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27일(현지시각) 호르무즈해협 인근 오만 북부 무산담반도 앞바다에 배들이 정박해 있는 모습을 항공 촬영한 사진. AFP 연합뉴스광고정의길 | 국제부 선임기자 중동 탈출과 아시아·태평양 귀환. 20년 넘게 미국 대외정책의 중심축이었던 이 기조는 도널드 트럼프가 이란을 향해 첫번째 폭탄을 투하한 순간에 더 망가졌다. 지금 미국은 전술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패전국이다. 대가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훨씬 오래 지속될 것이다.대양을 건너 전력을 투사하는 미국만이 가진 군사력 우위는 두 축 위에 서 있다. 전세계에 산개한 미군기지와 기지 접근권, 그리고 수천만달러짜리 정밀유도무기들. 이란 전쟁은 이 두 축을 동시에 의심에 빠뜨렸다. 이란의 탄도미사일과 드론 포화 속에 중동 전역의 미군기지는 난타당했다. 중동과 유럽의 동맹국들은 미군의 자국 영토 출격이나 통과를 거부했다.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에서 패트리엇 요격미사일까지, 각 무기 체계별로 재고의 30~80%가 소진됐다. 전체 정밀유도무기 재고의 절반이 이 전쟁에서 불탔다.광고그 결과가 호르무즈해협이다. 해협의 통제권을 미국은 잃었다. 이란은 핵억지력보다도 더 강력하고 상시적인 카드를 손에 쥐었다. 전쟁 없이도, 핵무기 없이도 세계 에너지 공급망 전체를 인질로 잡을 수 있는 ‘호르무즈 억지력’이다. 종전 양해각서 체결 8일 만에 미-이란이 다시 교전에 들어가 사흘간 충돌이 이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트럼프는 패배를 감추려 하고, 이란은 호르무즈 관할권을 각인시키려 한다. 이 구조적 긴장은 어떤 협정서에 서명한다고 해소되지 않는다.이스라엘은 미국의 수렁을 더 깊게 판다. 이란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혹을 뗀 것이 아니라 혹을 더 붙였다. 이란은 제재 해제로 재정을 회복하고, 미사일·드론 생산을 재개하며, ‘저항의 축’ 전체를 재건할 것이다. 레바논 헤즈볼라는 전쟁 중에도 이미 이스라엘 북부에 대한 지속적인 타격 능력을 과시했다.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는 미군기지를 압박해 철수를 강제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예멘의 후티와 가자의 하마스는 재무장의 시간을 얻었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실존적 위협이 제거되기는커녕 더 복잡한 다층적 포위망 속에 놓이게 됐다.광고광고워싱턴 대외정책 서클에서 여전히 주류인 패권론자들은 이 현실을 수용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미군 철수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테러 위협 재구축을 반복 경고했던 미 정보기관들의 ‘관료적 합의’의 타성과 이해관계가 지금도 작동 중이다. 이스라엘 로비의 정치력은 의회 예산과 대통령 결정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 이 구조 속에서 미국은 호르무즈를 둘러싼 소모전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역사는 분명한 교훈을 남겼다. 베트남전을 마치게 한 1973년 파리평화협정 이후 미국은 2년 뒤 사이공 함락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봤다. 그러나 베트남전 패배가 초래한다고 경고했던 동남아 공산화 도미노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베트남과 중국이 전쟁을 벌이며 서로 견제했다. 미국은 패배의 현실을 수용함으로써 중국과의 관계정상화로 나아갔고, 이는 소련을 붕괴시킨 미-중 연대의 밑바탕을 깔았다. 2021년 8월 카불 함락과 미군 철수 5년이 지난 아프가니스탄은 1979년 이후 가장 긴 평화를 누리고 있다. 서방의 안보를 위협한다는 글로벌 테러분자의 온상화는 진행되지 않았다. 미국이 박멸하려 했으나 실패했던 양귀비 재배는 95% 줄었고, 탈레반은 오히려 이슬람국가(IS)와 알카에다를 소탕하고 있다.광고보수 논조의 월스트리트저널도 29일자 사설에서 “이란이 호르무즈 싸움에서 이기고 있다”고 인정했다. 현실은 이미 거기에 있다. 이란의 호르무즈 관할권 주장은 탐욕이 아니라 생존 논리다. 이란은 국제사회와 체결한 핵합의인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을 일방 파기하고 전쟁을 도발한 미국을 신뢰할 수 없다. 물리적 통제력만이 보장 수단이다. 이란은 이미 호르무즈 통제권의 절반을 쥐었다. 그것이 현실이다. 나머지 절반은 국제사회가 쥐고 있다. 미국이 이란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평화를 유지한다면, 그 절반은 봉쇄가 아닌 개방으로 쓰일 것이다.중동 수렁에서 빠져나와 아시아·태평양으로 가는 길은 군사적 승리 선언이 아니라 패배의 직시에서 시작된다. 현실을 인정하는 것만이 전략적 전환의 첫걸음이다. 적어도, 미국이 트럼프 치하에서 그럴 가능성은 요원하다. 그동안 아시아·태평양에서 미국의 자리는 더욱 줄어들고, 중국의 자리는 커지고, 그럴수록 아시아의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요구와 압박은 거세질 것이다.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