자고 서로 다짐도 했다. 신문 기사에 ‘부상자 이병곤(19세·재수생)’ 이렇게 적혀 보도되면 ‘쪽팔리지 않겠냐’며 맥 빠진 익살을 떨었다. ‘재수생’을 똑 떨어지게 표현할 수 있는 영어 단어는 없다. 혹시나 싶어 인공지능(AI)에 물어보니 ‘시험 다시 보는 학생’(Exam Repeater)이라는 표현도 가능하다 한다. 영어권 나라에서 10년 넘게 살아봤지만 처음 마주하는 낯선 표현이다. 유럽 다른 나라에는 ‘재수강자’ ‘유급생’ 같은 단어가 있지만 우리처럼 한해 온전히 대입 시험에만 매진하는 재수생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광고 ‘성공하지 못할 재수’를 직감한 6월 무렵. 저녁 시간대에 형광등만 커져 있는 문과3반에 남아 공부하는 날이 줄어들었다. 근처 서소문공원을 배회하거나 배짱 맞는 친구를 만난 날에는 소주 한병을 나눠 마셨다. ‘신동아’ ‘월간조선’에 실리는, 원고지 100장 안팎의 정치 관련 심층취재 기사들에 눈길을 줬다. 저녁마다 소설책도 가까이했다. 종로, 광화문, 서울역 쪽에서 바람 타고 날아오는 고약한 최루탄 냄새. 그것은 내가 모르는 세상 속 깊은 갈등이 시한폭탄처럼 존재한다는 암시 같았다. 시험과 연관되지 않은 천지 만물이 호기심과 흥미의 대상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2026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재수생 지원자는 18만2천여명에 이를 것이라 한다. 전체 응시자의 33%를 차지한다. 40년이 지난 지금, 재수생의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나는 전혀 모른다. 동시에 안다. 있는데, 없는 듯 지내야 하는 존재의 설움을. 또한 미안하다. 다음 세대 젊은이들에게 예나 다름없는 입시 지옥을 그대로 물려줬으니. 후배 재수생들이여, 그래도 힘을 내시라. 의미 없는 경쟁 체제 와해를 외치며 꿈틀대온 ‘엔(n)수생 노인’ 한명쯤 여기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위로 될지 모르지만 말이다.
n수생 노인이 회고하는 재수생의 삶 [세상읽기]
이병곤 | 건신대학원대 대안교육학과 교수 1984년 2월. 서울역 근처 중림동. 가로 두뼘 크기의 책상과 접이식 간이 의자 비슷한 나무 걸상. 나의 대학입시 재수 생활은 ㅈ종합학원 ‘문과3반’ 그 자리에서 시작됐다. 그 학원은 옛 극장 건물을 개축한 것이라 들었다. 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