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게티이미지뱅크광고서울행정법원이 지난달 25일 지적장애인인 소송 당사자에게 판결 내용을 쉬운 표현으로 요약한 판결문(이지리드·Easy read)을 공개하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접근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재판 당사자가 장애인인 형사사건에서도 ‘선고 후 안내문’을 이지리드 방식으로 작성한 사례가 나왔다. 다만 이같은 흐름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개별 판사의 노력에 기댈 것이 아니라 제도적 보완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수원지법 안산지원 형사2부(재판장 박지영)는 지난 5월28일 중증 지체장애인 ㄱ씨가 성폭력처벌법의 장애인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하면서 치료감호명령을 내렸다. 재판부는 선고 내용과 향후 절차를 읽기 쉬운 이지리드 방식으로 작성한 안내문을 ㄱ씨에게 전달했다. 안내문을 보면 재판부는 “피고인은 원칙적으로 2년6개월 감옥에 가야 합니다”, “그러나 피고인에 대해 병원에서 정신과적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명령하므로, 피고인은 감옥에 가는 것보다 치료를 먼저 받게 됩니다” 등 쉬운 표현을 사용해 치료감호 과정을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이 판결 내용에 대해 억울하면 판결선고일로부터 7일 이내에 (2026.6.4.까지)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종합민원실에 직접 또는 우편으로) 등에 항소장을 제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수원고등법원 형사재판부에서 이 사건에 대하여 다시 재판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적었다.보통 법원이 치료감호를 선고할 경우 판결문 주문에 “피고인을 징역 2년6개월에 처한다. 피치료감호청구인을 치료감호에 처한다” 등으로 표현한다. 이처럼 짧고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자세히 풀어 안내문을 작성한 것이다.광고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강우찬)가 지난달 25일 작성한 이지리드 판결문 속 삽화. 서울행정법원 제공판결문을 쉽게 작성해야 한다는 흐름을 이끈 것은 현재 서울행정법원의 강우찬 수석부장판사다. 강 부장판사가 재판장으로 있는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는 지난달 25일 지적장애가 있는 유아무개(26)씨가 서울 양천구청장을 상대로 지적장애인 등록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아울러 판결문을 “원고 ㅇㅇㅇ이 재판에서 이겼습니다”, “소송에 들어간 돈은 구청이 냅니다” 등 쉬운 표현으로 작성했다. 판결문에는 원고가 이해하기 쉽도록 삽화도 포함됐다.강 부장판사는 2022년 최초로 이지리드 판결문을 만들었고, 그 뒤 사법부에서는 내부 연구와 예규를 마련해왔다. 지난 2024년에는 사법정책연구원에서 이지리드 판결문 작성 방법이 포함된 연구 보고서가 나왔다. 올해부터 시행된 장애인 등 사법지원 관련 대법원 예규에는 ‘재판장은 재판 당사자인 장애인에게 필요한 경우 이해하기 쉬운 판결서를 제공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광고광고이지리드 형식으로 판결문 등을 작성할 근거는 마련돼있으나, 이를 활용하는 사례는 극히 적다. 특히 이지리드 판결문은 강 부장판사가 쓴 판결문 3건을 비롯해 아직 소수에 그친다. 장애인 변호 경험이 많은 최정규 변호사는 “의지가 있는 재판부만 이지리드 방식으로 판결문을 작성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를 어떻게 시스템화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법원 내에서는 이지리드 판결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이를 보편화하기 위해서는 법관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기본적으로 좋은 시도인 거 같다”면서도 “이번 판결문의 경우 판사 개인의 노력으로 이뤄진 건데 실제 내가 한다고 생각하면 쉽지 않을 거 같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 당사자한테 진짜 도움이 되고 이해하기 쉬운 판결문이 어떤 것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판사들이 사건 처리를 위해 허덕이는 상황이라 이지리드 방식으로 판결문을 쓰는 일이 쉽지 않아 보인다. 법원 안에 전담 부서를 만들어서 판결을 이지리드로 변환해서 보내주는 방법도 고려해보면 좋을 거 같다”고 했다.광고사법정책연구원에서 이지리드 판결문 관련 연구를 한 권형관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재판부 합의는 비공개이므로 판결 선고 전 외부 인력을 쓰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법원 내부에 이지리드 판결문 작성을 보조할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는 의견을 밝혔다.이나영 기자 ny3790@hani.co.kr 김수연 기자 l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