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시트카가문비나무의 굵은 줄기와 가지 사이에서 란융샹이 로프에 몸을 맡긴 채 이동하고 있다. 수피와 가지 위로 이끼와 지의류가 두껍게 내려앉아 있다. 땅에서 한 그루로 보이던 나무는 가까이 다가가면 여러 생명이 기대 사는 지형이 된다. 사계절 제공 광고나무 꼭대기에 오르면 감각하는 세계가 통째로 달라진다. 타타자안부(塔塔加鞍部·위산 국립공원의 원시림)의 대만편백나무 한 그루에 오른다는 것은, 그 숲이 버티고 선 기후와 지형을 몸으로 읽는 일이다. 능선과 안부 사이로 밀려드는 안개, 산허리를 타고 가지 사이에 걸리는 차가운 습기, 얇은 흙 위 낙엽과 부식토, 그 위를 덮은 이끼의 축축하고 폭신한 감촉이 함께 다가온다. 땅에서 올려다볼 때 나무는 곧게 선 줄기였지만, 몸을 매달고 올라가면 줄기는 하나의 지형이 된다. 갈라진 수피의 홈은 작은 골짜기처럼 깊고, 손바닥으로 짚은 가지에는 바람과 비와 햇빛이 지나간 시간이 남아 있다. 나무 위에 오르면, 땅이 나무의 몸을 타고 어디까지 올라와 있는지가 보인다. 나무 꼭대기에서 내려온 사람은 예전의 지상으로 그대로 돌아오지 못한다. 더듬어보면 그런 변화는 우리 일상에서도 조용히 일어난다. 비 온 뒤 한겨레신문사 주변 서울 공덕동 거리 느티나무의 수피 아래 짙어진 붉은 속살이 문득 애처롭게 눈에 들어오고, 서울서부지검 담 안 향나무의 새순이 어느 날 눈앞에 성큼 돋아난다. 같은 자리에서 버티는 나무를 반복해 바라보는 일은 사람을 가라앉히고, 다시 일으켜 세운다.광고 그 변화는 나이테처럼 몸 안에 작은 결을 남긴다. 한번 오르고 내려온 경험이 1년, 2년, 20년 쌓이면 익숙했던 숲은 전혀 다른 세계로 다시 펼쳐진다. 나무 꼭대기에서 숲의 생명 활동을 읽어온 여성 수관생태학자 란윤샹(42·藍永翔)은 2025년 ‘나무 꼭대기를 여행하다’(旅行在樹梢)로 대만 최고 권위 문학상인 금전장을 받았다. 나무 꼭대기를 여행하다 l 란융샹 지음, 강영희 옮김, 사계절, 2만6000원 한마디로 이 책은 오래 보고 다시 내려오는 법을 배운 사람의 기록이다. 출발은 우연에 가까웠다. 2005년 겨울, 뜻밖의 계기로 처음 로프를 타고 나무에 오른 일이 이후 20년에 걸친 수관 연구의 시작이 됐다. “나무에 오를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어요!”라는 말에는 학자의 계획보다 먼저, 몸이 먼저 알아본 방향이 있다. 대만편백나무는 그 마음을 받아준 첫 나무였다. 그곳에서 란윤샹은 “수백 년 동안 살아 숨 쉰 나무의 목덜미”를 끌어안는다.광고광고 그 감각은 곧 잎 한장으로 좁혀진다. 수관 연구의 초입에서 그는 대만가문비나무에 올라 침엽을 채집하고, 잎의 나이와 탄소·질소, 비구조성 탄수화물의 변화를 따라간다. 매달 같은 나무의 같은 가지를 찾아가는 동안, 한 나무를 오래 본다는 일이 몸에 남는다. 이후 미국 오리건주로 유학을 떠났을 때, 대만의 산은 태평양 건너 숲으로 이어진다. 시트카가문비나무 앞에서 그는 오래 바라보던 가문비나무의 친족을 만나고, 잎 하나를 따라가던 시선은 빙하기와 해안선, 바람과 씨앗, 고립과 적응의 시간으로 넓어진다. 나무 꼭대기서 숲의 생명 활동 읽어온 생태과학자 란융상. 사계절 제공 대만문학상 금전장 심사평은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선물로 저자의 “독보적인 삶의 경험”을 꼽았다. 이 책은 탄탄한 현장 조사와 학문적 토대 위에서 나무의 위아래를 오르내리고 안팎을 넘나든다. “나무 위에서 서핑”하고, 오래된 가지 위 이끼 카펫에 앉아 쉬고 관찰하는 동안, 과학은 손과 발의 감각을 통해 더 깊어진다.광고 멀리 보기 위해 오른 자리에서 그는 더 가까운 것들을 보게 된다. 높이 오를수록 시선은 낮고 축축한 곳으로 가라앉는다. 귀족전나무의 가지 사이를 로프에 매달려 미끄러지던 “트리 서핑”의 환희는 태풍 뒤 숲의 “나무 몸통이 내지르던 비명”과 이어진다. 쓰러진 줄기 안에서는 균류가 단단한 리그닌을 천천히 풀어낸다.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독의 숲이 세계를 정화했듯, 균류는 죽은 몸을 풀어내고 다음 생명이 뿌리내릴 시간을 만든다. 나무 위에 오르면 아래가 다시 보이는 순간이 있다고 란융샹은 말한다. 사계절 제공 그때 란윤샹은 “우뚝 솟은 나무 끝”의 비밀을 좇느라 “발밑의 땅을, 숲 바닥의 생태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일”을 놓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위에 올라가서야 아래가 다시 보이는 순간이다. 잎 한장의 질서, 균류가 죽은 몸을 풀어내는 시간, 쓰러진 줄기가 다음 생명을 받치는 방식을 지나온 뒤에야 “문득 울고 싶다”는 감정이 이해된다. 숲이 삶과 죽음을 함께 품고 움직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사람의 반응이다. 숲의 시간은 자이언트세쿼이아의 탄 수피 앞에서 또 다른 몸을 얻는다. 불에 탄 흔적, 갈라진 껍질, 벼락과 가뭄과 산불이 지나간 자리를 품고도 나무는 계속 선다. 다시 대만의 산으로 돌아왔을 때, 대만편백나무의 목덜미, 대만가문비나무 잎의 장부, 시트카가문비나무로 이어진 숲의 친족들, 쓰러진 줄기의 자리, 탄 상처가 한꺼번에 겹쳐 들어온다. 란윤샹은 그제야 “비로소 다시 새로운 산” 앞에 선다. 오르고 내려오는 동안, 한 사람의 시선에도 아주 느린 나이테가 생겨난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나무 위를 ‘서핑’하는 과학자…높이 오를수록 낮은 곳이 보였다 [.txt]
나무 꼭대기에 오르면 감각하는 세계가 통째로 달라진다. 타타자안부(塔塔加鞍部·위산 국립공원의 원시림)의 대만편백나무 한 그루에 오른다는 것은, 그 숲이 버티고 선 기후와 지형을 몸으로 읽는 일이다. 능선과 안부 사이로 밀려드는 안개, 산허리를 타고 가지 사이에 걸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