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학의 한 세기 l 철학자 김상일의 사유의 모험서구는 제거하려 했던 ‘피타고라스의 콤마’전통음악은 활용했다고 읽어낸 김상일한 손엔 탈근대적 사유, 한 손엔 전통 문화‘여분’으로 새롭게 읽어낸 독창적 사상인공지능 제미나이에 “메가라학파의 역설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다'에 관한 삽화를 그려줘”라는 지시어를 넣어 생성한 이미지이다. 역설은 사유의 막다른 골목, 아포리아(난제), 피해야 할 장애물로 여겨졌지만, 현대의 철학(과 수학)은 숱한 형태의 역설들을 발견해 내고 연구했다.광고지난 한 세기에 걸쳐 한국에서는 어떤 철학적 사상들이 펼쳐졌을까. 현대 한국 철학의 100년을 찬찬히 음미해보고자 한다. 이런 음미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철학적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남겨진 철학적 자산이 어떤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20세기의 철학은 그때까지 이어져온 고중세 철학과 근대 철학을 근본적으로 뛰어넘는, 이른바 탈근대적인 여러 사유 지평들을 열었다. 그중 하나의 예를 든다면 ‘역설’(paradox·패러독스)을 들 수 있다. 역설을 가장 범례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일찍이 메가라학파가 논했던, “어떤 크레타인이 말하기를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다’라고 했다” 같은 경우이다. 더 간단한 예로서 “나는 거짓말한다”라는 주장을 생각해보자. 내가 거짓말을 말하고 있다면, 나는 참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참을 말하고 있다면, 나는 거짓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역설은 이런 순환 구도를 핵심으로 한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역설은 사유의 막다른 골목, 아포리아(난제), 피해야 할 장애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현대의 철학(과 수학)은 숱한 형태의 역설들을 발견해 내고 연구했으며, 어떤 면에서는 향유하기까지 했다.그런데 이런 현대적인, 탈근대적인 철학(특히 논리학)과 수학이 근대도 아니고 서구 철학의 전통도 아닌 한국(넓게는 동북아)의 고전적인 사상과 문화와 맞닿아 있다면? 역으로 말해, 우리가 고색창연하다고 느끼는 우리의 전통 사상과 문화에 사실은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발견된, 참신한 것을 넘어 기이하기까지 한 현대 사유가 깃들어 있다면? 이런 놀라운 관점에 입각해 독창적이기 이를 데 없는 사유를 전개해온 인물이 김상일(1941~ )이다. 김상일은 탈근대로부터 전통으로, 전통으로부터 탈근대로 가로지르면서 다양한 사유의 성과들을 일구어왔다.광고철학자 김상일. 동연 제공김상일 사유의 한편에는 탈근대적 사유들이 들어 있는 도구 상자가 있다. 그중 칸토어의 대각선 논법,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 러셀의 역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라캉의 위상수학,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 바디우의 사건의 철학은 그가 가장 자주 꺼내 드는 연장들이다. 맞은편에는 그가 새로운 형태로 재창조해온 전통 사상과 문화가 들어 있는 보물 상자가 있다. 이 보물 상자에는 역학(易學), 불교철학, 한의학, 동학, 부도지(符都誌), ‘악학궤범’, 윷놀이, 한복 등등 다채로운 전통 사상과 문화가 들어 있다. 김상일은 이 두 상자를 오가면서 대각선 논법으로 역학의 구조를 해명하고, 러셀의 역설로 한의학의 비전을 제시하고, 불완전성 정리로 원효의 ‘판비량론’을 독해하는 등 지속적인 사유의 모험을 계속해왔다.김상일 사유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개념은 ‘여분’(‘과분)이다. 김상일은 그의 저작 도처에서 여분 개념에 입각한 흥미로운 논의를 전개하고 있으며, 이 개념에서 현대의 탈근대적 논리학(/수학)과 후기구조주의 사유가 교차한다. 이 개념은 멀리로는 아페이론(apeiron·만물이 생겨나고 다시 돌아가는 만물의 근원 및 원리) 개념과 닿으며, 이 점에서 그의 사유는 박홍규의 사유와 흥미롭게 대비된다.광고광고여분 개념을 사유하는 여러 경로가 있거니와, 가장 기초적인 것은 칸토어의 ‘대각선 논법’이다. 이 논법의 여섯가지 요소는 세로, 가로, 배열(빈자리의 배열), 값(자리들을 값들로 채움), 대각선 값(대각선을 취해 계열을 만듦), 반(反)대각선 값(대각선 계열의 값들을 바꿈)이다.우선 세로와 가로로 구성된 행렬 구조를 만든다. 행렬 구조에 자리를 배열하고서, 각 자리에 임의의 값을 배정한다. 가장 간단한 예를 든다면, 다음과 같은 배열을 생각해볼 수 있다.(‘위키피디아’ 참조)광고S1 = 0 0 0 0 0 0 0 0 0 0 0 ……S2 = 1 1 1 1 1 1 1 1 1 1 1 ……S3 = 0 1 0 1 0 1 0 1 0 1 0 ……S4 = 1 0 1 0 1 0 1 0 1 0 1 ……S5 = 1 1 0 1 0 1 1 0 1 0 1 ……S6 = 0 0 1 1 0 1 1 0 1 1 0 ……S7 = 1 0 0 0 1 0 0 0 1 0 0 ……S8 = 0 0 1 1 0 0 1 1 0 0 1 ……S9 = 1 1 0 0 1 1 0 0 1 1 0 ……S10 = 1 1 0 1 1 1 0 0 1 0 1 ……S11 = 1 1 0 1 0 1 0 0 1 0 0 ……다음으로는 이 매트릭스에서 대각선을 추출함으로써 또 하나의 수 계열을 만든다. 그리고 이 계열 각 항들의 값을 뒤집는다(0을 1로, 1을 0으로) 그 결과는 S=1 0 1 1 1 0 1 0 0 1 1 ……이 될 것이다.이렇게 만들어진 계열은 기존의 어떤 수 계열과도 다른 새로운 수 계열이다. 왜 그런가? 이 수 계열의 첫번째 수는 첫번째 수 계열과 첫번째 자리에서 다르다. 두번째 수는 두번째 수 계열과 두번째 자리에서 다르다. 세번째 수는 세번째 수 계열에서 세번째 자리에서 다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이 새로운 수 계열의 n번째 수는 n번째 수 계열의 n번째 자리에서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반대각선으로써 만들어 낸 이 수 계열은 이 행렬의 그 어디에도 없었던 새로운 수임이 증명된다.이 논법은 후에 튜링이 그의 ‘튜링 머신’을 논할 때(특히 ‘정지 문제’에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며 또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서도 의미심장한 역할을 하는 등 현대 논리학과 수학에 심대한 의의를 띠게 된다. 그렇다면 김상일은 이 대각선 논법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어떤 맥락에서 이 논법이 그의 사유 전반을 가로지르게 되었는가?광고이 논법의 핵심은 우리가 도저히 헤아릴 수 없이 무수한(나아가 무한한) 요소들이 매트릭스 형태로 배열되어 있을 때, 거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다른 요소를 발견해 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예컨대 어떤 거대한 광장에 1000만명의 남녀가 매트릭스 형태로 서 있다고 생각해보자. 어떤 계열은 남-여-남-여-남-여-……로, 또 다른 계열은 남-남-여-남-남-여-……로, 또 다른 계열은 여-남-남-여-남-남-……으로 무수한 계열들이 성립할 것이다. 이때 “이 매트릭스 전체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다른 하나의 계열을 발견해 내라”는 문제가 제시된다. 대각선 논법이 없다면 포기하는 길 외에는 없을 것이다.02 현대 수학의 기초를 확립한 게오르크 칸토어의 대각선 논법은 한국의 철학자 김상일의 사유에서 ‘여분’ 개념을 사유하는 토대가 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김상일은 이 논법에서 다음과 같은 존재론적 이치를 읽어낸다: 우리가 어떤 논의 대상에서 아무리 최대한의 합리적 질서를 읽어내도, 거기에서는 항상 그러한 질서에 온전히 포획되지 않는 어떤 ‘여분’이 등장한다. 합리성으로써 소진되지 않는 이 차원은 바로 아페이론이다.아페이론에 관련해 우리는 두 갈래의 사유를 구분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아페이론을 세계의 근본 원리로 삼고서 생성존재론을 펼치는 갈래이고, 다른 하나는 어디까지나 합리성으로써 세계를 인식해 나가고 그 과정에서 아페이론에 맞닥뜨리는 갈래이다. 다른 맥락의 이야기이지만, 필자가 ‘세계철학사 4’에서 이 각각―‘생성존재론’과 ‘새로운 합리주의’―을 1부와 2부에 배치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이렇게 볼 때 우리는 박홍규와 김상일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박홍규에게서도 김상일에게서도 아페이론은 나타난다. 그러나 박홍규가 아페이론의 실재성에 입각한 생성존재론의 사유를 펼쳤다면, 김상일은 어디까지나 모든 문제에 논리학(과 수학)을 가지고서 접근하는 합리주의자이다. 그러나 후자에게서도 항상 아페이론이 얼굴을 드러내는데, 그것은 형이상학적 출발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합리적 분석의 마지막에 ‘여분’으로서 드러나는 소진 불가능성으로서이다. 박홍규와 김상일의 관계는 들뢰즈와 바디우의 관계에 유비적이다.이러한 여분 개념을 잘 보여주는 예로서 음악을 들 수 있다. 서구 음악에서의 여분은 ‘피타고라스의 콤마’로서 드러난다. 낮은 도음(C₁)에서 높은 도음(C ₈)에 도달할 때까지 한 옥타브씩 7번 증가해서 도달한 값(2⁷)과 5도씩 12번 증가해서 도달한 값( (⅔) ¹²) 사이의 차이가 피타고라스 콤마이다. 양쪽에 공히 2을 곱해 주면, 앞의 것은 2 ¹ ⁹이 되고 뒤의 것은 3¹²이 된다. 그렇다면 2 ¹ ⁹ = 3¹²이 되어야 하거니와, 두 값이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앞의 수는 524288이고 뒤의 수는 531441이 된다. 둘의 비를 구하면 1.013643264……가 된다. 이 비가 피타고라스 콤마이다.서구 철학자들은 주로 아페이론을 제거해야 할 것, 제거할 수 없다면 회피해야 할 것으로 보았다. 음악에서 이런 회피를 위해 개발된 기법이 곧 순정률과 평균율이다. 피타고라스의 콤마를 제거하기 위해 순정률은 음율을 5/4 같은 정수비로 조율한다. 그러나 회피해 버린 피타고라스 콤마 때문에 전조(轉調·조바꿈)가 어려워지는 등 문제가 발생한다. 평균율은 옥타브를 12개의 동등한 반음으로 분할함으로써 이 점을 피해 간다.(바흐의 유명한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을 떠올려보자) 그러나 이는 피타고라스 콤마를 잘게 나누어 분포시킴으로써 우리의 귀를 속이는 것에 불과하다. 순정률이 아페이론에 각각이 딱 떨어지는 페라스들을 질서 있게 배열하되 배열 후 남은 여분을 잘라내 버리는 경우라면, 평균율은 여분을 잘게 나누어 분포시킴으로써 전체가 완벽하게 떨어지도록 페라스들을 부여한 것이지만 모든 페라스들이 극미의 오차들을 동반하는 경우라 할 것이다. 이렇게 서구 음악은 피타고라스 콤마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현대에 들어와, 논리학-수학에서 ‘역설’이 그랬듯이, 존재론에서 (박홍규 등에 의해) 아페이론의 복권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예술에 의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기에 이른다. 서구 음악 역시 이런 흐름을 타고서 무조음악 이래 음악의 새로운 경지들을 개척해온 것이다.그러나 놀랍게도 김상일은 우리의 전통음악이 피타고라스 콤마를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서구와는 대조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잘 활용했음을 밝혀준다. 서구의 음악은 아페이론이 배태해 내는 문제를 어떻게든 제거하거나 회피하려 한 데에 반해, 우리의 전통음악은 그 여분을 받아들여 그것을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이 기법은 특히 ‘삼분손익법’(三分損益法)으로 대표되며, 이 기법을 통해 순정률만으로도 얼마든지 음률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김상일은 이 구조를 대각선 논법을 활용해 분석해준다.피타고라스 콤마는 우리의 전통음악에서는 제거되거나 회피되는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일종의 ‘깍두기’로서 활용된다. 깍두기는 축구에서의 ‘리베로’처럼 움직이면서 독자적인 운동을 만들어 낸다. 전체의 질서(/구조)에 온전히 들어맞지 않는 여분(초과분)으로서의 깍두기―서구식으로 말해 조커―는 바로 그런 성격으로 인해 전체를 활성화해주고 전체의 움직임에 흥미진진한 뉘앙스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런 깍두기의 존재는 자크 라캉 이래의 후기구조주의 사유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김상일의 사유는 탈근대 논리학(/수학)과 후기구조주의 철학 그리고 우리의 전통문화가 함께 연주하는, 독창적인 뉘앙스로 가득 찬 삼중주이다.이정우 철학자이정우 철학자 l 서울대학교에서 미셸 푸코로 학위를 받았다. 대안공간 철학아카데미에서 시민 강좌를 열었고, 지금은 소운서원에서 후학 양성과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세계철학사’ 4부작(2011~2024)을 펴냈고, 현재는 ‘소운 철학 대계’를 집필하고 있다.이정우 철학자
탈근대 논리학으로 읽어낸 전통음악 [.txt]
한국 철학의 한 세기 l 철학자 김상일의 사유의 모험 서구는 제거하려 했던 ‘피타고라스의 콤마’ 전통음악은 활용했다고 읽어낸 김상일 한 손엔 탈근대적 사유, 한 손엔 전통 문화 ‘여분’으로 새롭게 읽어낸 독창적 사상 지난 한 세기에 걸쳐 한국에서는 어떤 철학적 사상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