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고 백락정의 조카 백남식(오른쪽)씨가 지난 5월12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위원장실에서 송상교 위원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광고군법회의 사형 판결문이 뒤늦게 발견됐다는 이유로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의 진실규명 신청 자격을 박탈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결정이 항소심에서 적법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법원이 1심 판단과 달리 미군정 시기 군인을 처벌하기 위해 만든 국방경비법에 따른 민간인 재판의 절차적 하자를 문제 삼지 않으면서, 유족은 즉각 상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한겨레가 21일 유족을 통해 입수한 법원 판결문을 보면, 서울고등법원 제7행정부(재판장 권순형)는 지난 18일 고 백락정(백낙정, 1919년생)의 조카인 백남식(77)씨가 진실화해위를 상대로 낸 ‘진실규명 취소 이의신청 기각결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진실규명 신청 각하 결정은 위법하다”고 본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재판부는 “이 사건 판결(국방경비법에 따른 군법회의 사형판결)은 구 과거사정리법(진실화해위 기본법)에서 규정한 '확정판결'에 해당한다”며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형사소송법에 의한 재심 사유가 존재함을 인정하기 부족하므로 이 사건 각하 결정은 적법하다”고 판시했다.광고앞서 1심 재판부는 판결 이유와 집행지휘서 누락 등 군법회의 사형판결의 미흡한 점을 지적하며 “백락정이 해당 판결의 집행으로 사망했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므로, 사망 이유 등에 대한 재조사 없이 신청을 각하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했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군법회의 판결의 졸속 처리 의혹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위원회 재조사 과정에서 나온 “백락정이 전쟁 이후 인민군 치안대 활동을 했다”는 참고인 진술에 무게를 두며, “진실규명을 새로 신청하려면 법원의 재심개시 결정부터 받아오라”고 선을 그었다. 유족은 현재 대전지법 홍성지원에 군법회의 사형 판결에 대한 형사재심을 신청해 둔 상태다.원래 백락정은 2기 진실화해위로부터 1950년 7월 대전 골령골에서 군경에 의해 희생된 사실을 인정받아 ‘충남 남부지역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 희생자로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뒤늦게 1951년 1월6일 자 군법회의 사형판결문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위원회가 진실규명 결정을 취소하고 신청을 각하하자 유족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11월26일 서울행정법원 제8부(재판장 양순주)는 신청 각하 결정에 한해 “위법”이라고 판결했으나, 2기 진실화해위는 활동 종료 직후인 12월 청산팀을 통해 항소했다.광고광고백락정의 젊은 시절 사진과 백락정의 1951년 육군본부 고등군법회의 사형판결문 뒷장. 판결 이유가 공란으로 비어 있다. 유족 제공본래 국방경비법에 따른 민간인 재판은 단심제로 운영되며 40일 이내에 집행을 강제하는 등 위헌적 요소가 다분해 그동안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 희생자들의 재심에서도 사법적 효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1기 진실화해위 역시 2009년 보고서에서 이러한 군법회의 판결을 사실상 ‘집단학살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고 판단한 바 있다. 실제 백락정이 사형 판결을 받은 1951년 1월 6일, 11사단 고등군법회의는 백락정을 포함한 184명에 대해 군법회의를 진행해 이 중 49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하루 8시간 업무 기준을 적용하면 피고인 1명당 재판 시간은 고작 2.6분에 불과했다.하지만 2기 진실화해위는 군법회의 판결문을 이유로 종전의 진실규명 노력을 뒤집어 논란이 됐다. 당시 진실화해위 안팎에선 “사형 선고 군법회의 판결문이 일부 사실관계를 바로잡아주었으나 진실규명의 부당성마저 입증한 것은 아니”라는 비판이 제기됐다.광고유족 백남식씨는 한겨레에 “1심 판단과 너무 상이해 황당하다”며 “절차적 하자투성이인 국방경비법을 적용해 민간인 수천 명을 죽여놓고 재심 사유를 논하는 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일 수 없어 상고하겠다”고 했다. 백남식씨는 지난 12일 진실화해위를 방문해 백락정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서도 재접수했다.항소심 판결 소식을 접한 3기 진실화해위 관계자들도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간부 ㄱ씨는 “(백락정 사건은) 2기에서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는데 이런 판결이 나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난다”고 했다. 조사관 ㄴ씨는 “항소심 재판부는 확정판결을 원인으로 한 재심사 사유여부에만 집착했다. 1심 판결에 항소를 했던 2기 청산팀, 항소를 취하하지 않은 3기, 그리고 1심을 뒤집은 2심까지 국가는 여전히 국가폭력 피해자에게 가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송상교 3기 진실화해위원장은 지난 3월 한겨레 인터뷰에서 “1심 법원 판결 취지를 세심히 검토해서 항소에 대한 입장과 재조사 여부를 포함한 적절한 조처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항소 포기는 실행하지 못했고 판결도 정반대로 나온 상황이다. 송 위원장은 지난 3월 취임 직후 연 기자회견에서 “한국전쟁 전후 시기에 불법 판결이 꽤 많았다. 수만 건 정도가 있었다고 하는데 국방경비법에 따라 사형 판결을 받은 분들의 문제가 부각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국방경비법에 따른 민간인 재판을 불법 판결로 볼 수 있다는 취지였다.고경태 기자 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