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조현이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그려달라고 요청해 제미나이가 인공지능으로 만든 이미지.광고예수는 ‘높은 산 위에 세워지고, 견고하게 만든 도시는 무너질 수도 없고, 숨겨질 수도 없다’고 말씀하셨다(도마복음 32).‘높은 산 위의 도시’는 분별심(에고)에서 완전히 깨어난 둘이 아닌 진리의 빛(참나)이며, 무너질 수도 없고 숨길 수도 없다. 그러나 골짜기는 ‘헛된 이 세상을 쫓는 물질적 삶’을 의미하는 이원성의 어둠(에고)이다. ‘모두는 본질적 하나이다’(에너지 일원론)라는 진리가 온 천하에 드러나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하나의 진리’(참나)를 자각한 자는 더욱 높이 올라, 정신과 물질, 신과 자연 등 이원성(에고)의 골짜기를 벗어나 높은 곳에서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를 갖게 되며, 어떠한 난관에도 내면의 빛을 발한다.우리가 ‘전체적인 시각’을 가지기 위해선 ‘이분법적인 사유’인 에고를 벗어나 깨어 있는 의식이 필요하다. 높은 영적 경지의 전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참나)는 모든 것을 평등 무차별하게 보는 평안을 맛보며(일미평등·一味平等), 무너질 수도, 숨겨질 수도 없는 둘이 아닌 하나이다(不二). 성경의 ‘내 안에 계신 아버지’(요한복음 14:10)는 자기중심적인 에고(이원성)의 죽음에 의해서만 드러나게 되는 진리(참나)이다. 바로 이사야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이사야 6:5)라고 고백한 에고(이원성)가 사라진 ‘하나 됨’(불이)이며, 불교적으로 인위적인 욕심·분별·집착이 없는 무위, 무심의 경지이다.광고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21)고 말씀하셨다. 천국(극락)은 외부를 향한 오직 믿음이 아니라, ‘높은 산 위의 도시’(진리)인 내면의 영원한 신성(불성)을 깨닫는 자(참나)가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유심극락·唯心極樂). 이때 일시적인 골짜기의 삶(에고)이란 연극이나 영화에서 그가 연기하는 역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의식이 높아질수록 더 넓은 시각으로 전체를 보지만, 의식이 낮아지면 그만큼 시각도 좁아진다. 깨달음으로 전체를 보는 예수와 부처에게는 모든 것이 지금 여기의 ‘영원한 현재’이며, 창조, 종말로 구분하는 시간은 사라진다(카이로스, 눅 12:56).‘높은 산 위의 도시’인 신성(참나)은 외부로 향하는 마음(에고)으로는 알 수 없다. 오직 분별하는 에고(이원성)를 소멸하여야 무너질 수도 없고 숨길 수도 없는 ‘하나의 자리’를 체험할 수가 있다. 성경은 ‘성령, 즉 내면의 신성(참나)으로 거듭남을 통해서 천국을 볼 수가 있다’(요한복음 3:3)고, 불경은 ‘불성(참나)이 바로 아미타불이요, 마음이 청정하면 현실 세계가 그대로 극락세계이다’(유심정토·唯心淨土)라고 한다. 모든 종교는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고, 시대와 문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진리’(참나)를 지향하고 있으며, 길은 달라도 결국 같은 본질의 산을 오르고 있다.광고광고무너질 수도, 숨길 수도 없으며,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진 신성(참나)은 시공간을 초월한 하나(불이)이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서는 보편적 신성의 빛(참나)이 발하고 있으므로 타인의 종교도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맹자는 ‘본성(참나)이란 본래 갖추어진 것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본성(참나)을 깨닫기 위하여 우파니샤드는 모든 사고의 부정인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를, 독일의 추기경인 쿠자누스는 ‘다른 것이 아닌 것’(일자·一者)을 방편으로 사용한다. 구분이 되어 있는 겉모습(허상)인 양파의 껍질(에고)을 계속하여 벗겨나가는 방법들이다.예수는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 3:3)고 하셨다.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된 공이지만(제법공·諸法空), 공(空)의 실상(진리)을 깨달은 자는 ‘견고하게 만든 도시’인 영원한 천국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진공묘유·眞空妙有).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이원적인 옛사람(에고)에서 벗어나 비 이원적인 새사람(참나)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새로운 탄생이란 예수가 죽은 나사로를 향하여 ‘나오라’(요한복음 11:43)고 하신 것처럼 ‘죽은 자’인 에고(육의 ‘나’)에서 무너질 수도 없고 숨길 수도 없는 영원한 생명(영의 ‘나’)으로 부활하는 것이다.광고따라서 모두는 한몸이며, 오직 신성(불성)뿐이다. 신성(참나)을 깨닫고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은 무너질 수도, 숨겨질 수도 없다. 그는 분별하는 이원성(에고)에서 깨어나 모든 존재를 하나로 본다(타성일편·打成一片). 전체로서 하나의 자리에서 볼 때 선과 악, 득과 실 등이 차별이 없는 것은 모든 모순이 통일되는 ‘대립의 일치’(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는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누가복음 14:27)고 말씀하셨다. 이원성(에고)을 죽이고, ‘높은 산 위에 세워진 도시’인 진리의 그리스도(참나)를 따르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이때 분별하는 제 목숨(에고)이 본래 없음을 깨닫고 불생불멸의 그리스도(참나)를 찾는 천국의 삶을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성경은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누가복음 17:21)고, 불경(佛經)은 ‘불성(참나)을 깨달으면 그것이 곧 극락이다’(육조단경)라고 한다.구자만(신학박사·개신교 장로·신흥지앤티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