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강소영 대표가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얼굴들’ 문 앞에 섰다. 거울 주위로 독립출판물 시리즈 ‘얼굴-들’ 시즌 1이 붙어 있다. 이 시리즈는 경주 너른벽, 광주 이것은서점이아니다, 광주 소년의서, 고양 유월의숨, 제주 무명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광고“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좋은 점이 있죠. 패널도, 참가자들한테도 이점이 있어야 하고요. 그게 저에게는 더 중요합니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출판이든 공간 운영이든 하는 거죠.”속물적인 질문부터 던졌다. ‘밑지는 장사 아니냐’고. ‘얼굴들’ 강소영 대표는 “‘남는 장사’를 하는 건 확실히 아닌데, 환산할 수 없는 공(功)을 ‘밑짐’과 ‘남김’으로 따져 보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2025년 11월11일, 강 대표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 자락에 자그마한 ‘복합문화공간’을 열었다. 취재진이 찾은 9일 오후에도 행인이 기웃거리며 사진을 찍어댈 정도로 정체가 ‘복합’적인 곳이었다. ‘얼굴들’은 각종 탐독회와 북토크, 세미나가 열리는 북살롱 겸 출판사이며, 카페이자 음감회가 열리는 연주회장이다. 출판과 예술, 운동과 정치성이 폭발하는 ‘문화의 활화산’이다.강소영 대표가 자신이 만든 서울 마포구 복합문화공간 ‘얼굴들’에 앉아 있다. 왼쪽에 음감회에 사용된 아코디언이 보인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강 대표는 30대 초반부터 15년 동안 책을 만들었고, 20대 시절 7년 동안은 영화를 만들었다. 20대 시절부터 줄곧 강정마을, 낙태죄 폐지, 팔레스타인 등 여러 이슈로 싸우는 사람들에 연대해 왔다. 출판 편집자로서 5·18 이야기를 담은 ‘김군을 찾아서’, 성과 재생산의 문제를 다룬 ‘배틀그라운드’ 등 인문·사회과학을 비롯해 예술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만들었다. 아름다운 각자의 투쟁에 관한 치열한 텍스트였다. 책이 품은 글도, 글을 담은 디자인에도 독특한 미감이 돋보였다.광고작년 말 ‘1인 출판사’를 차리면서 대표로서 가장 먼저 낸 건 단행본이 아니라 크기는 손바닥만 하고, 두께는 30쪽 안팎의 얇은 독립출판물 ‘진’(Zine)이었다. ‘얼굴-들’이란 제목의 진 시리즈 시즌1은 평화 활동가 김아현(해초), 미술평론가이자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남웅, 번역가이자 연대자 서제인,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활동가 나영정(타리)씨가 참여했다. 여기에 김진숙 전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글이 더해져 지금까지 총 5권이 나왔다. 이 작지만 단단한 책은 광주, 경주, 전주, 고양, 제주의 일부 독립서점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 부수도 300~500부만 찍었기 때문에 아주 귀한 책이 돼버렸다.“(이 책) 판매가 서점에는 부담이 될 수도 있어서요. 원하는 곳, 지향이 맞는 곳에만 드리고 싶었어요. 오는 7월 전주책쾌, 8월 군산북페어, 11월 언리미티드 에디션에도 나갈 생각이니 그때도 만나보실 수 있어요.”광고광고출판이나 배본 자체가 실험이고 도전이었다. 그래서 브랜드 정체성을 갖추고 디자인을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각 권의 진은 붉은색 봉투에 담겨 있는데, 진을 꺼내면 표지엔 저자 얼굴이 강렬한 흑백으로 인쇄돼 있다. 인스타그램과 행사 포스터 또한 독특한 오라를 풍긴다. 이 이미지와 브랜딩을 위해 강 대표는 베를린에 거주하는 디자이너 신덕호씨와 오래 회의를 했다. “나름 아름다워야 하지만 너무 과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책값은 8000원.“상업 출판의 단행본 정가 기준을 고려하면 가격 경쟁이 안되죠. ‘진’이라는 얇고 전달이 용이한 책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는 한에서 적정한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저는 그저 원고만큼은 ‘이 사람의 오롯한 것’이길 바랐고, 부족함 없는 만듦새로 정가를 매기고 싶었습니다. 필자들에게는 ‘지금 가장 쓰고 싶은, 뜨겁고 절실한 이야기를 쓰라’고 청탁했어요.”광고강소영 ‘얼굴들’ 대표가 그동안 만들어온 독립출판물(Zine) ‘얼굴-들’ 시리즈를 보여주고있다. 강 대표가 손에 든 것은 해초의 이야기 ‘얼굴들에게’다. 정용일 yongil@hani.co.kr이번 시즌1 시리즈에서는 배를 타고 가자지구로 향했던 항해자 해초의 이야기 ‘얼굴들에게’가 눈에 띈다. 요즘 강 대표가 가장 강력하게 결합하는 이슈 또한 팔레스타인 평화 운동이다. 그는 출판물로 운동하는 사람, 출판인이자 동시에 활동가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다.“‘얼굴들’에 온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에 관련된 세미나를 하고, 시위에서 얼굴을 익힌 사람들은 서로 번호를 따고, 교류를 시작해요. 동지였다가 말을 트는 사이가 되는 것이죠. (가수 겸 작가) 김목인 선생님이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집회에서 공연을 하고, 이곳에서 아코디언 연주를 하고 자율 모금으로 모인 연주비는 가자 지구 피해 주민 지원 상시모금함에 전액 후원하는 식으로 연결이 돼요.”강 대표는 최근 ‘얼굴들’의 첫 단행본을 만들고 있다. ‘응답의 시’라는 가제를 단 이 책은 2025년 8월, 1인 출판사 접촉면이 출간한 ‘팔레스타인 시선집’에 대한 답변이다. 팔레스타인 시인 등 여러 문학인들이 참여한 시선집의 원제는 ‘팔레스타인의 시, 팔레스타인을 위한 시’다. 이 시선집의 한국어판 수익금 전액은 가자 주민에게 식수, 식량, 텐트 등을 제공하는 ‘사미르 프로젝트’에 기부된다.강소영 대표 뒤로 독립출판물과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이라 적힌 깃발이 걸려 있다. 정용일 yongil@hani.co.kr“한국의 시들도 워낙 아름다우니까, 한국의 시인들이 응답해 줬으면 하고 구상했죠. 쉽지 않은 일이에요. 저희가 시집을 내온 문학 출판사가 아니고, 여러 시인에게 새로 쓴 시를 청탁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준비하면서 팔레스타인을 향한 시를 이미 쓴 분, 발표는 안 했지만 쓰고 있었던 분들을 알게 되었고,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깊이 바라고 있을 시인, 연대의 자리에서 자주 봐온 분, 또 시를 좋아해 함께하자고 말해보고 싶은 분들을 한분 한분 연락을 드렸고, 지금 시가 오고 있어요.”광고그는 가슴에 책을 안는 포즈로 연달아 말했다.“메일이 올 때마다 가슴에 돌을 팍, 안는 느낌, 팍, 아픈 느낌이 있어요. 시를 받으면서 돌을 받아 안는 기분인데, 견딜 만했으면 합니다. 그래야 저도 누군가한테 옮겨줄 수 있으니까요. 메일을 열어보고 길바닥에서, 마을버스에서, 지하철 안에서 몇번이나 울었어요. 오늘도 신도림역 앞에서 시를 하나 읽다가 좀 울었어요.”그는 최근 ‘옥봉생태평화센터 ‘새사람’’ 건립을 위해 연 특별전에서 문정현 신부가 내놓은 서각을 샀고 ‘얼굴들’ 한편에 세워두었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강 대표의 목표는 “걱정을 안 끼치는 것”이라고 했다. “걱정이 과해지면 여러 방향으로 열릴 수 있었던 문이, ‘가능성’이 닫히니까요.”진 시리즈 ‘얼굴-들’ 시즌2는 ‘읽고 쓰고 옮기는 여자들’의 이야기로 오는 7월 전주의 도서전 ‘전주책쾌’에서 공개된다. ‘응답의 시’는 8월 군산북페어에서 만나볼 수 있다.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