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 서제인-이주혜 인터뷰 리디아 데이비스·비비언 고닉 작품 번역 “관조하기보다 정면돌파해 써내는 사람 좋아해” 페미니즘 대중화 10년… “상처 있지만 소중함 남았다” 26일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대담하는 이주혜 번역가(왼쪽)와 서제인 번역가가 각각 자신이 옮긴 리디아 데이비스의 책을 들고 있다. 이 번역가가 든 책은 ‘못해 그리고 안 할 거야’, 서 번역가가 든 책은 ‘세부 속으로’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광고누가 뭐래도 끝까지 정직하게 쓰는 것, 독자의 비위에 맞추지 않고, 누가 좋아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쓰는 것이 가능할까. 어차피 자기만 읽을 일기를 고치는 일, 아무도 몰라줄지언정 정확한 표현을 향해 나아가며 정교한 기술을 적용하는 일은 어떤 은밀한 즐거움을 주는 걸까.광고 1947년생 미국 원로 작가 리디아 데이비스는 그렇게 써 왔다. 거의 팔순의 나이임에도 여전히 갱신하는 글쓰기를 보여주는 데이비스는 “자신이 발명한 문학 형식의 대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2013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는 등 많은 인정을 받은 작가이며 마르셀 프루스트와 귀스타브 플로베르 작품의 유명한 영어 번역가이기도 하다. 그의 책을 한국어로 옮긴 두명의 여성 번역가가 26일 저녁,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여는 서울국제도서전 무대에 올라 이야기를 펼친다. 한명은 데이비스의 ‘형식과 영향력’(2024)에 이어 최근 신간 ‘세부 속으로’를 옮긴 서제인 번역가이고, 또 한명은 ‘못해 그리고 안 할 거야’(2024)를 옮긴 이주혜 번역가다. 데이비스가 그랬듯 이들 역시 작가로도, 번역가로도 일했다. 아이를 낳고 돌본 일도 셋의 공통 경험이다.광고광고(왼쪽부터) 이주혜, 서제인, 리디아 데이비스, 비비언 고닉.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에트르 제공 6월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 두 번역가를 초청해 여성의 글쓰기와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데이비스는 어떤 사람이고, 여자들은 왜 글을 쓰고 옮기는지, 망해가는 이 세계에서 글쓰기는 우리를 구원할 것인지 등 거대한 화두를 테이블에 던져 놓았다. 먼저, 서제인 번역가는 데이비스에 대해 “허무의 맛을 아는 작가”라고 했다. “이 사람의 뇌 구조를 들여다보는 게 매번 흥미롭거든요. 별로 두려움을 느끼거나 타협을 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에 막 몰두해서 열심히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항상 흥미롭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허무의 맛’을 아는 작가로서 좋아해요.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다 허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작가는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저는 느껴요. 글을 길게 썼다가 다 깎아내고 잘라버리고 마치 뼛조각의 일부의 일부만 남겨놓는 것처럼 짧은 글을 주로 쓰는 것도 아마 그래서인 것 같다고 생각이 듭니다.” 데이비스는 메시지를 전하거나,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한다거나, 특정한 청중을 위해 쓰거나, 누군가 감동시키려고 쓰지 않는다고 했다. 젊은 시절엔 이야깃감을 찾아 밖으로 나가기도 했지만, 대가가 된 그는 이제 이야기가 찾아들 때까지 기다려 집요하게 메모하고, 빙글빙글 주변부를 우회하면서도 끝끝내 길을 잃지 않고 할 말을 한다. 이주혜 번역가는 “위계도, 억압도, 강요도 없는 글쓰기”라고 했다. “내 생각과 내 주제 의식을 너에게 이해시키겠어, 이게 아니라 ‘나는 이렇게 보고 있는데, 네 나름대로 한번 느끼든지, 이해하든지’ 같은 태도, 그러니까 사실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친절한 거지요. 위계도 억압도 강요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친절한 태도일 수도 있는, 그런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그러니 옮길 때도 이 이상한 ‘불친절한 친절’ 그대로, 여지를 남기는 번역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똑같이 그냥 독자로 헤매야 하는데 그런 게 곱씹어 볼수록 매력적인 작가죠.”(이주혜)광고세부 속으로 l 리디아 데이비스 지음, 서제인 옮김, 에트르, 1만8000원 많은 여성이 육아와 가사 노동에 몰두하다가 가족 모두 잠든 새벽에 읽고 쓴다. 미국 작가 오드리 로드가 말했듯, 글쓰기의 형식은 계급적 문제이자 동시에 젠더 문제다. 산문을 쓰려면 자기만의 방, 종이, 타자기(컴퓨터), 결정적으로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마이크로 단편’이라고 할 정도로 짧은 글이 많은 데이비스의 이야기는 독박 육아를 하는 여성도 짬짬이 읽을 수 있다. 이주혜 번역가는 “데이비스의 글에는 아무리 짧아도 여운이 있다”고 했다. “여성 작가들이 짧은 시와 단편을 쓰고, 여성 독자들이 이런 장르를 많이 읽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다들 짬을 내서 쓰고 읽기 때문입니다. 데이비스의 글이 짧고 ‘거대 서사’ 같은 것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긴 글을 써서 쳐내는 방식으로 써 왔기 때문에 오히려 비경제적인 글쓰기예요. 게다가 ‘거대 서사’라고 늘 역사와 철학을 길게 보여줘야만 하는 건 아니에요. 도스토옙스키는 원고료를 한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길게 썼던 거라고 하죠.”(이주혜)못해 그리고 안 할 거야 l 리디아 데이비스 지음, 이주혜 옮김, 에트르(2024) 짧은 이야기를 쓰지만, 데이비스의 문장은 간단하지 않다. 종속절에 종속절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말을 길게 늘여가는데, 이런 복잡한 문장은 종종 번역가의 고민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왜 글을 쓰고, 어디서 즐거움을 어디서 찾을까. 요즘 장편을 쓰고 있다는 이주혜 번역가는 “고통스러운데 왜 쓰지, 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하다가도 소설을 쓸 때 어느 순간 이 사람, 이 장면이 정말 경험한 것처럼 찾아왔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내가 너무 납작하게, 남의 삶을 함부로 가져오는 건 아닐까, 내지는 정말 현실성이 없는 걸 내가 만들어 내나, 하는 의심을 계속하면서 쓰게 되죠. 어느정도 그 허들을 넘은 다음에 완결이 돼서 독자에게 하나의 세계로 다가갔다는 게 느껴질 때는 굉장한 기쁨이 있는 것 같아요.” 서제인 번역가는 “간혹 글을 쓸 때 느끼는 기쁨이 있다면, ‘이런 것’이 실제로 존재했다, ‘이런 세계’, ‘이런 사람’이 정말로 세상에 있었다, 없지 않았다, 라는 사실을 남겨놓는 것이 좋기 때문”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제 안에 있는 어떤 진실을 혼돈 속에 흩어지게 두지 않고 정리를 해서 존재하게 해놓고, 그 다음 삶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써두는 것 같기도 합니다. 데이비스의 ‘세부 속으로’에 나오는 말로 하자면, ‘그것을 기록하고 기념하고 그것에 감탄하고 이야기하면서 음미하고 다시 체험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나오는데, 저도 그런 걸 하는 게 기쁜 것 같아요.”(서제인) 번역은 다른 세계를 옮겨 놓는 일이기도 하다. 20~30대 시절부터 가끔 아르바이트 삼아 번역을 하다가 5~6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출판 번역을 해오고 있는 서제인 번역가는 지난해 시사주간지 ‘시사인’이 선정한 ‘올해의 번역가’로 뽑히기도 했다. 그는 “번역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갈수록 좋아하는 마음이 크고 정말 잘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번역은 타자를, 세계를 만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이라서다. 최근 그는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을 옮겼다. 가자 지구의 증언이자 저항 문학으로서 이 책은 번역가 겸 연구자인 알라 알카이시라는 저자명을 한국 사회에 또렷이 새겼다. 알카이시의 책은 서제인 번역가가 유일하게 출판사에 먼저 작가를 소개해서 낸 책이다. 그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인 ‘기아 학살’을 보고 팔레스타인 작가들의 글과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사람, 타인을 다룰 때는 구체성을 확보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올바른 태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테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고 하면 비극의 피해자라는 식으로 한 덩어리로 생각하기 쉬운데, 알카이시가 말한 것처럼, 삶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와 아무것도 다를 바 없이 다양한 면모를 갖춘 진짜 사람들이거든요. 거기 있는 것을 누락하거나 추상화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옮기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서제인) 이주혜(왼쪽), 서제인 번역가가 15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주혜 번역가는 2000년대 초반, 30대 때 번역을 시작했다. 처음엔 거실에 책상을 놓고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육아서, 양육서 번역을 먼저 하다가 조 월튼 등 여성 작가들의 에스에프(SF)를 옮겼다. “‘페미니즘 리부트’가 막 시작되었을 때고, 장르 전문 출판사쪽에서도 여성 작가들의 책을 막 발굴해서 내기 시작할 때”였다. 영국 여성 추리소설가 피.디. 제임스(P.D.James)의 ‘피부 밑 두개골’,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 같은 탐정 코델리아 그레이 시리즈 등을 옮기면서 소설도 같이 쓰기 시작했다. 그는 “번역엔 정치성이 있기 때문에 한 단어 한 단어가 두려운 일”이라고 했다. 특히 10년 전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번역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부부간의 대화에서 남성이 반말을 쓰고, 여성이 존대를 쓰도록 옮기는 일은 이제 거의 없다. ‘미망인’이란 단어가 사라져갔고, ‘유모차’가 ‘유아차’로 바뀌었으며 여성혐오적 단어들도 대체어가 생겼다”고 했다. 장애와 동물권 이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주혜 번역가조차 에이드리언 리치의 산문집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2017)를 번역한 뒤엔 독자의 뾰족한 피드백을 받았다. “리치는 워낙 래디컬한 페미니스트고 그래서 제가 번역을 할 때 그 단어들을 정확하게 옮겨야 된다는 생각으로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굉장히 많은 단어를 고민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고치려고 노력했는데 독자의 지적이 있었어요. ‘시아버지’(father-in-law)란 단어였는데 리치의 글이라면 ‘남편의 아버지’라고 옮겨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he)나 ‘그녀’(she)라는 단어도 고민이죠. ‘그녀’를 모두 ‘그’라고 옮겼을 때 오히려 정체성이 왜곡되고 정확하지 않게 느껴질 때가 분명히 있거든요.” (이주혜) 에이드리언 리치. 서제인 번역가도 개나 고양이를 ‘놈’이나 ‘녀석’이 아니라 ‘그’라고 표현해달라는 의견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동물권에 관심이 많은 어느 독자분께서 동물에게도 ‘그’라고 표현해달라고 했는데 독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올바른 선택일지라도 생소한 게 나오면 독자들이 의아할 수 있고, 의도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고민”이라고 했다. 이주혜 번역가는 “100% 수용할 수는 없을지라도 정치적인 올바름에 대한 문제제기들이 귀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미국의 급진 페미니스트 비평가이자 이민 가정 출신의 뉴요커 저널리스트인 비비언 고닉의 작품을 옮긴 인연도 있다. 서제인 번역가는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2022)를, 이주혜 번역가는 ‘멀리 오래 보기’(2023)를 옮겼다. 고닉은 작가로서 누구보다 정확하면서도 정치적 올바름을 고민하고 정직하게 쓰려고 노력한 사람이었다. “정직하지 않은 글은 쓰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는 서제인 번역가는 고닉에 관해 “굉장히 정직한 작가”라고 평했다. “민감하고 예민한 사람이에요. 고닉은 인간이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나 여러가지 감각을 통해서 느끼게 하는 사람이고, 끔찍한 걸 똑바로 노려보고 자기연민이라곤 전혀 없이 끝까지 다 말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땀 뻘뻘 흘리면서 정면 돌파를 해서 결국 써내는 사람이고요. 저는 우아하게 관조하는 사람보다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편입니다.”(서제인) 이주혜 번역가는 냉철하지만 냉소적이지 않은 면을 고닉의 장점으로 꼽았다. “고닉은 분석적이고 권위도 있고 비평적인 비평가이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냉소를 하지 않아요. 저는 글쓰기의 진짜 무덤이 냉소라고 생각합니다. 1970년대 ‘페미니즘 제2물결’ 당시 미국 페미니스트들이 서로 싸울 때도 고닉은 ‘결국은 승리할 것이다’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더군요. 어떻게 해서든 그 분열을 딛고, 어떻게 해보려는 그런 시도를, 글로써 하더라고요. 저는 그게 대단히 귀한 글쓰기라고 생각하고, 배우고 싶은 태도입니다.”(이주혜)서제인(왼쪽), 이주혜 번역가가 15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미국에 ‘페미니즘 제2물결’이 일었던 1960~80년대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 아래 평등과 자유에 대한 여성의 열망이 들끓고 상처도 폭발하던 시기였다. 저널리스트였던 고닉은 투쟁 현장 속으로 들어가 ‘여성해방’을 다뤘고, “먹물 수정주의자”라는 비난도 함께 받았다. ‘페미니즘 리부트’라 불리는 한국의 상황에서도 비슷한 갈등이 있었다. 서제인 번역가는 고닉의 글을 읽으며 그때가 떠올랐다고 했다. “여성연대 해체에 관해서 고닉이 쓴 글이 제가 한국에서 ‘페미니즘 리부트’를 경험하고 그 거대한 물결이 사그라들었을 때의 느낌과 거의 일치했거든요. 여성들끼리 처음에는 사랑하다가 온갖 상처를 주고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페미니즘이 자신에게 굉장히 소중한 걸로 남았다고 고닉은 분명히 말하는데, 제게도 그렇더라고요.”(서제인) 2010년대 중반 이후 ‘페미니즘 대중화’ 시기에 페미니스트들은 예리하게, 오랫동안 서로 상처를 내면서 공격했다. 반론과 재반론이 이어지며 공동체가 해체되기도 했다. 지난 10년에 대해 서제인 번역가는 “개인적으로 가장 큰 변화는 연결되고 싶다는 감각을 갖게 된 일”이라고 말했다. “꼭 여성끼리만의 연결이 아니라 다른 세계, 다른 사회운동,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하고 좀 더 연결되고 싶다는 거죠. 자신이 피해자였음을 깨닫는 것도 실은 굉장히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인데, 그걸 깨닫자마자 별다른 준비 없이 힘든 싸움에 바로 나서야 했던 여성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쳤던 사람들도 많았고요. 개인적으로는 연결보다 단절을 많이 경험했는데, 그래선지 오히려 지금은 더 연결을 원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10년 동안 많은 연결이 만들어지는 것을 봐 왔고, 인상 깊었고, 이젠 정말 다른 세계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서제인) 나라 안팎에서 여성 작가, 독자, 편집자들이 맹렬하게 활약하며 ‘여성 서사의 시대’를 열어젖힌 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요즘 누가 여성 서사를 얘기하느냐’, ‘왜 아직까지 모녀 서사냐’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이주혜 번역가는 “인간이 인간 얘기하는 게 당연하듯 여성이 여성 이야기를 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됐다”면서도 “‘압제자의 언어’라도 써야 한다던 에이드리언 리치와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했던 오드리 로드 사이의 언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 쓰는 여자들은 어머니가 피해자의 언어를 쓰든, 아버지의 대행자인 압제자의 언어를 쓰든, 그런 어머니와 대면해 보고 통과도 해보고 이해하려는 노력도 합니다. ‘아직도 모녀 서사야?’ 그런 반응을 볼 때마다 좀 슬퍼요. ‘아직도’ 멀었다, 더 할 얘기가 엄청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양한 언어, 다양한 딸, 다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저는 계속 읽고 싶습니다.”(이주혜) 서제인 번역가 또한 “(글 쓰는 여자들은) 피해자이기도 했지만 가해자이기도 했던 어머니의 세계를 어떻게든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 같다. 딸들은 언어와 지식의 세계로 넘어가면서 그 세계를 갖지 못했던 어머니의 입장을 함께 가져갈 것인지 배신하고 떠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2026 서울국제도서전 글항아리 부스에서 판매중인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 생활’. 벌써 2쇄를 찍었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은 “도서전 현장에서 2030여성들이 무척 많이 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서제인 옮김)을 쓴 알라 알카이시는 “무관심을 거부하는 독서, 스스로에게 변화를 허락하는 독서”를 바란다고 적었다. 가자지구 사람들이 손이 부서져라 자판을 두들겨 울부짖고 타전하지만, 소리를 들었음에도 침묵하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서제인 번역가는 “나한테 상처를 내는 독서가 좋다. 내가 얼마나 무지하고 부족했는지, 부끄럽게 만들어 주는 독서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의 번역과 창작 모두 중심에 ‘읽기’가 있다”고 여러 차례 말할 정도로 읽기를 중시하는 이주혜 작가는 독자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저는 정말 모든 걸 책으로 배워요. 그렇지 않았으면 몰랐을 세계를 알게 되는 거죠. 팔레스타인 학살, 코소보 인종 학살 등 막연히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깊은 이야기를 소설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어요. 도끼가 되어서 내 정수리를 내리치는 독서, 읽기는 정말 나를 뒤흔들 때가 있거든요. 나를 흔들어 놔야 내가 어리둥절해지고, 나를 확장하게 되고, 적어도 주저앉아 있지 않게 되거든요. 그런 읽기가 소중해서 계속 읽게 됩니다. 독자들에게도 부탁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분명 어려울 수 있지만, 상처받을 수도 있고 힘들 수도 있지만, 좋은 점이 분명 있을 수 있다고, 그 좋음을 나누자고, 부디 용기를 내서 읽어 달라고요.”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