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만약 세상에서 까마귀가 사라진다면 l 마쓰바라 하지메 지음, 정한뉘 옮김, 나무의마음(2026) 광고김명남의 과학책 읽기 한달 전 어디선가 다음 문장을 읽은 후 요즘 나도 모르게 불쑥불쑥 읊조리곤 한다. ‘그러자 까마귀가 없었다고 한다. 왜가리가 없었다고 한다. 딱따구리가 없었다고 한다. 굴뚝새가 없었다고 한다. 벌새가 없었다고 한다. (…) 그러자 수달이 없었다고 한다. 토끼가, 회색다람쥐가 없었다고 한다. 큰귀생쥐가 없었다고 한다. (…) 그러자 구름이 없었다고 한다. 안개가 없었다고 한다. 별이 없었다고 한다. 세상이 캄캄했다.’ 좀 으스스한 이 문장은 북아메리카 카토 원주민에게 전하는 창조설화의 일부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다양한 창조설화들은 공통적으로 옛 세상이 망한 뒤에 현 세상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그중에서도 이 설화가 독특한 점은, 옛 세상이 사라질 때 정확히 무엇이 사라졌는지를 하나하나 열거한다는 것이다. 전문은 60여가지 동물과 자연물을 반복적으로 호명한다. 그냥 ‘세상이 사라졌다’가 아니다. 까마귀가, 제비가, 코요테가, 나무가, 번개가 사라져서 세상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실재들이 존재하는 것이 세상이고, 이들이 부재하는 것이 세상의 끝이다.광고 ‘만약 세상에서 까마귀가 사라진다면’을 쓴 까마귀 ‘덕후’ 동물행동학자 마쓰바라 하지메에게도 이 설화를 알려주고 싶다. 만약 그가 이 이야기를 알았다면 책에서 소개했을지도 모르겠다 싶어서다. 이 책에서 그는 현재의 생태계, 진화사, 문학과 종교로부터 홀연 까마귀가 사라진다면 과연 무엇이 달라질까 하는 사고실험을 해본다. 그러니 북아메리카 원주민도 까마귀가 사라진 세상을 상상했다는 사실을 알면 아마 재밌어 했을 것이다. 그의 상상은 설화와는 달리 시종 명랑하다. 길에 내놓은 쓰레기를 파헤치는 까마귀가 없으면 오히려 좋지 않을까 하는 질문에는 대신 우리가 길에서 토사물을 밟을 확률은 조금 높아질 거라고 대답한다. 까마귀는 쓰레기와 동물 사체를 먹는 청소동물이면서도 인간과 가깝다는 점에서 흔치 않은 새다. 그 생태 지위를 대신할 새로 콘도르, 찌르레기, 갈매기 등 여러 대역을 상상해 보지만, 까마귀처럼 감 같은 큰 과일의 씨앗도 퍼뜨릴 수 있고 흉포하지 않은 새는 좀처럼 없다.광고광고 인간 문화에 생길 빈자리도 만만치 않다. 에드거 앨런 포의 명시 ‘더 레이븐’이 쓰이지 않았다면 어떨까.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종종 갈까마귀라고 오역되는 이 이름이 실은 큰까마귀라고 목 놓아 바로잡을 필요가 없어지겠지만, 시 속 큰까마귀의 대사 “영영 없으리(Nevermore)” 에서 영감을 얻은 수많은 예술적 재현도 사라질 것이다. 한국에는 까마귀를 로고로 삼은 미스터리 전문 출판사 ‘네버모어’도 있는데 그건 어쩌나. 북유럽 신화의 신 오딘을 보필하는 두 까마귀 후긴과 무닌도 다른 새로 바뀌었으리라. 세상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진 않다. 그러나 분명 자연과 사회의 모든 조각들이 조금씩 달라져야 했으리라. 이 책의 상상은 카토 원주민 설화와 비슷한 효과를 안긴다. 혹시 우리에게 익숙한 옛 세상이 사라져도, 지구에는 그다음 세상이 나타날 것이다. 새 세상이 까마귀를 대신할 새를 진화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세상이 과연 인간에게도 호의적일까? 이미 존재하는 세상을 좀 더 귀중히 여기는 것이 우리에게도 안전한 길일지 모른다고, 카토 설화도 까마귀 덕후 동물학자도 말하는 듯하다.광고 김명남 과학책 번역가
까마귀가 없는 세상은 깜깜할 거야 [.txt]
김명남의 과학책 읽기 한달 전 어디선가 다음 문장을 읽은 후 요즘 나도 모르게 불쑥불쑥 읊조리곤 한다. ‘그러자 까마귀가 없었다고 한다. 왜가리가 없었다고 한다. 딱따구리가 없었다고 한다. 굴뚝새가 없었다고 한다. 벌새가 없었다고 한다. (…) 그러자 수달이 없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