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 인공지능 챗지피티에 “가장 아래의 물질로서의 인간, 가장 위의 정신적 존재로서의 인간, 그 사이에 존재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이라는 3층을 포괄적으로 사유하는 인간 존재론을 이미지로 만들어줘”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 모든 것을 물화하는 ‘속류 유물론’이 지배하는 오늘날에 한국 철학이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하다.광고지난 한 세기에 걸쳐 한국에서는 어떤 철학적 사상들이 펼쳐졌을까. 현대 한국 철학의 100년을 찬찬히 음미해보고자 한다. 이런 음미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철학적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남겨진 철학적 자산이 어떤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20세기에 이루어진 한국 철학의 흐름을 뒤돌아보면, 그 초기에는 민족종교의 성격을 띤 철학들이 큰 갈래를 이루었음이 확인된다. 동학을 필두로 해서 대종교를 비롯한 여러 민족종교가 발흥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철학보다는 오히려 종교에 더 가깝지만, 이 사상들은 현대 한국 철학의 중요한 한 원천을 이루었다. 특히 이돈화의 ‘신인철학’은 이러한 사상사적 전개의 원점을 형성한다.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불교가 핵심적인 종교적 흐름을 이루었고, 근대에 접어들면서 기독교가 또 하나의 큰 흐름을 이루게 된다. 이와 더불어 이루어진 또 하나의 흐름이 곧 구한말의 민족적 위기에 처해 생겨난 여러 민족종교들이다. 철학의 맥락에서 본다면, 불교는 붓다의 철학, 더 넓게는 인도 철학에서 연원하며, 기독교는 지중해 세계의 고중세 철학에 기반한 종교이다. 그렇다면 민족종교들의 철학적 기반은 무엇일까? 이 종교들은 불교나 기독교처럼 어떤 단일한 철학적 전통을 기반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다. 흥미롭게도 한국에서 민족종교들이 형성되는 과정은 다름 아니라 한국에서 피어난 거의 모든 사상들―토착 사상, 유·불·도의 철학과 성리학, 그리고 ‘서학’까지―이 종합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물론 이는 민족종교들 전반의 경향을 말한 것이며, 개별 종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종합의 방식은 다양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현대 한국 사상사의 가장 흥미로운 점들 중 하나는 바로 어떤 ‘종교의 창시’가 곧 동시에 기존 사상들의 ‘철학적 종합’의 과정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현대의 민족종교의 역사가 또한 현대 철학사의 일부이기도 한 이유이다.민족종교들의 사상적 내용은 매우 다채롭지만, 특히 동학을 원형으로 하는 그 철학적 핵심을 우리는 ‘정신형이상학’(spiritual metaphysics)이라고 부를 수 있다. 정신형이상학은 인간의 정신에 형이상학적 위상을 부여하는 철학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정신은 흔히 ‘하늘’로서 표상되는 초월적 차원과 흔히 ‘땅’으로 표상되는 현실 차원을 잇는 결절점의 역할을 한다. 현대 한국(과 중국)의 정신형이상학은 대체적으로 성리학의 전통 위에서 스피노자, 헤겔, 베르그송 등의 철학을 매개해 현대적 형이상학을 구축했다.광고이 정신형이상학의 전통은 오늘날의 맥락에서 각별한 의미를 띤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정신형이상학과 완벽히 대조되는 흐름, 즉 속류 유물론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한 세기 전 현대 철학의 문을 연 선각자들은 정신의 형이상학을 전개했지만, 오늘날 한국 나아가 세계를 지배하는 현실은 모든 것을 철저하게 물화(物化)하고 조작하고 상품화하는 속류 유물론의 문명인 것이다. 오늘날 한국 철학의 한 핵심적인 과제는 바로 이 속류 유물론의 시대에 선각자들의 정신형이상학을 어떻게 현대적인 형태로서 이어갈까에 있다고 하겠다.이러한 이어감이 철학적으로 유의미한 이어감일 수 있으려면 현대 심리철학과의 소통과 융합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현대 심리과학은 생명과학, 정보과학 등 제 과학과의 관련하에서 유물론의 흐름을 만들어냈고, 심리철학은 이런 흐름과 대결하면서 탈-유물론적 사유들을 다수 배태해냈다. 이런 현대 심리철학의 성과들을 정신형이상학과 어떻게 연관 지을 것인가가 논구되어야 한다.광고광고그러나 이 양자의 연계는 그 사이에 또 하나의 핵심적인 매개고리를 빠뜨릴 경우 불완전한 것으로 그칠 것이다. 이 매개고리는 곧 실존주의→구조주의→후기 구조주의로 이어진 현대의 주체론(주체의 이론)의 흐름이다. 이 흐름은 주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성찰을 집요하게 전개해왔다.인간은 말하자면 3층 집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 맨 아래에는 물질(의 부대 효과)로서 이해되는 인간이 있고, 가장 위층에는 정신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있고, 가운데 층에는 주체로서 활동하는 인간이 있다. 이 세 층을 포괄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인간 존재론을 구축하는 것이 불교, 성리학, 동학을 이어서 ‘사람의 마음’을 사유하는 길일 것이다. 이 길은 곧 각종 형태의 속류 유물론이 판을 치고 객체성의 거대한 흐름이 주체성을 압살해가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 대한 철학적 응전이 될 것이다.광고이런 문제의식은 우리를 정치의 차원으로 데려가며, 이는 한국 철학의 또 하나의 길을 모색하는 것과 연관된다. 20세기 내내 한국 사회를 뜨겁게 만들었던 것은 정치에 대한 관심사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20세기 중엽은 특히 정치가 한국인들을 양분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집중적인 관심거리가 되었다. 이는 한국인들이 첫째 일제강점기를 극복하고 해방 이후라는 삶의 새로운 출발점에 서야 했고, 둘째 그리고 이 출발점에서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가 상극을 이룬 냉전 시대, 이념의 시대를 살아야 했으며, 셋째 게다가 군사정권이라는 질곡을 뚫고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이런 상황에서 특히 20세기 중엽에 숱한 정치적 실천들과 담론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많은 정치적 담론들 중 ‘정치철학’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 시대에 생산된 거의 대부분의 텍스트들은 외국의 사상들을 번역하고 소개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일관된 정치적 입장에 서서 철학적인 성격의 사유를 전개한 인물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는 그중 사회주의자들인 박치우와 신남철, 자유주의자이자 민족주의자인 박종홍, 아나키스트인 하기락을 논했다.이들 중 한국(남한) 사회의 현실을 지배했던 것은 박종홍의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였다. 남한에서 자본주의와 결부되어 전개된 자유주의는 전후 파시즘의 일반적 형태인 개발독재 체제로써 전개되었고, 한국 사회를 산업화된 사회로 변모시켰다. 박종홍의 ‘창조의 논리’는 박정희에 의해 주도된 이 근대화를 철학적으로 뒷받침하면서 ‘개발의 철학’이라는 얼굴을 띠게 된다. 이 개발의 시대는 한편으로 한국 사회를 가난에서 구해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두가지의 착취 즉 자연의 착취와 노동(자들)의 착취에 바탕을 둔 것이기도 했다. 자연의 착취는 국토를 황폐화했고, 노동자들의 착취는 빈부 격차를 심화시켰다. 개발의 논리는 한국 사회에 근대화의 빛과 그늘을 동시에 가져왔다.박종홍이 전후 파시즘에 사상적 기초를 제공하고자 했다면, 박치우, 신남철 같은 공산주의자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전세계에 미만했던 파시즘 비판에 노력을 경주했다. 특히 박치우의 파시즘 비판은 지금 읽어도 정치하게 느껴질 정도로 빼어난 것이었다. 이들은 파시즘을 최악의 흐름으로서 비판했지만,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다. 이들에게 자유주의는 차별을 덮어버리려는 형식논리에 불과한 것이며, 계급투쟁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외면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착취를 정당화하는 사상일 뿐이다. 이들은 이런 비판의 토대 위에서 그들 자신의 공산주의, ‘근로 인민 민주주의’를 개진했다. 박종홍이 제도 권력을 등에 업은 이데올로그로서 활동했다면, 박치우와 신남철은 제도 권력에서 탈주하거나 그 바깥으로 내쳐짐으로써 “이름 없는 혁명가”의 삶을 살 수 있었다.광고자본과 국가로부터의 동시적 탈주를 꿈꾸는 아나키즘은 오늘날의 정치적 사유에서 큰 의의를 띤다. 지난 세기 한국의 정치적 사유는 집단 지향이 강했거니와, 우리 시대는 개인들이 이런 집단 지향, 각종 형태의 전체주의적 구조들에서 벗어나려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사회주의가 ‘민주적 사회주의’로 방향을 잡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아나키즘의 역사가 잘 보여주듯이, 이런 아나키즘의 경향은 사회주의적 가치를 동반할 때만 개화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요청되는 것은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인 것이다.자본주의의 바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오늘날 중요한 것은 어떻게 단순한 바깥이 아닌 안의 바깥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안의 바깥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곧 타자-되기의 윤리학과 정치철학을 구축해나감을 뜻한다. 박종홍 철학의 문제점에 대한 보다 상세한 검토, 그리고 박치우, 신남철의 사회주의와 하기락의 아나키즘 사이의 소통을 통한 사회주의적 아나키즘, 아나키즘적 사회주의의 사상적 실험이 요청된다. 그리고 이런 토대 위에서 속류 유물론과 그것을 떠받치는 각종 정치적-경제적 장치들을 비판할 수 있는 개념들을 창조해내야 할 것이다.이러한 창조가 단순한 서구 철학의 추종이 아니라 진정 ‘현대 한국 철학’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되려면, 가장 근본적인 존재론적-인식론적 층위에서 사유의 창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한국 철학의 또 하나의 길이라 할 수 있다.이러한 흐름들 중 특히 의미 있는 논의의 장을 이룬 한 흐름은 불교철학을 현대적인 형태로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려 한 흐름이다. 이러한 사유를 범례적으로 보여준 것은 청송 고형곤의 작업이다. 청송은 한국 불교의 고전에서 한 구절을 끄집어내 그것을 100페이지가 넘는 치밀한 논변으로써 풀어내는 놀라운 사유의 경지를 펼쳤다. 청송의 성찰을 통해서 선불교의 가르침과 하이데거 존재론이 만나는 빛나는 사유의 장이 마련된 것이다. 심원 김형효는 청송과 정확히 반대로 하이데거의 철학을 유식철학과 화엄철학으로써 읽어내는 작업을 시도했다. 불교철학과 하이데거 철학을 서로 반대 방향으로 해명해간 고형곤과 김형효를 비교하는 작업, 그리고 이들을 이어 불교철학의 새로운 경지를 창조해나가는 작업이 21세기 한국 철학의 한 핵심 갈래가 될 수 있을 것이다.또 하나, 보다 근본적이고 일반적인 의의를 띤 흐름은 박홍규와 김상일의 존재론(/형이상학)이다. 다른 비-서구 지역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현대 한국 철학은 서구의 영향을 떠나서는 생각하기 힘들다. 그러나 많은 경우 서구 철학의 연구와 이해는 파편적인 성격을 면하지 못했다. 대개의 경우 서구 철학에서 어느 특정한 언어권에 국한된 연구, 말하자면 독일 철학, 프랑스 철학, 영미 철학 등의 한국 지부와 같은 성격을 띤 연구들이었다. 서구의 사유 전체를 굽어보면서 그 의의를 읽어내려 한 인물은 극히 드물었다. 소은 박홍규는 그러한 경지에서 서구 존재론사 전체를 읽어내려 한 탁월한 경우를 보여준다.박홍규는 서구 철학에서 아페이론이라는 화두를 끄집어내었거니와, 이 화두에 박홍규와는 상반된 방식으로 접근한 인물이 김상일이다. 베르그송의 생성존재론을 서구 존재론의 정점으로 읽어낸 소은과 대조적으로, 김상일은 논리학―과거의 논리학을 벗어나 새로운 경지를 연 현대의 논리학―을 토대로 아페이론에 접근한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해, 한국의 전통문화를 철저히 논리학-수학으로서 풀어내는 과정에서 아페이론에 맞닥뜨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깍두기’의 존재론적 의의를 읽어낸 것은 그의 사유의 엠블럼과도 같다.한국 철학의 길은 이렇게 동서 사유의 장벽을 넘어 새로운 존재론을 창조해내는 길, 불교·성리학·동학의 정신형이상학을 이어받아 속류 유물론과 대결하는 길, 그리고 타자-되기의 윤리학과 정치철학을 구체화해 오늘날의 현실과 싸워나가는 길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길이다. <끝>이정우 철학자이정우 철학자 l 서울대학교에서 미셸 푸코로 학위를 받았다. 대안공간 철학아카데미에서 시민 강좌를 열었고, 지금은 소운서원에서 후학 양성과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세계철학사’ 4부작(2011~2024)을 펴냈고, 현재는 ‘소운 철학 대계’를 집필하고 있다.
물화·상품화 시대, 한국 철학이 나아갈 길 [.txt]
지난 한 세기에 걸쳐 한국에서는 어떤 철학적 사상들이 펼쳐졌을까. 현대 한국 철학의 100년을 찬찬히 음미해보고자 한다. 이런 음미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철학적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남겨진 철학적 자산이 어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