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할머니의 여름휴가 l 안녕달 글·그림, 창비(2016) 광고이진민의 그림책이 철학을 만날 때 왠지 청포도 색으로 느껴지는 7월이 가고, 이름부터 팔팔 끓는 듯한 8월이다. 속옷이 프레츨(매듭 형태의 비스킷) 모양으로 벗겨지고 스포츠 브라는 벗는 것 자체가 스포츠라는 말에 낄낄거리며 공감하게 되는 무더위. 모두가 탈출을 꿈꾼다. 소셜 미디어에도 햇살이 반짝이고 청량하게 물방울이 튄다. 공항, 캐리어, 섬과 바다, 이런 말들이 우리를 설레게 하는 휴가철을 맞아 생각해 본다. 휴가란 무엇인가. 휴가는 ‘쉴 휴’에 ‘틈 가’를 쓴다. 사람이 나무에 기댄 모습이 ‘쉴 휴’ 자가 되었다는 귀여운 사실에 미소가 절로 난다. 초록에 기대 쉴 수 있는 틈. 나무 밑에 가만히 앉아서 굳이 무언가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아마 휴가일 것이다. 바캉스(vacance)와 베케이션(vacation)은 ‘비어 있다’는 뜻의 영단어(vacant)와 어원을 공유한다. 노자와 장자, 석가모니, 쇼펜하우어, 니체, 알튀세르 등 수많은 사상가도 비워야 자유로워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에게 휴가란 과연 해야 할 일이 없는 시간, 비우는 시간, 자유로운 시간일까? 은행 잔고만 비울 뿐, 욕망과 칼로리와 일정을 빈틈없이 채워 넣는 시간은 아닐까?광고 비행기표를 끊어 낯선 이국땅이라도 밟아야 휴가로 인정받는 듯한 이 세상에서, 거실 바닥에서 나만의 바다를 발명해 내는, 꼭 ‘쉴 휴’ 자처럼 귀여운 할머니를 만나보자. 바다에 가지 못하는 할머니는 다정한 손자가 선물한 소라껍데기 하나로 눈부신 여름휴가를 즐긴다. 상상으로 펼쳐 낸 백사장에서 수박도 먹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온전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쾌락주의라는 다소 오해하기 쉬운 이름표가 붙은 에피쿠로스는 진정한 휴식을 ‘아타락시아’라고 불렀다. 화려한 유흥과 쾌락이 아니라, 내면에 결핍과 불안이 없는 고요한 평정의 상태. 휴식보다는 안식에 가까운 개념이다. 고장 난 선풍기가 돌아가는 할머니의 작은 거실은 바로 아타락시아가 실현되는 공간이다. 할머니가 소라를 귀에 대고 바다를 만들어 내듯, 내가 있는 곳에서 스스로 내면의 평화를 찾는 힘. 광고광고 우리는 휴가를 위해 멀리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휴식은 공간의 이동보다는 시간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에 있다. 할 일이 없는 시간을, 틈과 여유를 만들어 내는 것. 캐리어에 뭔가를 채워 넣는 대신 머릿속을 가득 채운 세상의 소음을 지워내는 것. 그러므로 진정한 휴가는 내 마음의 고요한 빈터를 찾아내는 일이다. 그렇게 자리를 바꾸는 것보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휴가의 본질이다. 책을 보면서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소라껍데기’의 은유가 떠올랐다. 방 안에서도 온 우주를 몽상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고 한 그는, 특히 구석이나 껍데기 같은 장소가 어떻게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자아를 발명하는 공간이 되는지 강조했다. 소라껍데기는 여린 연체동물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단단하고 아름다운 은신처다. 파도가 담긴 예쁜 빈집. 몽상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재창조하는 인간의 아름답고 존엄한 능력이다. 약하고 외로운 홀몸노인이 충만한 휴가를 즐길 수 있게 만드는 이 마법 같은 힘을 당신도 즐겨 사용하는지 묻고 싶다. 스위치를 끄고 단숨에 평화와 안식을 얻을 수 있는 당신만의 소중한 은신처, 그런 공간을 가졌는지도. 광고 이진민 정치철학 박사·작가
소라껍데기와 수박 한 덩이면, 그곳이 꿈꾸는 바다 [.txt]
이진민의 그림책이 철학을 만날 때 왠지 청포도 색으로 느껴지는 7월이 가고, 이름부터 팔팔 끓는 듯한 8월이다. 속옷이 프레츨(매듭 형태의 비스킷) 모양으로 벗겨지고 스포츠 브라는 벗는 것 자체가 스포츠라는 말에 낄낄거리며 공감하게 되는 무더위. 모두가 탈출을 꿈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