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논밭 사이 커다란 그늘을 드리운 600년 된 느티나무. 하명희 제공광고하명희 | 소설가 얼마 전 옆 마을에 600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장님과 동행해 나무를 보러 갔다. 느티나무는 어느 집 마당을 가로지르고 논길을 지나야 만날 수 있었다. 600년이라는 시간의 그늘이 밭일하던 농부들의 쉼터가 되어주고 있었다. 이장은 근처에 그 나무의 아빠 나무가 있다고 했다. 엄마도 아니고 왜 아빠 나무냐고 물으니 “나도 모르지, 어릴 때부터 동네 어른들이 아빠 나무라고 불렀어”라고 했다.아빠 나무를 만나러 다시 논길을 지나 어느 집 닭장을 끼고 언덕을 올랐다. 나무 둘레는 훨씬 더 굵었지만 속이 비어 있어 절반은 시멘트로 채워진 아빠 나무의 가지는 쇠파이프 지지대에 묶여 있었다. 잘 자란 느티나무와 비교되는 늙고 노쇠한 노인 같았다. 그래서 아빠 나무라고 어른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빗대어 표현한 듯 보였다.광고동네에 숨어 있는 나무를 찾아다니게 된 건 지역에서 나오는 잡지를 본 이후부터다. 향토문화 잡지에서 ‘천리포수목원의 업무일지에 기록된 태안지역 수목기증의 고찰’이라는 글을 읽었다. 그 글에는 1976년부터 1979년까지 천리포수목원에서 주변에 기증한 나무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 주변 관공서와 의항·모항·파도·소원·시목·소근초등학교와 만리포중학교에 기증한 나무는 1800그루가 넘었다.나무 종류도 측백나무와 울타리용 매자나무, 보라색 매자나무, 풍나무, 산딸나무, 서양측백나무, 다정큼나무, 호두나무, 가래나무, 회화나무, 예덕나무, 단풍나무, 자귀나무, 광나무, 굴피나무, 채진목, 사철나무, 금사슬나무, 개나리, 층층나무, 노각나무, 참나무, 유가나무, 황벽나무, 마가목, 자작나무, 정향나무, 보리장나무, 풍년화, 재스민 등 다양했다.광고광고수목원을 조성하며 바닷가에서도 잘 자라는 나무를 골라 지역민들과 나누고 있었다는 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특히 초등학교에 기증한 나무들이 아이들과 함께 자랐을 걸 생각하니 “나무들의 은신처”를 만들어주고 싶었다던 민병갈 수목원장의 마음이 더 크게 다가왔다. 수목원은 수목원 안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기증 목록에 있는 초등학교들을 하나씩 둘러보았다. 제일 먼저 마을 입구가 개미허리처럼 잘록해 들물 때는 길이 끊기는 오지였다는 개미목마을로 향했다. 개미목마을 의항해변에는 소원초등학교에 속한 의항분교가 있는데, 학교가 바닷가 해변에 붙어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이 학교는 마지막 졸업생을 배출하고 신입생이 없어 몇년 전에 폐교되었다.광고폐교인 의항초등학교에서 꽃을 피운 태산목과 측백나무. 하명희 제공교문 입구에 있는 커다란 측백나무에선 참새들이 바글거리고 태산목이 커다랗고 하얀 꽃을 달고 있었다. 수령이 오래된 굵다란 동백나무도 교실 창밖으로 주르륵 서 있었다. 아이들이 떠난 학교에 남은 물개 동상처럼 이 나무들을 기억하는 아이들이 한둘은 있겠지 싶었다. 학교를 새로 지은 모항초등학교, 소원초등학교를 거쳐 파도리에 있는 파도초등학교로 향했다. 파도초등학교는 폐교된 지 오래되어 풀들을 헤치고 들어가야 했다. 아이들이 떠난 그곳에도 오래된 동백나무가 굵게 자라고 있었다.오래전 심어 놓은 나무를 찾으러 나선 길에서 만난 건 아이들이 떠난 후에도 폐교를 지키고 있는 나무가 있는 풍경이었다. 그것은 측백나무에서 열매처럼 열린 참새들을 보며 웃었을 아이를, 다정큼나무라는 이름 앞에서 다정한 표정을 지었을 아이를, 떨어진 붉은 꽃을 다져 손톱에 물을 들였을 아이를 상상하게 했다. 나무는 그 아이들에게는 혐오나 조롱이라는 단어보다 먼저 바람을 흔드는 나무의 말을, 하늘을 향해 꽃을 피운 향기를, 붉은 동백이 뚝뚝 떨어지던 순간을 선사했을 것이다. 마늘을 캐다 아빠 나무까지 보여주겠다고 기꺼이 동행해준 이장님처럼 나무는 그런 아이를 분명 한명은 키웠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