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고영복 교수가 베이징 대학 도서관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진인진 제공광고사회학자 일랑 고영복(1928~2011)은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대통령 부인에게 사회학 개인 지도를 했고 전두환 정권 때는 사회정화위원회가 만든 현대사회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당시 반독재 민주화 투쟁 일선에 있던 그의 제자들에게 이런 스승은 영락없는 ‘어용 교수’였다.하지만 그가 1 966~93년 교수로 재임한 서울대 사회학과를 퇴임하고 4년 뒤 ‘반전’이 일어난다. 대선을 앞둔 1997년 11월21일 안기부(국정원)가 고 교수가 36년 동안 암약한 고정간첩이었다고 발표한 것이다. 1년 뒤 대법은 간첩과 간첩방조 혐의는 무죄를 선고하고 국가보안법상 통신회합 혐의만 유죄로 봐 징역 2년을 확정했다.1961년부터 북한에 있는 숙부 고정옥 당시 김일성대 조선문학 교수(1911~?) 소식을 전한다며 접근한 북 공작원을 만나고 신고 안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간첩이나 간첩방조 행위가 있지는 않았다는 게 사법부 판단이었다. 하지만 일랑은 여전히 사람들 머릿속에 ‘36년 암약 고정간첩’으로 남아있다.광고‘분열의 시대와 사회통합’ 표지.1997년 국보법 사건 이후 논의 끊긴일랑의 학문적 업적 재정립 뜻으로한상진·김동춘 교수 등 제자 10명‘분열의 시대와 사회통합’ 책 펴내 “일랑, 서로 인정하는 통합정치 열망5공 때도 ‘일방 우위 남북 통합’ 배제사회-문화를 남북 통합의 토대로 봐”그가 떠나고 15년 만에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와 김동춘 성공회대 명예교수 등 그의 제자 10명이 1997년 사건 여파로 논의 자체가 끊긴 스승의 학술적 업적을 제대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취지로 한 권의 책을 냈다. ‘ 분열의 시대와 사회통합-사회학자 일랑 고영복의 학문과 삶’(진인진). 이 책을 위해 제자들은 2022년부터 2년 동안 12차례 집담회를 열었다.광고광고한상진 교수는 책에 실린 ‘일랑의 탈극통간 방법론과 중도공생 사회학’이란 글에서 “일랑을 양극 대립의 진영논리를 넘어 중도 공생의 사회학을 모색한 학자”로 봤다. 그는 일랑이 4·19 변혁의 열기를 이해하고 그 가치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 점 등을 들어 “일랑은 양 진영의 한 편에 서는 것을 피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중간자 또는 매개자로 봤다”고 짚었다. 일랑이 “진영 배후에 있는 공통의 세계를 포착해 서로를 인정하는 통합의 정치를 열망했다”는 것이다.한 교수는 또 자신이 1971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 조작 사건 때 공안검사의 무자비한 수사를 받고 간첩 혐의로 구속되었을 때 사회학과 은사인 일랑과 이해영 교수가 법정에 나와 재판 중인 학생들의 사상을 보증하는 증언을 해주었다고 회고한 뒤 이는 당시 정치 상황에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도 했다.광고김영범 대구대 명예교수는 ‘일랑의 분단문제 체험·직시와 지적 대응’이란 글에서 1980년대 이후 일랑이 적극적으로 펼친 통일 논의에 주목했다. 그는 5공 시절에 일랑이 남·북을 동등한 위치에 놓고 ‘일방 우위의 통합’을 배제하는 통일론을 펼쳤는데 당시로선 대단한 용기의 발로였다고 평가했다.그는 이어 “일랑은 남북 두 체제의 접근과 통합 가능성을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모색하여 통합의 방법론을 구상했다”며 “일랑은 사회-문화를 통일의 한 층위(level)에 불과한 것으로 보지 않고 거의 토대(foundation)로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고도 했다.독립운동 연구자인 김 교수는 일랑의 숙부 고정옥의 전기적 사실도 충실히 밝혔다. 불과 20살에 동아일보 영화평 난을 맡아 쓸 정도로 문재가 있었던 고정옥은 1931년 경성제대생 중심의 항일 학생운동인 ‘반제동맹’ 사건으로 옥고를 겪고 대학에서도 퇴학당했다. 그는 풀려난 뒤 전공을 영문학에서 조선어 전공으로 바꿔 경성제대에 재입학해 홀로 전래 민요 조사·채집 활동에 나섰다고 한다. 북한에서도 1954~66년 민요와 속담·전설·수수께끼·탈춤·판소리 등 여러 분야 연구를 수행해 선구적인 성과를 내면서 북한의 고전문학계 발전을 주도했다고 김 교수는 전했다.왼쪽부터 한상진 교수, 고 고영복 교수, 고인의 부인 이연희씨. 진인진 제공‘분열의 시대와 사회통합’ 공동 저자들. 진인진 제공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는 ‘고영복 교수 사건과 낙인이론’ 글에서 스승이 북한 사람과 접촉하고도 신고하지 않은 것을 두고 ‘낙인 효과’라는 개념으로 논의를 펼쳤다. 일랑은 2001년 낸 저술에서 미신고 이유를 두고 “북에 있는 삼촌의 처지가 곤란할 뿐만 아니라 나의 처지도 곤란해진다. 우리나라엔 보이지 않는 법이 있다. 연좌제라는 것이 있어서 나는 평생 사회활동을 맡을 수가 없다. 신고해서 목숨만 유지하는 평범한 삶을 사느니보다 감추고 나라에 기여하면 법도 용서하리라”고 밝혔다.광고간첩 조작 사건으로 옥고를 겪은 제자 서승(왼쪽 넷째) 선생이 1990년 출소 뒤 찍은 사진. 왼쪽 셋째가 고영복 교수. 진인진 제공심 교수는 “일랑은 평생을 낙인의 두려움으로 불안에 떨며 살아왔다”며 “낙인은 오명을 씌우는 직접적인 효과도 있지만 낙인의 위력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간접적이고 숨은 효과도 있다는 것을 (고영복 교수 사건은) 잘 보여준다”고 봤다.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한상진·김동춘 교수 “고영복은 중도 공생 사회학 모색한 학자”
사회학자 일랑 고영복(1928~2011)은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대통령 부인에게 사회학 개인 지도를 했고 전두환 정권 때는 사회정화위원회가 만든 현대사회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당시 반독재 민주화 투쟁 일선에 있던 그의 제자들에게 이런 스승은 영락없는 ‘어용 교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