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성 교수. 최영성 교수 제공광고“전통 유학의 가치를 ‘사상’이 아니라 현실 속 책임과 행동으로 끝까지 관철한 인물이기 때문이죠. 그는 유학의 정신이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인간다움과 책임 윤리로 살아 있을 수 있음을 증명한 상징적 존재입니다.”오는 26일 한국철학사연구회 주최로 열리는 학술대회 ‘20세기 한국철학: 격동의 시대, 사상의 감응’에서 투철한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이승만 독재와도 비타협적으로 맞섰던 김창숙(1879~1962) 선생의 생애를 조명하는 논문 ‘행동하는 유학자 심산 김창숙의 삶’을 발표하는 최영성(64) 한국전통문화대 무형유산학과 교수에게 “왜 지금 김창숙을 기억해야 하느냐”고 하자 나온 말이다.인천대 미추홀캠퍼스 미래관에서 여는 이 학술대회는 1부와 2부 주제로 각각 한국의 유학 철학과 한국의 불교·도교 철학을 다루는데, 1부 첫 발표자로 최 교수가 나서 심산의 발자취를 살핀다.광고성균관대 한국철학과에서 최치원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최 교수는 학자로서 매우 이른 나이인 35살에 자기 전공 분야의 통사를 썼다. 학부를 졸업한 1985년 2월부터 ‘한국유학통사’ 집필에 착수해 1997년에 5권으로 된 ‘한국유학사상사’를 낸 것이다. 이 책은 한국유학통사로 이름을 바꿔 2006년과 2016년에 각각 개정판이 나왔다.이 저술을 두고 한국철학 권위자인 고려대 윤사순 교수는 “한국유학의 흐름을 시대별로 유학과 관련된 사상들과의 연계까지 고려하면서 입체적으로 서술한 게 특징”이라면서 “한국유학계는 (이 저술로) 연구사에서도 일보 전진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고 평했다.광고광고지난 15일 이메일로 최 교수를 만났다.심산 김창숙.최 교수는 이번 발표문에서 3·1운동 직후 조선 유림 137명이 파리강화회의에 내려고 ‘독립청원서’를 작성한 이른바 ‘파리장서 사건’에서 심산의 활약에 주목했다.광고그는 이 글에서 심산이 파리장서 사건을 기획하고 실행한 과정을 자세히 짚었다. 심산은 3·1운동이 국내적으로 독립운동의 전기를 마련했으니 그 뒤를 이어 국제적 활동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 역할은 3·1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유림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그는 영남 유림 곽종석에게 장서 기초를 요청했고 이어 성안된 장서를 직접 중국 상해까지 가지고 가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된 김규식에게 보냈다.최 교수는 “파리장서는 일본을 영원한 적으로 규정하는 한편, 민족의 주체적 역량을 강조하고 일본의 세계침략 야욕까지 경계했다”면서 이런 점은 “3·1독립선언서의 다소 애매한 대일관과 추상적이고 초점이 흐린 인도주의와는 구별된다”고도 했다.그는 심산의 당시 활약이 한국유학사의 관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짚었다. “(파리장서 사건은) 유학의 의리 사상이 개인 윤리를 넘어 민족 공동체의 집단 윤리로 실천된 사건입니다. 조선 유학에서 의리는 주로 개인의 절개와 충절로 이해되었으나 파리장서운동은 이를 식민지 현실 속에서 민족 전체의 정의를 요구하는 행동으로 확장시켰어요. 김창숙은 유림을 결속하여 운동을 주도함으로써 유학자가 단순한 학문인이 아니라 역사적 책임을 지는 실천 주체임을 보여주었죠.”파리장서엔 영남 유림 120명, 호서(충청) 유림 17명이 서명했다. 호남 유림은 없다. 왜? “영남 유림에 집중된 것은 우연이라기보다 구조적인 특징의 결과입니다. 영남은 퇴계 이후 주리론 중심의 강한 도학 전통과 서원, 문중을 통한 촘촘한 유림 네트워크가 유지되어 집단적 대응이 가능했어요. 또 의리와 절개를 중시하는 학풍이 워낙 강해 식민지 현실에서 침묵보다 항거를 선택하는 윤리적 동력이 형성되었습니다. 여기에 국권 상실을 도덕적 위기로 인식한 지역적 자의식이 결합하면서 파리장서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죠. 호남 유림을 대표하는 간재 전우(1841~1922) 계열은 처음에 참여하기로 작정하고, 메시지까지 준비했으나 이후 왕정복고로 갈 것이냐 민주공화정으로 갈 것이냐를 두고 의견이 갈리면서 끝내 참여하지 못했어요.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광고그는 김창숙이 해방 뒤 성균관대 재건과 유림 조직 정비 등 유교의 현대적 개혁을 이끌다 이승만 세력에 밀려 1956년에 성균관대와 유도회, 성균관 등의 모든 공직에서 사실상 강제로 쫓겨나는 과정도 상세히 살폈다. 그는 당시 “김창숙의 불행은 한국 유교의 불행이며 그 불행은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썼다.최 교수는 지난달 2500매 분량의 한국철학사 원고를 탈고하고 철학전문 출판사 서광사에서 출간을 앞두고 있다. 한국유학통사를 내고 30년 가까이 한국 유교와 불교·노장 사상과 현대철학사 관련 자료들을 두루 살피고 연구한 결과물이다.오는 26일 인천대 미추홀캠퍼스 미래관에서 한국철학사연구회 춘계학술대회가 열린다.동양철학 중에서도 한국철학의 가장 큰 특징이 뭐냐고 하자 그는 ‘역동성’이라고 답했다. “한국철학은 외래 사상의 원형을 유지 발전시키는 가운데 그 사상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데 남다른 모습을 보였어요. 외래 사상의 종합 능력은 그 사상의 본토를 능가할 정도입니다. 일찍이 최남선 선생이 인도 불교는 서론적이고, 중국 불교는 각론적이며, 한국 불교는 결론적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탁견입니다. 이점은 유교 철학의 정수인 성리학도 마찬가지죠. 한국 성리학 역시 ‘결론적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그렇다면 한국유학의 가장 큰 특징은? “인도주의입니다. 한국 유학의 인도주의는 단순한 휴머니즘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바탕으로 인간의 도리와 사회적 책임의 실천을 강조하는 사상입니다. 중국 유학이 천리(天理)의 탐구에 깊이를 더했다면, 한국 유학은 그 천리를 인간의 삶 속에서 실현하는 데 힘을 기울였죠. 조선의 선비들은 학문을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길’을 밝히는 실천으로 이해했어요. 한국 유학의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의 도리를 세우고 백성과 사회를 이롭게 하려는 정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人’(인) 자를 빼놓고는 한국 유학을 말할 수 없어요.”전북 순창에서 난 그가 불과 30대 중반에 한국유학계의 권위자들로부터 인정받은 유학통사를 쓸 수 있었던 데는 학부 시절에 접한 김태준(1905~49)의 ‘조선한문학사’(1931)가 큰 영향을 미쳤단다.“김태준은 경성제대 본과 3학년이던 20대 중반에 ‘조선한문학사’를 썼어요. 당시 일본인 한문 교수 다다 마사토모가 ‘조선한문학사’를 쓰려고 하자, 이에 발분해 자신이 먼저 책으로 냈다고 해요. 김태준이 ‘조선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이 대단한 작업을 했다는 술회를 보고, 저 역시 ‘유학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언젠가 통사 하나를 내리라 마음먹었죠. 유학의 본산인 성균관대 출신이 한국유학통사를 써야 한다는 사명감도 작용했고요.”인터뷰를 마치며 지금 시대에도 유학이 필요하다면 그 답은 뭔지 물었다.“이 시대에 유학이 지닌 가장 큰 의미는 인간다움을 회복하고 지탱하는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는 데 있어요. 유학은 인간을 단순한 경쟁 주체나 기능적 존재로 보지 않고, 관계 속에서 책임을 지는 존재로 이해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인(仁)과 의(義)의 현대적 의미로 이어지며 책임 윤리로 나타납니다. 현대 사회는 기술과 제도의 발전 속에서 효율성과 성과가 중시되면서, 그만큼 인간다움의 기준이 흐려지기 쉽습니다. 이때 유학은 ‘무엇이 가능한가’라는 성취의 질문보다 ‘무엇이 인간다운가’라는 근본적 물음을 던지는 전통으로 기능할 수 있어요. 결국 유학의 가장 큰 가치는 인간다움을 삶의 중심에 다시 세우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어요.”그는 현재 한국 유학의 긴요한 과제로는 “유학 이론의 현대적 해석”을 꼽았다.“유학이론의 현대적 재해석과 체계적 재구성 없이는 유학은 죽은 전통에 불과합니다. 전통 한국 유학은 경전 주석과 학파 논쟁을 통해 매우 정밀한 이론 체계를 발전시켜 왔지만, 근대 이후에는 그 이론이 현대 사회의 언어로 충분히 번역되지 못한 채 ‘도덕적 유산’으로 남아 있죠. 오늘날 과제는 단순한 계승이 아니라, 유학 개념을 현대 철학, 사회과학 등 여러 문제틀 속에서 다시 설명하는 작업입니다. 현대적 개념 언어로 재구성하여 ‘살아 있는 사상 체계’로 복원하는 작업은 누누이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어요. 한국유학사를 이론 보완의 역사라고도 해요. 유학사의 흐름 자체가 지속적인 이론 갱신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심산, 치열한 항일 투쟁으로 유학의 ‘인간다움’ 입증”
“전통 유학의 가치를 ‘사상’이 아니라 현실 속 책임과 행동으로 끝까지 관철한 인물이기 때문이죠. 그는 유학의 정신이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인간다움과 책임 윤리로 살아 있을 수 있음을 증명한 상징적 존재입니다.” 오는 26일 한국철학사연구회 주최로 열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