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26년 전인 2000년 5월2일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시 디엔즈엉구 하미 마을에서 한국 참전군인단체와 디엔즈엉구 인민위원회 공동주최로 열린 위령비 기공식에서 한국군의 학살로 6명의 가족을 잃은 당티카가 오열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 광고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조사 개시 각하 결정을 취소해야 한다는 베트남 피해생존자의 행정소송 상고심이 대법원에 계류 중인 가운데, 한국 정부가 국내 절차를 통해 적절한 해법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9일 한겨레 취재에 따르면, 진실화해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베트남전 하미 학살 피해생존자 대리인단은 지난 14일 대법원에 이런 내용이 담긴 전문가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의견서에서 “한국 정부나 베트남 구정권(1975년 패망한 남베트남)이 제노사이드 처벌협약에 유보 없이 가입해, 한국 정부는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언제든지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피고로 재판받을 수 있다”며 “한국 정부나 법원이 국내 절차에서 적절한 해법을 제시해 피해자의 원한을 누그러뜨리는 게 더욱 품격있는 조처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021년 2월부터 2년간 2기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으로 활동한 이 교수는 인권법과 법사상사, 이행기 정의(과거 청산) 전문가다. 이 교수는 “현재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면서도 “제3국이나 엔지오(NGO)의 노력으로 ‘하미 마을 대 대한민국’이라는 사건이 실제 국제사법재판소 재판 목록에 등재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될 경우 국제사법재판소는 하미 학살이 제노사이드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게 된다. 이 교수는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결론이 어떻게 나든 국제재판소에 피소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밝혔다.광고 1948년 유엔에서 채택돼 1951년 발효된 제노사이드 처벌협약(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량학살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한국도 1950년 가입했다. 협약 9조는 절차적으로 제소 뒤 상대국이 응소하는 경우에만 재판이 진행되도록 설계돼 ‘국가 면책’을 주장하려는 당사국은 이 조항을 유보해야 하는데, 한국은 유보하지 않은 상태다. 미국은 이 조항을 유보했고, 일본은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다. 하미 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씨가 지난 2024년 1월 한국에서 온 평화기행단에 하미 마을 위령비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2000년 한국 참전군인단체 지원으로 세워진 이 위령비는 이듬해 한국 정부의 압력으로 한국군의 학살에 관한 내용을 연꽃 그림으로 대체한 바 있다. 한베평화재단 제공 이 교수는 제노사이드 처벌협약에 따른 제소 사례로 남아프리카공확국이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집단 살해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 정부를 제소한 사례와, 감비아·덴마크 등이 로힝야족 집단살해 혐의로 미얀마 정부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한 일을 꼽았다. 국제사법재판소 1심 재판부는 가자지구에서의 전쟁범죄 혐의로 2024년 11월 네타냐후 총리 등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광고광고 이 교수는 또 의견서에서 1944년 그리스 디스토모 학살을 예로 들며 한국 정부의 재산이 소재하는 나라에서 국제인도법에 따른 재판이 진행될 수 있는 가능성도 제기했다. 당시 2차 세계대전 중 그리스에 주둔한 독일군은 그리스 인민해방군 게릴라의 습격으로 피해를 보자 그 보복으로 디스토모 마을 주민 218명을 학살했다. 피해자들은 1990년대에 그리스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해 승소한 뒤 독일 정부가 국가면제를 주장하며 배상을 거부하자 이탈리아 법원에서 소송을 이어갔다. 이탈리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각각 2004년과 2014년 “집단학살이나 전쟁범죄와 같은 국제강행규범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가 적용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 등을 내리면서 이탈리아 북부 메나조 지역의 독일 정부 소유 빌라 비고니 센터(독일·이탈리아 유럽 대화센터)에 대한 가압류가 승인되기도 했다.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들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한국에서 제기했고, 그리스 법원 전례에 따라 한국 법원은 국가면제를 박탈하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광고 하미 학살은 1968년 2월24일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시 디엔즈엉구 하미 마을에 한국군 해병대가 진입한 뒤 135명이 주검으로 발견된 사건이다. 2기 진실화해위가 2023년 5월 전체위에서 “외국에서 외국인에 대해 전쟁 시 발생한 사건은 조사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표결 끝에 조사개시를 각하하자 피해생존자들이 행정소송을 냈고, 2024년과 2025년의 1·2심에서 패소했다. 이후 상고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심리가 진행 중이다. 앞서 1968년 2월12일 74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또 다른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인 퐁니 사건 피해생존자는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해 1·2심에서 승소한 뒤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3기 진실화해위는 지난 9일 하미 사건 조사개시 각하의 정당성만을 주장해온 2기 때와는 달리 “조사개시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는 내용의 보충 서면을 대법원에 제출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