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광고이상헌 | 국제노동기구(ILO) 수석 이코노미스트 얼마 전 중국 신장 지역을 다녀왔다. 한때 배제와 차별이 폭력적 상황을 만들어내던 곳에서 힘겹게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런 ‘자신감’ 덕분인지 나는 여러곳을 비교적 편하게 다녀볼 수 있었다. 최근에 만들었다는 자유무역특구도 방문했다. 황량했던 사막에 세워진 어마어마한 규모에도 놀랐지만, 투자 유치를 위해 기업에 어떤 혜택을 주고 어떤 규제를 덜어주는지를 설명하는 관계자의 열정도 인상적이었다.하지만 늘 까칠한 나의 관심은 따로 있었다. 이 ‘특별한’ 산업지구에서는 노동법도 ‘특별히’ 적용되는가. 대답은 놀랄 만큼 빨랐다. “아니다.” 통역이 끝나기가 무섭게 돌아온 답이었다. 투자와 기업 활동을 위해 특별한 제도를 둘 수는 있지만 노동법은 다른 문제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중국의 옛적 경험을 빌려, 게다가 여기는 중국에서도 ‘낙후 지역’인 신장이 아닌가 싶어, 특구라면 노동시간이나 고용 규제쯤은 당연히 느슨할 듯해서 물었던 것인데, 질문한 내가 멋쩍어졌다.광고그리고 한국에도 다녀왔다. 특구 얘기가 한창이었다. 그냥 특구가 아니라 무려 ‘메가특구’다. 한국의 미래 대도약을 야심 차게 준비하는 것이니 당연히 ‘메가’급이어야 하고, 이를 뒷받침하려는 ‘특별한’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특별법’을 검토하는 것도 자연스럽다.그런데 여기에 주 52시간제의 예외를 두자는 주장이 더해졌다. 첨단산업 경쟁력을 키우려면 노동시간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야 한단다. 특히 반도체나 인공지능(AI) 연구개발은 특정 시기에 업무가 집중되고 프로젝트 단위로 돌아가기 때문에 매주 동일한 근로시간 상한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한다.광고광고국가 경쟁력이 문제의 출발점이다 보니 중국 사례도 거론됐다. 어느 중국 아이티(IT) 기업에서 젊은 직원들이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9시에 퇴근하고 주 6일 일하는 이른바 ‘996’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반발해, 결국 더 오래 일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다. 이런 에피소드는 한국에 와서 “일하겠다는 젊은 사람들의 의지를 제도가 강제로 막아서는 안 된다”는 꽤 정서적인 주장으로까지 번졌다.꽤 인상적인 얘기 같지만 인상 비평이 될 위험도 크다. 우선 그 기업이 어디인지,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게다가 이런 유의 에피소드는 늘 초과공급이다. 중국 정부는 이미 ‘996’을 불법적인 관행으로 문제 삼아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광고그런데 이런 파편적인 이야기가 뜻하지 않게 논란의 핵심을 짚어내기도 한다. 개인이나 개별 기업이 원하는 만큼 일하고 일을 시켜도 괜찮다면 애당초 노동시간 규제는 필요하지 않다. 개별적 선호나 순간의 선택을 넘어서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사회가 규제하는 것이다.가령, 996이 어떤 시점에는 기업에 도움이 되고 노동자 스스로 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이 누적되면 건강과 안전의 비용은 노동자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사회가 함께 떠안게 된다. 장시간 노동이 장기적으로 생산적이지도 않다. 당장은 기업에 이익처럼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노동시간 규제는 개인의 선호를 묻는 제도가 아니라, 개별적이고 단기적인 선택이 전체적이고 장기적인 비용으로 돌아오는 것을 막기 위한 사회적 규칙이다.그렇다면 메가특구의 예외는 이런 사회적 규칙을 흔들 만큼 충분한 이유가 있는가.먼저 법적으로 꼭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 현행법에도 탄력적 근로시간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특별연장근로 등 업무가 특정 시기에 몰리는 경우를 다룰 수 있는 장치가 이미 있다. 특히 연구개발 업무에는 일반 업무보다 더 넓은 선택근로의 여지도 있다.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일해야 하는 연구개발의 특성을 현행법이 전혀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광고그렇다면 새로운 예외를 만들기 전에 구체적으로 물어야 한다. 현행 제도의 어느 조항 때문에 실제 어떤 연구개발이 불가능했는가. 기존 제도를 활용해서는 왜 해결할 수 없는가. 제도가 번거롭거나 행정절차가 느리다면 그것을 고치는 방법도 있다. 법의 기본선을 걷어내기보다, 이미 있는 유연성을 더 신속하고 제대로 작동시키는 방법부터 찾는 것이 우선이다.경제적 이유를 알기는 더 어렵다. 주 52시간 예외를 허용하면 투자가 얼마나 늘어나는가. 어떤 기업이 이 예외가 없어서 반도체 공장을 짓지 않는가. 어떤 연구소가 연구자들에게 몇시간을 더 일하게 할 수 없어서 한국을 떠나는가. 전력과 용수, 부지와 교통, 대학과 연구기관, 숙련된 인재, 협력업체와 금융지원에 비해 노동시간 규제가 투자 결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되는가. 여기저기 물어보아도 시원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개별 기업의 편의와 국가의 산업 경쟁력은 결코 같지 않다. 사회적 기준에 예외를 만들려면, 적어도 그 예외가 가져올 경제 전체의 편익이 분명해야 한다.외국 특구 사례를 보면 의문은 더 커진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자료에 성공 사례로 등장하는 상하이 자유무역시험구는 특구라는 이유만으로 노동법의 예외를 도입하거나 새로운 면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노동법에 마련된 제도를 행정적으로 적극 활용한다. 다른 외국 특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제와 금융, 인프라와 빠른 인허가, 연구개발 지원, 대학과 기업의 집적, 우수 인재 유치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노동시간 상한을 풀어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눈에 띄지 않는다.사실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다. 첨단산업의 경쟁력은 누가 더 오래 책상 앞에 앉아 있는가보다 기술과 숙련, 집중력과 협업, 좋은 연구 생태계와 조직의 질에 달려 있다. 게다가 지금 우리가 꿈꾸는 것은 노동자의 임금 한푼 아껴 수출에 매진하던 그 옛날의 ‘수출자유지역’이 아니고, 무려 미래의 첨단산업 아닌가.요즘 ‘대체불가 대한민국’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제는 남을 따라가기보다 기술과 산업의 새로운 길을 만들겠다는 자신감이 담긴 말일 것이다. 그런데 유독 노동 얘기만 나오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중국은 더 오래 일한다, 이러다 뒤처진다, 경쟁하려면 더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오래된 불안이 되살아난다. 산업과 기술에서는 새로움을 말하면서, 노동에서는 낡은 길로 되돌아가는 셈이다.
대체불가 대한민국의 ‘낡은 노동관’ [이상헌의 바깥길]
이상헌 | 국제노동기구(ILO) 수석 이코노미스트 얼마 전 중국 신장 지역을 다녀왔다. 한때 배제와 차별이 폭력적 상황을 만들어내던 곳에서 힘겹게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런 ‘자신감’ 덕분인지 나는 여러곳을 비교적 편하게 다녀볼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