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시산문집 ‘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를 낸 박준 시인. 2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 현대시사 100년을 살펴보니, 선배가 없었던 암흑기의 1세대 시인들이 시에 관한 거의 모든 일을 해 놓았고 그 위에서 우리가 탑을 쌓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광고‘시단의 아이돌’ 박준 시인이 한국 현대시사와 만났다. 김명순(1896~1951)에서 김남주(1995~)에 이르는 한국 현대시 100년의 시인들 가운데 66명의 주요 작품을 고르고 그에 어울리는 자신의 산문을 덧붙여 책으로 내놓은 것. ‘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기존의 시 해설서들과는 달라서, 박준의 산문은 시에 종속되지 않고 느슨하게 연결된 채 자신만의 목소리와 빛깔을 유지한다. 가령 책 맨 앞에 놓인 김명순의 시 ‘유언’을 보라. “조선아 내가 너를 영결할 때/ (…)/ 죽은 시체에게라도 더 학대해다오/ (…)/ 이다음에 나 같은 사람이 나더라도/ 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해보아라/ 그러면 서로 미워하는 우리는 영영 작별된다/ 이 사나운 곳아 사나운 곳아.” 피를 토하듯 원망과 분노를 뿜어내는 시인의 절규는 이 선구적 여성 문인을 괴롭힌 폭력과 모욕의 강도를 짐작하게 한다. 그에 비해 이 시에 붙인 박준의 산문은 “생의 물가에서 오래도록 혼자 놀았”다든가 그 모습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위태로운 광경에 깜짝 놀라게” 된다는 식으로, 사뭇 관조적 거리감을 유지한다. 청춘의 유한성과 사랑의 소멸을 경계하는 김억의 시 ‘사랑의 때’에 붙인 산문은 박준 특유의 감성으로 촉촉하다.광고 “사랑이 이렇게 끝나간다. (…) 빛으로 거대했던 사랑이 점점 스러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이게 정말 끝일까 하는 마음으로 두리번거린다. 앉은자리가 불편하지 않으니 얼마간 더 있을 요량이다.” 사랑을 노래하지 않는 시인이 있을까마는 박준은 가히 사랑의 시인이라 할 정도로 줄기차게 사랑을 시로 읊었다. 그런 그가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 사랑이라 말하는 황지우 시 ‘늙어가는 아내에게’에 붙인 산문은 원시에 못지않게 쓸쓸하다. 이 글에 따르면 한 시절 박준이 사랑했던 사람은 그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이 시를 소리내어 읽어 주었던 모양인데,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지나 박준은 그리운 마음에 같은 시를 소리내어 읽어 보았다가 이내 후회하고 만다. “함께 늙어가지 못할 먼 시간들이 떠올라 쓸쓸해졌”기 때문이다.광고광고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오./ 누나 일 가는 광산 길에 피었다오.// (…)// 하얀 찔레꽃 따 먹었다오./ 누나 누나 기다리며 따 먹었다오.”(이원수, ‘찔레꽃’) 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 l 박준 지음, 난다, 2만2000원 찔레꽃과 누나를 등치시켜 노래한 이 시에서 박준은 두살 터울 누나에 얽힌 추억을 떠올린다. “언제나 내게 새로운 것을 일러주던 존재였”고 “나와 달리 마음이 밝았고 성격이 쾌활했”던 누나가 초등학교 신입생이던 어느 날 그에게 손바닥을 펴 붉은 알사탕을 선물로 준다. 하굣길에 친구가 준 것을 먹는 척 입에 넣었다가 손에 뱉어 쥐고는 가져온 것. 그때 누나 손바닥에 붉은 신호등처럼 들었던 사탕 물은 이원수 시의 하얀 찔레꽃과 다르지 않았을 게다. 책에는 박준의 어머니와 아버지에 관한 언급도 나오는데, 그 가운데에는 트럭 운전사였던 아버지가 신호에 걸린 트럭 안에서 울고 있던 모습을 목격한 이야기도 있다.광고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김종삼, ‘북 치는 소년’) 예술과 아름다움의 본질을 노래한 이 시에 붙인 박준의 산문 제목이 바로 ‘시, 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이다. 그는 고백한다. “매일 시를 읽지 않는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럴 수 없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화가 날 때에는 그 강렬한 감정들에 충실하느라 시를 읽지 못한다. “시를 읽는 순간은 문득 좋은 생각 하나가 떠오를 때와 닮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운 채 “진실한 마음 하나가 까치발을 들고 서 있어야 한다.” 이상 시 ‘역단―아침’에 붙인 산문 ‘읽고 쓰는 일에 대한 변론’이나 “자신의 몸을 가다듬고 생활 습관을 벼리는 일”을 김수영에게 배우려는 태도, 그리고 2026년 신춘문예 당선자 김남주의 시를 소개하며 새로운 시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어느덧 시단의 중추를 이루게 된 박준의 문학사적 감각을 만날 수 있다. 현대시 100년의 주요 시인들 작품을 고르고 그에 어울리는 산문을 덧붙여 시산문집 ‘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를 낸 박준 시인. 2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재나, 어쩌면 미래에도 어떤 생산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시와 시인이어야 할 것이라는 기준으로 작품을 골랐다”고 말했다.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박준 시인은 2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몇년 전 출판사 상근 편집 일을 그만두고 지금은 주로 강연을 다니고 있다. 작년에만도 200회 남짓 강연을 했고,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67쇄를 찍을 정도로 독자를 많이 만났으니 때로는 내가 ‘시의 홍보대사’가 된 듯한 기분도 느낀다”며 “시라는 숲에는 제 시와는 수형이 다른 좋은 시들이 더 많으니 독자들이 부디 그 숲으로 들어오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를 고르고 산문을 붙였다 ”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시단의 아이돌’ 박준 시인, 한국 현대시의 숲을 거닐다 [.txt]
‘시단의 아이돌’ 박준 시인이 한국 현대시사와 만났다. 김명순(1896~1951)에서 김남주(1995~)에 이르는 한국 현대시 100년의 시인들 가운데 66명의 주요 작품을 고르고 그에 어울리는 자신의 산문을 덧붙여 책으로 내놓은 것. ‘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