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감우산방 조각이불 전시 풍경. 제미란 제공광고제미란 | 디자이너·아트 워크샵 리더 마감을 앞두고 난감한 일이 생겼다. 작가와의 인터뷰가 한 달 미뤄진 것이다. 문득 한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남의 작업실은 그렇게 찾아다니면서, 왜 당신 작업실 이야기는 쓰지 않나요?” 미뤄두었던 그 질문을 응시해 보기로 했다.가파른 언덕을 오르다 마지막 고갯마루를 넘으면, 겸재의 붓질로 힘차게 내려그은 듯 먹빛 바위산이 펼쳐진다. 그 아래 오목한 요새처럼 들어앉은 마을. 쨍한 여름날 깊은 그늘 드리우는 고욤나무 아래, 허리춤 높이의 빨간 대문집이 나의 작업실 ‘감우산방’(甘友山房)이다. 전쟁 통에 형성된 꼬방동네인데 김신조 사태로 소개되어 지금은 열세대 남짓 남아있다. 막노동하던 최씨에게 시집와 평생 이곳에서 늙어간 춘자 언니를 비롯해 형님 아우님 기대어 살아온 어르신들이 마을에 쌓은 시간을 더하면 250년이 넘는다. 계단참에 둘러앉아 텃밭 부추를 다듬는가 싶더니, 어느새 노릇한 부추전을 나누는 사람들. 이곳엔 아직 공동체가 살아있다.광고산방의 식탁. 제미란 제공미대 만학도이던 내가 옷을 짓게 된 사연은 이러하다. 출산 후 몸이 불어 맞는 옷이 없자, 옷을 펼쳐두고 오래 바라보았다. ‘목과 팔이 통과할 구멍만 있으면 옷이 되는구나!’ 그날부터 쓰윽 천을 오려 사이즈 없는 옷 아닌 옷을 걸치고 다녔는데 지나던 이들이 하나둘 부탁하면서 어느새 일이 되었다. 오리고 난 조각천들도 곱고 아까워 바랑을 짓기도 했다. 빛깔을 견주고 매만지며 꿰매는 일은 내게 무심하고 천진한 놀이였다. 누덕누덕 기운 조각들이 덕을 쌓는 누덕(累德)이 되기를 바라면서.작업실을 ‘감우산방’이라 부른 뜻은 단비처럼 반가운 이들과 함께하고 싶어서다. 손작업으로 제 안의 창조성을 찾아가는 ‘서로 배움 놀이터’를 열었다(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와 함께). 고바위 길을 올라온 이들에게는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각자 담아온 소박한 음식을 나누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따로 없었다. ‘여는 시’로 기도를 대신하고, 책읽기를 통해 조심스레 각자 삶을 나눈 뒤엔 모두 어린아이가 되어 마당으로 나섰다. 빨래터처럼 둘셋씩 모여앉아 감물을 들이고, 들어와 바느질을 했다. ‘사려 깊은 수다’가 깊어질수록 바느질은 서로의 삶을 잇는 일이 되었다. 조각 이불 전시를 마친 뒤 한 참가자는 감우산방을 이렇게 회상했다.광고광고“마법의 공간 감우산방에서는 타자들로 인해 내가 선명해진다. 바느질은 천을 꿰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다른 차원으로 인도하는 통로가 된다. ‘느슨한 관계’라서 꺼내 놓을 수 있었던 아픈 감정과 오랜 상처를 삶의 고유한 무늬와 결로 다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게 너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와 이어져 하나의 서사가 된다. 바느질 한 땀 한 땀이 조각들을 이어 옷을 만들고, 이불을 만들었듯이.”마당에서 염색놀이. 제미란 제공모두 떠나고 나면 산방은 다시 홀로 남는다. 왁자하던 테이블은 재단대로 돌아가고, 천 스치는 소리만 방 안에 남는다. 보자기처럼 풀어졌다가 다시 동여매지는 가변형의 집. 오늘도 빨간 대문을 밀고 들어오며 생각한다. 손으로 만지는 일은 세상과 관계 맺는 가장 오래된 언어라는 것을. 그렇게 나는 산방과 함께 늙어가며, 마을의 구력 위에 또 한 세월을 조용히 보태고 있다.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