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홍보관에서 한 시민이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광고전수미 | 숭실대 교수·변호사 최근 2030세대의 정치·경제적 선택을 두고 보수화 혹은 극우화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경향이 짙다. 이는 시장의 자유를 중시하고 자산 증식에 몰두하는 표면적 현상을 이념적 잣대로 해석한 결과로, 현상의 이면을 전혀 들여다보지 못한 단견에 불과하다. 지금 청년들의 궤적을 이끄는 동인은 거창한 보수 이념이 아니라, 흐름을 놓치고 자신만 소외될 수 있다는 짙은 불안감, 즉 ‘포모(FOMO·소외 불안) 증후군’이 추동하는 절박한 생존 본능이다.이들에게 포모 증후군이 유독 강하게 작동하는 이유는, 지금의 2030세대가 부모 세대의 몰락과 사회 안전망의 실질적 부재를 동시에 경험한 최초의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연달아 목도하며, 국가나 기업, 조직이 위기 상황에서 결코 개인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뼈아픈 사실을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그 이후 이들 앞에 형성된 세계의 법칙은 잔혹하게 명확해졌다. 실패는 온전히 개인의 책임이 되었고, 재도전은 당연한 선택지가 아니라 극소수에게만 허락되는 예외로 굳어졌다. 2030에게 경쟁에서 한번의 탈락은 곧 영구적인 이탈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광고이러한 가혹한 조건 속에서 개인은 부조리한 판을 스스로 바꾸는 주체가 되기를 포기하고, 주어진 판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만 하는 수동적인 개체로 전락하고 만다. 2030에게 포모는 단순히 좋은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아쉬움의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조금이라도 밀리면 끝장이라는 극단적인 벼랑 끝 공포로 작동한다.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불편한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기성세대의 눈에는 지금의 2030세대가 이기적이며, 단기적인 행동 양식을 보인다는 점이다. 기록적인 주가 상승장 속에서 높은 이자의 압박을 감수하면서까지 맹목적인 이른바 ‘빚투’(빚내서 투자)에 뛰어드는 현상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이기심과 단기적 시야를 단순한 탐욕이나 도덕적 타락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근로소득만으로는 평범한 삶의 토대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타인의 수익을 질투하고 위험한 빚을 끌어쓰는 그 거친 행위들은 사실 내일을 도모하기 위한 불가피한 방어 기제다. 무지성과 이기심은 끊어진 사다리 위에서 벌이는 처절한 각자도생의 생존 무기가 되어버린 셈이다.광고광고이러한 청년들의 불안을 더욱 예리하게 증폭시키는 것은 기성세대와의 갈등보다, 세대 내부에서 벌어지는 뼈아픈 양극화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24시간 전시되는 극소수의 화려한 성공 신화는 평범한 청년들에게 깊은 상대적 박탈감을 안긴다. 특히 종잣돈의 유무에 따라 투자 기회마저 원천적으로 제한되는 부동산 시장의 높은 진입 장벽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구조적 좌절을 안겨준다. 지금 청년들이 기성 정치에 던지는 질문은 진보와 보수 중 어느 이념이 옳으냐가 아니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이 잔혹한 생존 게임의 규칙이 과연 공정한가에 대한 본질적이고도 피 맺힌 항변이다.진정 우려스러운 지점은 이들이 쫓기듯 올라탄 자산 시장이 언제 흔들릴지 모르는 위태로운 모래성이라는 점이다. 벼랑 끝에서 감행한 무리한 대출과 투자는 시장의 작은 변동에도 이성적인 판단을 단번에 마비시켜 개인의 삶을 회복 불가능한 수렁으로 이끌 수 있다. 이는 단지 개인의 실패로 끝나지 않으며, 신용불량자 양산과 막대한 복지 재정의 지출이라는 사회적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경제적 자립 기반을 상실한 청년의 증가는 곧 국가 미래 동력의 영구적인 상실을 의미한다.광고따라서 정치권은 청년들의 쏠림 현상을 이념적으로 재단하거나 표 계산의 도구로 삼으려는 낡은 관성을 거두어야 한다. 투자를 멈추라는 공허한 도덕적 훈계는 아무런 답이 될 수 없다. 정치권은 이념의 색안경을 벗고 그들이 발 딛고 있는 경제적 모순과 공포를 정면으로 직시해야 한다. 정직하게 땀 흘린 대가만으로도 내일의 희망을 설계할 수 있도록 노동의 가치를 시급히 복원하고, 출발선이 달라도 기회의 사다리에 오를 수 있는 공정한 시스템을 재건해야 한다.청년들이 시장을 향해 던지는 몸짓은 정치적 편향이 아니라, 어떻게든 이 사회에서 살아남게 해달라는 다급한 수신호다. 그들이 타인의 속도와 성공에 휩쓸리는 공포에서 벗어나, 세상의 과열된 흐름에서 비켜나는 것을 오히려 온전히 즐기며 자신만의 궤적을 그리는 ‘조모’(JOMO·고립의 즐거움)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정치가 타당한 구조적 해답을 내놓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